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2010

올해는 많은 곳을 쏘다녔다.
백담사에 다시 갔었고, 동해에 간 것만 세 번이다.
그 중 한 번은 딸아이와 함께 한 여행이었다.
부산에도 두 번이나 내려갔다 왔다.
지리산 자락을 훑고 올라온 행복한 시간도 있었다.
전철이 용문으로, 또 춘천으로 가지를 뻗은 덕택에
가까우면서 차없이는 머뭇거리게 되는 곳을
시간날 때마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설 수 있었다.
처음으로 딸아이가 살고 있는 일본으로 해외 여행도 다녀왔다.
한동안 서울에 묶여 있었던 걸음이 많이 풀려난 느낌이다.
올해에 찍은 사진 가운데서 열두 장을 골라 해를 마무리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월 16일 강원도 횡계의 선자령에서)

1
겨울엔 빈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진다.
날 좋은 날을 골라 푸른 하늘이.
여름엔 아마 어려울 것이다.
나뭇잎들이 하늘과 숨바꼭질을 하라며
자꾸만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2월 11일 서울 남산에서 내려다본 서울)

2
서울에선 여기저기서 건물들이 자란다.
나무는 작은 키를 키워 높이를 발돋음하지만
서울의 건물들은 작은 키의 건물들을 무너뜨리고
그 무너진 작은 키의 꿈위에서 키를 높인다.
나무는 물과 빛을 마시고 키를 키워가지만
서울의 건물은 종종 쫓겨난 가난한 자들의 눈물로 그 키를 키운다.
그러다 종종 가난한 자들의 목숨을 그 자양분으로 삼기도 한다.
키가 낮은 집들은 꿈이 기거하지만
키를 한껏 높인 건물들은 욕망으로 뭉쳐져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3월 8일 강원도 인제의 백담사에서)

3
눈내린 백담사 계곡으로 물이 흘러간다.
조용히 묵언수행에 들어간 눈들의 침묵에
계곡의 물도 조심조심 조용히 걸음을 떼어놓는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4월 12일 강원도 설악산의 울산바위)

4
설악을 지나는 구름은 가끔
울산바위에서 쉬었다 간다.
때로 어떤 구름은
그 큰 울산바위가 가까스로 자리가 되어줄 정도로
정말 엉덩이가 크고 펑퍼짐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5월 22일 부산 태종대에서)

5
풍경은 바람과 물에 깎이면서 풍경이 된다.
사람들이 배를 타고 지나가며 풍경을 구경한다.
풍경을 만들어낸 손의 품에서 작품을 구경하는 셈이다.
바다에 귀를 기울이면
풍경에 대한 좋은 설명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6월 23일 경기도 팔당의 예봉산에서)

6
여름 나무는 무성하게 잎을 펼쳐 하늘을 가린다.
여름 나무가 잎을 펼쳐 하늘을 가리는 것은
사실은 하늘을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무 높아 쳐다보기만 해야 하는 하늘을
나무의 높이로 낮추기 위함이다.
여름 나무는 그렇게 잎을 키워
바로 우리의 머리맡으로 초록 하늘을 펼친다.
볕이 따가워 그냥 이고 살기에는 힘겨운 하늘을
우리 머리맡으로 내려 그늘로 덮어주는 것이
바로 여름 나무의 초록 하늘이다.
여름 나무는 사람들이 힘겨운 계절에
하늘을 우리의 머리맡으로 낮출 줄 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7월 25일 경기도 양평의 추읍산에서)

7
해가 질 때는
모든 나무와, 모든 산과, 모든 강줄기가
일제히 서쪽으로 향한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8월 1일 경기도 용문의 중원계곡에서)

8
모든 나무가 짙은 초록등을 밝힌 한여름에
누리장 나무 한그루가 하얀등을 밝혔다.
초록의 숲이 그 하얀등으로 환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9월 23일 경기도 성남의 남한산성에서)

9
때로 산을 오르고 내려오다 보면
산과 구름과 하늘은
서로 색과 경계를 잘 맞추어 작품 하나를 구성한다.
그 작품이 내 시선을 앗아가면
산과 구름과 하늘이 혼재되어 있는 하늘에서
그 셋의 어울림으로 태어나는 구성 작품 하나를 뜯어낸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0월 8일 강원도 동해의 동산해수욕장에서)

10
날씨를 두고 누군가 그랬었다.
날씨를 탓하지 말라고.
아무 할 얘기도 없을 때
날씨처럼 우리 얘기의 물꼬를 터주는 것도 없다며.
날씨는 그에서 더 나아가
우리가 서 있는 장소에서 풍경을 엮어내는 전부이기도 하다.
갑자기 몰려들어 하늘을 점거한 흰구름이
나와 엮인 인연의 시간은 길어야 30분 정도이다.
날씨는 길어야 30분의 인연 속에
제 표정을 내게 선물삼아 건네고 사라진다.
동해의 동산해수욕장에서 만난 그 표정은
구름으로 한땀한땀 엮어놓은 표정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일 경기도 미사리의 한강변에서)

11
항상 억새는 바람을 잡으려 한다고 생각했었다.
해가 서녘으로 넘어가는 저녁 시간.
저녁 햇살이 낮게 억새밭으로 몸을 눕히자
억새가 손에 가득 움켜쥔 것은
바람이 아니라 반짝이는 햇볕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2월 25일 강원도 춘천의 의암호에서)

12
며칠전 많은 눈이 내렸다.
이상하게 당신이
우우 내게 몰려온 느낌이었지만
아무리 눈내린 바깥을 내다보아도
어디에도 당신은 없었다.
그저 하얀 눈뿐이었다.
그렇게 눈이 온 날,
당신은 내게 온 느낌으로 왔다가
눈이 녹으면서 당신도 가버린 느낌이었다.
그러다 어느 하루, 춘천의 의암호 주변을 떠돌다 보게 되었다.
왔다가 가면서 마른 덤불 위에 남겨둔 당신의 마음을.

4 thoughts on “Photo 2010

  1. 한동안 멀리 못가시고 주변을 도시더만
    올해는 정말 장거리 여행을 많이 하셨네요
    내년에도 여건이 허락되서 많이 많이 다니시기를..

    1. 그냥 전철만 타도 상당히 갈만한 데가 많아져서 아주 좋은 듯.
      그런데 이제는 놀러다닐 시간이 별로 없을 듯 싶어요.
      아무래도 새해에는 일을 해야 할 듯한 예감이.
      새해 복많이 받구요, 인생에 즐거움과 기쁨이 가득하길 빌께요.

  2. 갑자기 든 생각이 동원님은 왜 파비콘을 베짱이로 두었는지 이해가 간다는 ^^;;;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고 많이 지르시고 ㅋㅋㅋ

    1. 그게 베짱이 아닌데요.
      제가 물구나무 서 있는 모습이라는.
      세상을 뒤집어보자는 뜻이랄까.

      빈이아빠님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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