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조에서 나리타 공항으로 – 9일간의 도쿄 여행 Day 9-1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일본에서 머문 것이 날 수로는 9일이고 잠을 잔 것이 여덟 밤이다.
이렇게 오래 여행한 적이 없었다.
내 생애 첫 해외여행이기도 했다.
여행이 온전하게 여행만으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딸을 보러온 길이었기에 기회가 되는대로
딸의 일정에 맞추어 얼굴을 보는 것이 내게는 최우선이었다.
녀석과 하루 시간을 내 어디 가까운 바닷가를 가고 싶었는데
그걸 못한 것이 좀 아쉽다.
일년에 얼굴보는 것이 보름 정도밖에 되지 않다 보니
하루를 온전히 같이 보내는 것이 우리에겐 큰 행복이다.
여행 일정이 일의 마감 때와 뒤섞여 간간히 일도 해야 했다.
다행히 마지막 날 아침 일찍일어나 일은 일본에서 모두 마무리했다.
일을 털고 나니 한국으로 돌아가는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6일 도쿄의 주조에서

마지막 날 아침, 딸의 집 베란다에서 바라본 도쿄의 하늘이다.
어제 저녁 때는 비가 좀 흩뿌렸는데 오늘의 하늘은 아주 쾌청하다.
표는 어제 저녁 때 딸이 들어오며 미리 예매를 해갖고 왔다.
이케부쿠로에서 기계를 이용해서 살 수 있었다고 했다.
딸은 아침 9시부터 케이크점에서 아르바이트가 예정되어 있었다.
함께 나와 주조역에서 나를 배웅해 주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6일 도쿄의 이케부쿠로에서

이케부쿠로에서 내렸다.
올 때는 신주쿠로 와서 갈아탔는데
갈 때는 이케부쿠로에서 공항까지 타고가는 표를 끊었다.
출근 시간대인지 전철이 엄청나게 붐볐다.
역무원들이 사람들을 밀어넣어주고 있었다.
외국에 나가면 우리와 비슷한 풍경이 벌어져도 그것마저 볼거리가 된다.
비슷한 것은 일본도 그렇더라라는 말에 실어 얘기거리로 삼고,
다른 것이 있으면 일본은 우리와 다르더라라는 말에 실어 얘기거리로 삼게 된다.
해외 여행을 갔다 오면 이래저래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예전에 누군가를 두고 독일로 유학가지 않았으면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살았을까 궁금하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해외에 한 번 나와보니 이해가 되기도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6일 도쿄의 이케부쿠로에서

내가 타고갈 나리타 익스프레스가 들어오고 있다.
사실은 타는 곳을 잘 찾지를 못해
이케부쿠로에서 내린 뒤 역무원에게 물어보았었다.
젊은 사람이었는데 영어를 잘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6일 일본의 전철에서

전철 하나가 길을 나누어 찢어진다.
마치 잘가라고 인사라도 하는 듯이.
잘 있거라.
언제 또 올지 모르나 그때까지 잘 지내길.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6일 일본의 전철에서

한번 와 봤다고 이제 조금 도쿄의 교통편에 대해 알 것 같다.
일본에 처음 왔을 때
신주쿠까지 1500엔에 타고 왔던 나리타 익스프레스의 요금이
갈 때는 무려 두 배에 가까운 2910엔이다.
1500엔의 요금은 입국하는 외국인에게만 베풀어주는 특혜인 셈이다.
도쿄의 지명 가운데 몇몇은 아주 익숙하게 익혀가지고 간다.
주조, 이케부쿠로, 이타바시, 아카바네, 시키가 그곳이다.
와세다는 이미 오기전부터 익숙한 이름이었다.
와세다를 빼면 다들 그곳이 어디인지 갸우뚱할 것 같다.
그러나 나름대로 상당히 독특한 여행을 한 듯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6일 일본의 전철에서

