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아무리봐도 20대인데
자꾸만 나이들어 간다고 한탄을 하여
만날 때마다 우리들을 헷갈리게 하는 처자가 한 명이 있다.
그 처자는 밸런타인 데이를 맞아
초콜릿이 뭇사람들에게 염장의 비수를 꽂는 날이기도 한 그날,
이 나이가 되니 이제는 초콜릿을 줄 사람이 아빠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빠에게 초콜릿을 주었더니
별로 좋아하는 기색이 아니라는 것까지 폭로한 그 처자는
아마도 밸런타인 데이에 아빠가 원하는 것은 밸런타인 17년산일 것이라는
누가봐도 쪽집게 같은 추측도 곁들이고 있었다.
어쨌거나 나는 그날 이 나이가 되니
이제는 초콜릿을 받을 수 있는게 딸밖에 없다고 한탄을 했다.
그 처자가 다음에 만나면 자신이 초콜릿을 한 보따리 줄테니
그때는 꼭 그걸로 술안주를 삼아 술을 드셔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 나이의 밸런타인 데이에 걸맞게
올해는 딸이 초콜릿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초콜릿은 밸런타인 데이를 조금 비켜서 집에 도착했다.
참 많이도 사서 넣었다.
맨 왼쪽 위에 있는 것은 초콜릿이 아니다.
속의 팥고물이 진한 달콤함으로 혓끝을 자극하는 찹쌀떡이다.
가운데 초록색 포장지에 쌓인 것은 버섯 모양으로 생긴 녹차 초콜릿이다.
포장에는 마치 찍어먹는 녹차 시럽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이번 초콜릿 중에서 제일로 맛있었다.
맨 오른쪽에 있는 것은 언젠가 집에 올 때 사가지고 온 술안주였는데
내가 그때 그걸 안주삼아 술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묻어 있는
술안주용 과자였다.
소주 안주로 삼기는 무리이지만 맥주 안주로는 아주 좋았다.
나머지는 모두 미니 초콜릿이었는데 맛은 모두 제각각이었으며
색깔도 저마다 하얗고, 노랗고, 혹은 분홍빛이거나 초콜릿 본연의 색이었다.
원래는 초콜릿 맛을 하나하나 품평하려고 했으나
하나둘 먹다 보니 품평을 정리하기도 전에
내게 남은 것은 먹고 남은 껍데기들 밖에 없었다.
품평의 시간은 딸이 보내준 초콜릿의 달콤함을 넘어서질 못했다.
초콜릿과 함께 왠 파스까지 잔뜩 넣어보냈다.
심지어 Hot Eye Mask라 불리는 안대 비슷한 파스도 있었다.
이 나이의 밸런타인 데이에 받는 선물은 먹고 붙이는 선물이었다.
난 아직까지는 딸의 선물을 받으니 기분이 좋다.
밸런타인 17년산이 나를 기쁘게 해줄 날까지는 조금 더 세월이 남은 것 같다.
4 thoughts on “딸이 보낸 초콜릿”
와~ 저 예쁜 것들을 혼자 야금야금 드셨단 말입니까.
저는 발렌타인데이가 생일인데도 쵸콜렛 구경 못했는데요.
어떻게 딸이 보내준 거라고 하나 권하지도 않고 혼자 먹냐는 얘기를 들었습지요. ㅋㅋ
저는 언제나 우리 빈이가 초코렛을 선물로 주까요?
아니, 몇살이나 되었다고 그러세요.
처음 초콜릿 받은게 고등학교 때인 것 같습니다.
완전 수제라 감동은 컸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