매년 5월이면 우리 집의 손바닥만한 마당은 넝쿨장미가 주인이 된다.
겨울 동안 앙상한 가지 사이로 하늘이 숭숭 뚫려있었던 그 자리에서
이파리들이 먼저 초록의 잔치를 벌리며 봄을 불러들이고
이어 5월의 중순쯤으로 접어들 쯤
붉은 장미가 한두 송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일주일 뒤면 마치 어디서 밀려온 밀물처럼 마당의 하늘은 장미로 넘실댄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붉은 장미의 비밀을 알고 싶다면
초록에 주목해야 한다.
장미는 처음에는 초록의 주머니에 쌓여 우리에게 배달된다.
장미를 싸고 있던 초록 주머니는
꽃이 핀 다음에는 꽃의 턱받침대로 용도를 바꾼다.
장미가 더욱 성장을 하면
이제 누군가를 향하여 꽃을 받쳐든 사랑 고백의 손이 된다.
잠시 엷은 빗줄기가 지나가고 나면 장미의 얼굴에 투명한 빗방울이 송글송글 잡히기도 한다.
이파리도 장미도 덩달아 투명해 보인다.
마치 방금 목욕을 끝낸 여인처럼.
성장한 장미가 이제 몽오리 잡힌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 나섰다.
아무 것도 꾸미지 않았으나 태생부터 화려한 외출이다.
아마 이제는 누구도 도시의 빗줄기을 그냥 맞고 다니며 낭만의 호사를 즐기지 못하리라.
그 산성비의 표독함엔 완고하기로 소문난 철도 제 몸을 그대로 지키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비가 그치고 장미의 꽃잎 사이사이에서 바람에 조금씩 말라가고 있는 작은 물방울은
적어도 우리의 눈엔 작은 보석들이다.
장미 4중주.
음색은 단조로와 처음부터 끝까지 붉은 선율이다.
사람들은 올려다 보고 장미는 내려다본다.
장미는 아침 나절에 가장 아름답다.
햇볕이 따가운 한낮엔 장미도 지친 기색으로 보인다.
햇살이 심하면 장미도 무덥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장미는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장미는 활활 타오른다.
우리는 때로 꽃에 마음을 담아 누군가에게 건네곤 한다.
장미의 송이송이마다 누군가의 어떤 마음이 담겨있을 것만 같다.
붉은 함성.
장미가 함성을 지르면 붉은 향기가 난다.
이 집의 주인은 당분간 넝쿨장미이다.
장미 사태.
비스듬한 초록의 사면을 타고 일제히 미끄러져 내려간다.
아니다, 장미는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올라간다.
조금씩 조금씩 옥상을 향하여 올라간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어디에 있는가를 아는 것만 봐도 그렇다.
장미의 허리는 그 얼굴을 생각하면 너무 가늘다.
그 가는 허리는 옅은 바람에도 매우 불안하여 때로 장미의 아름다움이 안타깝다.
때로 장미가 가슴을 열었을 때 그 속의 수술이나 암술은
그것이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장미에 아름다움에 빼앗긴 누군가의 영혼이 그 곳에 둥지를 튼 것만 같다.
아름답다라는 헌사는 역시 장미의 몫이다.
3 thoughts on “장미의 화원 2005”
음..그렇군요.^^ 밖에서 볼수있는 이들이 더 행복한거군요?^^
전 가끔 꽃집을 지날때 디카를 가지고있음 꺼내서 마구 찍어요. 그럼 옆에서 딸아이가 말린답니다.”엄마~왜그래 그만하고 가자..주인이 보면 어쩌려구..”ㅋㅋ
“어머~내가 꽃을 훔친것도 아닌데 뭐라하겠니?”하면서도 실은 훔친듯한 느낌이 들곤하긴하죠.ㅋㅋ
저 아름다운 집에서 화목한 웃음소리까지 들리는듯하니 더 아름답게 느껴져요.^^
헤헤, 그래도 장미보다는 아내와 딸이 있어 행복하죠.
사실 안에서 보는 것보다 바깥에서 보는게 더 아름다우니 집밖의 사람들이 더 행복한 것이랍니다.
고맙습니다.
아내에게 아부할 기회를 제공해 주셔서.
아..정말 아름다움에 취할것같아요.
저도 며칠전 한송이 피기 시작한 동네 넝쿨 장미를 찍어봤었는데 오늘 보니 아주 많이 피어있더군요.
저런 집에 산다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