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과 들풀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2월 25일 강원도 춘천의 의암호에서

의암호 강변의 작은 웅덩이에
들풀이 하나 살고 있었죠.
겨울이 닥치기 전까지만 해도
웅덩이의 물은 가끔 들풀의 온몸을 어루만지며
그럭저럭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죠.
바람의 연주회가 있는 날이면
그 선율에 몸을 싣고
둘은 온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흥을 곁들이곤 했어요.
그러나 찬바람 불고 날씨가 가라앉던 어느 날,
웅덩이의 물은 마치 죽일 놈이라도 되는 듯
들풀의 목을 움켜 쥐더니 목을 조였어요.
아마도 분을 참지 못한 일이 있었던 듯 보였어요.
바람의 연주회도 그 분을 풀어주진 못했어요.
이제는 바람의 연주회가 마련되어도
물은 한껏 조인 들풀의 목을 풀지 않았고,
들풀은 그저 제 몸만 바르르 떨 뿐이었죠.
그래도 그 분이 평생을 가지는 않을 거예요.
겨울 한철 제 분에 못이겨 들풀의 목을 조이긴 해도
아마도 봄이 오면 또 그 손의 힘을 풀고
둘은 옛날의 사이로 돌아가고 말 거예요.
여름 넘기고 늦가을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참고 살 수 있는 것이 분이었는데
겨울은 내 속의 분을 참을 수가 없는 계절이예요.

2 thoughts on “얼음과 들풀

  1. 저 웅덩이도 밑에 숨어서 숨이 차나 봅니다.
    얼음사이 사이에 숨구멍들이 송송송…

    저렇게 보이면 좋지만 보이지 않는 숨구멍들이
    얼음 아래서 혼자 심심했는지 친구 만들려고
    얼음을 지치는 아이를 빨아들이고는 했지요!

    1. 겨울은 원래 물에 한 서너 번은 빠지고 양말 말리려다 오히려 양말을 태워먹고 하면서 지나가는데 요즘은 모든 겨울이 바깥으로 쫓겨나서 그저 겨울을 집안에서 다 보내고 마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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