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이 넓은 집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1월 2일 경기도 곤지암에서

유리창은 닫아놓아도 열려있는 문이다.
벽을 모두 넓은 유리창으로 열어놓은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아직 햇볕이 남아있는 오후의 시간,
집안에 있었지만
시선이 바깥을 나가 집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집주변을 며칠 전 내린 눈들이 하얗게 덮고 있다.
눈들은 하루 종일 햇볕을 쬐다 노근하게 녹아내린 기색이었다.
그러나 덮인 눈은 시선으로 훑고 들어오는 것만으론
그 깊이를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니까 눈은 세상을 하얗게 덮는 것 같지만
세상을 덮으면서 동시에 깊이를 만든다.
뻔하게 드러났던 세상이 눈에 덮이는 순간 깊이를 갖는다.
눈은 세상에 깊이를, 그것도 하얀 깊이를 가져다준다.
눈이 온 날 세상은 하얗게 덮여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날 것으로 드러났던 세상에 눈이 선물한 깊이 때문에 아름다움을 얻는다.
아니 눈은 세상의 품에 안겨 속삭인다.
아름다움을 얻으려면 깊이를 쌓으라고.
눈이 스르르 낮잠에 취하여 깜빡 고개를 떨구다 보면
세상은 잠시 가졌던 그 깊이를 잃기 일쑤이다.
그러나 얇은 깊이 하나만으로도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
문턱 가까운 곳에서 민무늬의 바닥과 몸을 맞댄 눈은
눈이 가져다준 깊이가 그곳에서 손가락 두께를 갓 넘기지 못함을 일러주지만
여전히 문턱까지 하얀 깊이를 깔아놓은 세상은 아름답다.
시선을 좀더 멀리 내보내자 바깥을 나간 내 시선을 따라
가을에 나뭇잎을 모두 털어낸 나무들이 맨몸으로 창까지 따라왔다.
유리창이 넓은 집에서 그렇게 낮에는 시선을 바깥으로 내보내
녹다남은 눈이나 촘촘하게 몸을 부비며 서 있는 겨울 나무 사이를 서성거렸다.
하얀 눈도, 맨몸의 나무들도,
모두 창에 시선을 모으고 집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바깥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집안에 있으니 바깥의 눈과 나무들의 시선이 유리창으로 모여
집안으로 흘러들었다.
그러다 밤이 되자 아무 것도 보이질 않았다.
낮에 멀리서 창에 시선을 두었던 눈과 나무들이
창 가까이 바짝 붙어 두 손을 모으고
집안을 들여다보고 있었으리라.
손들이 모두 어둠의 색에 묻어
그 넓은 창이 어느 한 귀퉁이 빈틈없이 온통 까맣기만 했다.
창 안에서 환하게 우리를 보여주며 저녁을 먹었다.
유리창이 넓은 집에서
낮에는 시선을 바깥으로 내보내 바깥을 돌아다니고,
밤에는 바깥의 시선을 불러모아 나를 환하게 보여주다가 왔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1월 2일 경기도 곤지암에서

4 thoughts on “유리창이 넓은 집

  1. 창을 보는건 왜 이리 션해보이는지요…
    아직 해가 남아 있는 오후… 그 기분 좋은 나른함^^
    좋은하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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