올 때 나리타 익스프레스의 차창 밖으로
거대하게 치솟고 있는 건물을 하나 봤었다.
갈 때도 차창 밖에서 시선을 한참 동안 간섭한다.
찾아보니 도쿄 스카이 트리라는 방송전파탑이라고 한다.
완공되면 그 높이가 634m에 이를 이 탑은
현재 500m의 높이를 돌파했다는 소식이다.
이런 높은 탑은 거리를 헤맬 때 이정표가 되기는 하더라.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6일 일본의 전철에서

도쿄 스카이 트리가 한쪽으로 언듯 비치는 이곳은 어디쯤일까.
이 정도면 도심이라도 살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강과 무성한 나무는 그나마 우리들이 도시를 견디도록 해준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6일 일본의 전철에서

그러나 나리타 익스프레스가 도시 풍경을 뿌리치고
완연한 농촌 풍경을 그 차창에 담기 시작하면
역시 도시는 살만한 곳이 못된다는 곳으로 생각이 바뀌어 버린다.
농촌은 그곳이 그 존재 자체를 지키고 있다는 것만으로
도시가 삶을 견디도록 해주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농촌의 풍경이 나타나자 나는 비로소 숨을 쉬는 느낌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6일 일본의 전철에서

어찌보면 나는 도쿄라는 도시에서 숨을 쉬며 9일 동안의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
숨을 참아가며 그곳을 견뎌낸 것인지도 모른다.
서울이라고 크게 다를 것이 있으랴.
그러다 서울을 벗어나면
나는 풍경도 우리의 호흡이 된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는다.
우리는 코로 호흡하며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알고보면 우리의 온몸으로 호흡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쿄를 벗어나자 내 몸은 드디어 호흡을 되찾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6일 일본의 나리타 공항에서

나리타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아시아나 부스를 찾아가 비행기표를 끊었다.
창구의 직원은 일본인인듯 했다.
한국말 하냐고 물었더니 못한다고 했다.
그래도 비행기표는 무사히 끊었다.
단체 여행객이 있어서 좌석을 앞쪽으로 옮겼는데 괜찮냐고 물어서 상관없다고 했다.
단체 여행객은 한국으로 수학 여행가는 일본의 고등학교 학생들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6일 일본의 나리타 공항에서

한국에서 출국할 때만큼 수속이 까다롭지는 않았다.
탑승구의 라운지는 그다지 사람들이 많지도 않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6일 일본의 나리타 공항에서

터키로 가는 비행기도 보인다.
살다보면 나도 유럽쪽으로 여행할 날들이 있을까.
루푸트한자와 같이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들이 뜨는 것을 보면서
언젠가 내가 생긴 것만으로 외국인이 되는 나라로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은 생긴 것으로는 내가 전혀 외국인으로 구별이 되질 않는 나라였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6일 일본의 나리타 공항에서

여행에 많이 익숙한 사람인가 보다.
부인의 옆에서 아주 곤하게 잠에 들어 있다.
신발까지 벗어놓고.
공원에서 저렇게 잠들면 노숙자가 되는데,
공항에선 저렇게 잠들면 익숙한 여행객이 된다.
잠드는 자리에 따라 그 차이가 엄청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6일 일본의 나리타 공항에서

내가 타고갈 비행기가 도착했다.
난 애국자도 아니 건만
꼬리에 우리 국기를 내건 국적기를 마주하니 뜬금없이 반가웠다.
난 세계인으로 살기에는 한국인으로 너무 오래 살았다는 느낌이다.
우리의 자식 세대들은 국가의 경계를 지우고
모두가 세계인으로 살아가는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4 thoughts on “주조에서 나리타 공항으로 – 9일간의 도쿄 여행 Day 9-1

  1. 햐-
    드디어 귀국이군요…
    9일간의 여행….
    덕분에 중간중간 띄엄띄엄 그래도 일본을 좀 읽은 느낌입니다.
    귀국 후의 이야기들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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