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사는 집의 곁에서
한 그루 나무로 살거야.
자리는 서쪽으로 잡을 거야.
그럼 오후가 기울기 시작할 때쯤
햇볕이 내 그림자를 밀어내
너의 집 벽에 눕혀주겠지.
날 것의 몸을 너에게 들이밀기 보다
난 마음을 그림자에 실어
매일 오후 너에게로 갈거야.
날 것의 마음이 몸에 실리면
마음은 밀려나고
몸이 몸을 뚫고 들어가 서로를 헤집고 말지.
오후가 모두 저물고 나면
어둠이 내 마음을 네 속 깊숙히 묻어줄거야.
그럼 매일 까만 밤을 하나로 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나로 깨어나
오전 시간은 온전히 나로 보내고
오후가 시작되면 너에게로 갈 준비를 할 거야.
난 네가 사는 집의 서쪽에서
한 그루 나무로 서서
오전은 나로 한나절을 살고
매일 오후엔 내 마음을 싣고
그림자로 네게 건너가 살거야.
2 thoughts on “벽과 나무 그림자”
서쪽 방향의 설정이 참 좋습니다.
여름에는 잎사귀를 달아서 서늘한 그늘로 하루를 보낼 수 있게하고
겨울에는 자신의 그림자를 없애서 따뜻한 햇살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하는
그러고 보니 겨울은 잎을 떨어뜨려 자기 그림자를 텅텅 비우는 계절이군요.
비운 그림자의 자리로는 따뜻한 햇볕이 자리하고..
미처 그 생각은 못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