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속초에서 저녁의 속초까지

벌써 지난 해의 일이 되어 버렸다.
2004년 12월 22일, 나는 아내와 함께 속초에 있었다.
아내는 거래하는 잡지사에 가서 밤늦게까지 잡지 마감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 전날밤 딸아이를 앉혀놓고 술을 한잔 걸친 뒤 골아떨어진 상태였다.
자정을 넘기고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새벽 2시 30분에 바다가 보고 싶다며
혼곤히 잠든 나를 흔들어 깨웠다.
나는 아내의 차에 동승했으며,
44번 국도를 따라 미시령을 넘어 속초로 갔다.
아침 바다를 실컷 호흡하며 가슴의 답답함을 풀어버린 아내는
바닷가의 찜질방에 들어가 휴식을 청했다.
그동안 나는 바닷가를 쏘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밤의 속초.
미시령에서 내려 밤의 속초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나 바깥에서 5분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매서운 추위는 두툼한 외투를 너무도 손쉽게 헤집고는 속살까지 파고들었다.
자판기에서 따뜻한 캔커피 하나를 뽑아 그 체온을 몸 속으로 들이부었다.
(5:36)

Photo by Kim Dong Won

멀리 하루의 시작이 꿈틀대는 조짐이 보였다.
그러나 아직 영금정을 밝히고 있는 것은 새벽빛이 아니라 가로등 불빛이었다.
(6:48)

Photo by Kim Dong Won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라는
그 상투적인 말은 왜 항상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일까.
태양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마주할 때
항상 늦잠으로 놓쳐버린 하루와 마주하기 때문은 아닐까.
(7:41)

Photo by Kim Dong Won

녀석들은 좀 졸린 눈치였다.
(8:20)

Photo by Kim Dong Won

어부들이 길어올린 푸른 새벽이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싱싱한 바다요.
(8:24)

Photo by Kim Dong Won

어부의 눈은 살아있다,
형형한 새벽빛으로.
혹 매일 새벽을 여는 것이
그의 눈빛인지도 모른다.
(8:24)

Photo by Kim Dong Won

하루가 동트면
등대는 바로 그 시간에 하루를 접고 안식을 준비한다.
(8:32)

Photo by Kim Dong Won

외면
(11:21)

Photo by Kim Dong Won

지붕도 없고,
배를 부빌만한 둥지도 없다.
그러나 그 앙상한 뼈대 위에 그들의 편안한 휴식이 있다.
(11:23)

Photo by Kim Dong Won

파도는 할퀴듯이 모래 사장으로 달려들었지만
그 바다의 저편으로 멀리 떠 있는 배는 그다지 위태롭게 보이지 않았다.
때로 파도가 거셀 때는 그에 맞서지 말고
파도에 몸을 실은채 그것이 흔드는대로 흔들리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12:24)

Photo by Kim Dong Won

파도의 파도타기.
(12:41)

Photo by Kim Dong Won

설악산의 얼음 폭포.
여름엔 한번의 낙하로 끝이었으나
몸이 굳어지니 겨우내내 낙하였다.
(오후 3:15)

Photo by Kim Dong Won

설악산의 울산바위 부근이라고 들었다.
버스를 타고 갈 때 항상 눈길을 잡아끄는 봉우리였지만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아내의 차에 동승하니 그 앞에서 차 세우고 원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아내는 이런 곳에 차를 세워줄 때마다 꼭 한마디 한다.
“마누라 잘 만난 줄 알어.”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녜, 그러믄입쇼. 여왕마마.
(3:46)

Photo by Kim Dong Won

다시 미시령에 서다.
속초여, 안녕.
다음에 또 올께.
(4:02)

4 thoughts on “밤의 속초에서 저녁의 속초까지

  1. 제가 이번에 속초한테 동원님과 포레스트님 안부를 전하고 왔어요.
    속초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다 보니까 이번에 봉포항도 보이고 하는 것이
    두 분이 다녀가신 길이 아닌가 싶더라구요.

    미시령으로 많이 다녀서인지 미시령, 그리고 그 너머 속초는 이제 많이 익숙한 길인 것 같아요. 많이 익숙하지만 늘 설레게 하는 길이기도 하구요. 강원도와 동해는 늘 그리움을 부르는 곳인데 두 분의 블로그를 드나들면서 눈을 맞춘 사진 덕에 더 애틋한 곳이 되었어요.
    유난히 강원도 가는 길은 아침에 출발하는 것보다 밤에 출발하는 것이 더 들뜨는 일인 것 같아요. 언젠가는 저도 이렇게 밤에 바다가 나를 향해 부르는 느낌이 있으면 바로 떠나서 다녀오는 그런 여행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1. 아이들하고 많이 다니는 건 참 좋은 일 같아요.
      우리도 문지데리고 다니긴 했는데 그때 카메라가 없어서 사진을 못찍어둔게 좀 아쉬워요.
      블로그 세상이 좋은게 기록해 놓으니 이렇게 옛날 여행도 가끔 요즘 여행처럼 즐길 수 있어서 좋아요.
      그때 한밤의 미시령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차에서 내리던 젊은 연인들이 있었는게 그 일도 생각나네요.

  2. 둘다 프리랜서다 보니… 대부분의 일이 초를 다투는 일이라서 일 끝나면 무조건 내튀는 경향이 있죠. 어차피 다음날 출근할 일도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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