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에 나갔다가 커피를 한 잔 얻어마셨다.
온두라스 커피라고 했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커피의 색이었다.
커피의 색은 검다.
그 검은 색은 내게선 심연의 색이다.
빛을 거부하고 깊이 웅크릴 때 그 자리에 검은 색이 있으며,
간혹 커피를 입에 물면 깊은 심연을 몸안으로 털어넣는 느낌이 들곤 했다.
심연의 느낌을 맛으로 치환하면 그것은 쓴맛이다.
잘 내려진 쓴맛의 커피를 맛볼 때
나는 그래서 심연의 깊이를 유영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오늘 클라라의 바리스타가 내준 커피는
엷은 밤색의 투명함을 달무리처럼 두르고
가운데는 그보다 약간 색이 진했지만
그러나 검지는 않았다.
색으로만 보면 오늘의 커피는 심연이라기보다
심연으로 가는 입구만 같았다.
커피를 반쯤 마시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분명 엷은 밤색의 투명함이었던 색이
노란 빛을 띄고 있었다.
심연으로 가는 입구처럼 보였던 가운데 부분은
처음의 진하던 농도를 내놓고
색이 약간 엷어져 있었다.
맛은 은은한 달빛 같은 맛이었다.
마치 달이 떠서 높이를 높혔다가 낮추면서도
그 빛은 여전히 같듯이
이번의 커피는 깊이를 낮추어
심연의 입구로 가까이 가도 맛은 일정했다.
간혹 나는 커피의 깊은 심연으로 묻히곤 했으나
오늘의 커피는 나를 심연의 깊이로 몰아넣지 않았다.
나는 가볍게 산책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 마셨을 때,
놀랍게도 마지막 자리에
마치 초승달처럼 노란색의 흔적이 내걸렸다.
오늘의 커피는 색은 세 가지였는데
맛은 항상 고르게 왔다.
색으로 보면 깊이를 가졌지만
몸을 담그면 내 몸을 받아주면서 깊이를 낮추었다.
달무리처럼 번진 투명한 밤색 속으로 걸음을 들여놓고
점점 깊어지리라 느꼈던 내 예상을 빗나가더니
커피는 언제나 내가 은은한 깊이에 몸을 담그고
그 맛을 홀짝거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바깥의 가까운 곳에 눈이 온 풍경이 펼쳐져 있었지만
나는 커피의 맛에 넘어가 해가 빠른 속도로 넘어가고 있는데도
계속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온두라스 커피라고 했다.
4 thoughts on “세 가지 색, 삼색 커피”
꺄아아!
제가 커피를 마시면 정신이 반수면상태가 되어 저를 흔들기 때문에 되도록 멀리하는 식품이라 그림으로 봐도 그 맛의 차이를 가늠할 순 없지만 저 커피잔, 아니 찻잔에 눈이 가요. 정말 맛있는 국화차나 홍차를 먹으면 너무 감격스러울것 같아요.
잘 지내죠?
커피에 따라 찻잔도 달리 내주는 거 같아요.
근데 얼굴본지 정말 오래된 거 같네. 이번 금요일에 봤으면 좋겠는데 일 때문에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혹시 트위터 하면 계정좀 알려줘요. 그거라도 알아놓게.
이 글 보고 왠지 커피 생각이 나서 한 잔 해야겠습니다.
어여쁜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는 모두의 부러움이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