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리 어린이 대공원에서

어린이 대공원은 사실 능동에 있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언제나 화양리의 어린이 대공원이다.
지하철이 없던 시절,
우리는 언제나 화양리에서 버스를 내려 어린이 대공원에 갔었다.
문은 언제나 정문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하철이 생기면서 우리는 뒷문을 정문으로 삼게 되었다.
이제는 항상 아차산역에 내려 뒷문으로 어린이 대공원에 놀러간다.
8월 21일 월요일 오후에 이번에도 역시 뒷문으로 그곳에 들러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Photo by Kim Dong Won

흥, 자기가 무슨 청포도인줄 아나.
자기는 은행이야, 은행.

Photo by Kim Dong Won

목책으로 낮게 담을 두르고,
잔디밭을 넓게 갖춘 그런 집에서 살고 싶죠?
에이, 그런 거 사려고 아득바득 돈벌지 말고,
그냥 대충대충 살면서
가끔 어린이 대공원에나 놀러가요.

Photo by Kim Dong Won

꽥꽥!!
이상하다 나도 개는 개인데
왜 ‘멍멍!’ 요게 안되지.

Photo by Kim Dong Won

‘하늘과 땅 사이에 꽃비가 내리더니
어느날 공원에서 소녀를 만났다네.’
옛날에 그런 노래가 있었지.
그 꽃비가 이걸 말하는 건가.

Photo by Kim Dong Won

날 보니 이제 드디어 가을이 온 거 같지 않아요?
이름이 뭐냐구요?
이름이야, 뭐, 그냥 가을꽃이라고 해두죠.

Photo by Kim Dong Won

야야~야, 뭐, 가을꽃?
가을꽃은 나야, 나.
난 우주가 공인한 가을꽃이라구.
그래서 이름도 코-스-모-스, 그러니까 우주가 공인한 가을꽃 아냐.

Photo by Kim Dong Won

이렇게 머리를 맞대고 익어가니까
가을이 너무 달콤하다, 그치?
우리 당도는 다른 배들의 세 배는 될꺼야.

Photo by Kim Dong Won

으, 커플배의 염장질은 더 이상 못봐주겠다.
어디 훤한 대낮에 뽀뽀질이야.
–얘얘, 도대체 어딜 끼어드니.

Photo by Kim Dong Won

무섭고 징그럽지.
생긴 건 이래도 난 오이의 일종이야.
이름은 뱀오이라고 해.

Photo by Kim Dong Won

난 조롱박만 보면
왠지 그 속에 술이 한가득 들어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뭐, 전부 그 취권류 시대에 본 중국 영화 탓이지.

Photo by Kim Dong Won

남들은 나보고 허구헌날 해만 쳐다보고 세월보낸다지만
사실 나는 그 세월 속에서 해를 삼키고 있는 거예요.
내 속에서 씨앗이 다 영글면 그때 한번 먹어보세요.
그 맛이 바로 해를 삼킨 느낌이예요.

Photo by Kim Dong Won

그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마음을 주었더니
그가 마음만 쏙빼가고 몸은 여기에 이렇게 덩그러니 남겨놓았어요.

Photo by Kim Dong Won

미장원 다녀왔어요.
뽀글이 파마좀 했는데,
어떻게, 잘 나왔나요.

Photo by Kim Dong Won

염소, 목빠져. 빨리좀 줘.
염소가 연인들의 데이트에 슬쩍 끼어들었다.
그러나 연인들의 데이트가 염소에게 염장질이 된 건 아니었다.
염소는 그냥 과자 하나 얻어먹고
두 연인에게 추억 하나 선물했다.

7 thoughts on “화양리 어린이 대공원에서

  1. “목책으로 낮게 담을 두르고,
    잔디밭을 넓게 갖춘 그런 집에서 살고 싶죠?
    에이, 그런 거 사려고 아득바득 돈벌지 말고,
    그냥 대충대충 살면서
    가끔 어린이 대공원에나 놀러가요.”…..
    완전 동감이지만…마당있는 집은 소원이에요…^^

    1. 강아지 키우고 싶어서 그러죠?
      근데 강아지 키워보니 마당이 있어도 집밖으로 나가고 싶어하더라구요.
      그렇다고 마냥 문을 열어놓을 수 없어도 개구멍을 하나 만들어 놨더니 현재는 그리로 드나들고 있어요.
      내가 여지껏 살아보니까 집은 대출없는 집이 제일로 좋은 거 같아요.

  2. 글이 너무 재밌어요.^^
    어쩌면 상상력이 그리 좋으신지.
    저도 이번 주말엔 코스모스좀 보러 가야겠어요.
    이상하게 마당에 심어놓은건 봉오리 생길 생각을 안해요.
    저러다 그냥 마는거 아닌가몰라요.

  3. 어린이 대공원 지금 공짜로 입장할 수 있나요?
    첫번째 사진 은행 정말 누가 보면 청포도인줄 알겠네요.
    아직도 7월인줄 아나?
    “청포도”
    내 고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 시 한구가 은행을 보면서 생각나다니… 재밌네요.

    1. 아직은 돈받고 있구요, 10월부터 공짜라고 하더군요.
      서울시 의회에서 그렇게 의결을 했다고 신문에서 봤어요.
      그 안의 놀이기구는 모두 돈내야 해요. 다만 입장료만 없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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