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 날 만났다.
화곡동에서 만난 것은 아침 11시경이었다.
동네는 일찍 문을 여는 술집이 없다며 큰 걱정을 했던 우리는
그 시간에 문을 열고 우리가 한잔할 수 있도록 해준 중국집에 감사하며
일단 빼갈로 그 날의 낮술 일정을 시작했다.
근처의 우장산을 어슬렁거리며 2차를 하자던 의견을
누군가가 행주산성이 좋다며 깔아뭉개고는
우리들을 모두 행주산성으로 데려갔다.
우리는 그곳에 도착하자 마자 또 술을 마셨다.
우리가 그곳에서 술을 마신 건
바람의 보행에 우리의 걸음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곳의 바람은 술에 취한 듯 방향없이 갈피를 잃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렸고,
우리는 우리가 한잔을 걸치고 나면
우리의 걸음도 그와 같아질 것이라며 술을 마셨다.
실제로 한잔을 걸치고 나자 우리의 걸음은 바람의 보행과 비슷해졌고
어디를 가나 바람을 친구 삼아 걸을 수 있었다.
바람도 우리를 마다 않고 우리들을 졸졸 따라다녔고,
바람이 바람같이 올라가는 숲길을 우리는 천천히 걸어서 올랐다.
바람은 우리들을 아카시아 향기가 진한 숲속으로 데려다 주었고,
내려오는 길에 우리는 바람의 걸음이 막힌 비닐 하우스 속으로 들어가
바람이 궁금해하는 그 속의 장미도 대신 구경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딱 한 송이를 내민 개망초를 만났다.
우리는 화곡동에서 만나 행주산성으로 옮겨간 그 날의 하루를
모두 그 개망초 한송이에게 기억을 부탁해 놓기로 했다.
개망초는 이제 불이 번져나가듯 마구 피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어느 날 길가다 무더기로 피어 있는 개망초를 보면
우리가 만났던 그 날의 기억들이 아마도
우리 앞에서 와글와글 거리게 될 거다.
그럼 농부 아저씨가 일하는데 옆에서 시끄럽다며
우리의 기억을 뿌리채 쑥 뽑아내 멀리 내던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그 운명을 즐겁게 달게 받겠노라며
우리의 기억들을 일단 행주산성의 개망초에 담아두었다.
함께 했던 바람이 곁을 지나가다
벌써 개망초에 담아둔 우리들의 기억을 궁금해 했고
그때마다 개망초가 흔들렸다.
6 thoughts on “그 날의 기억과 개망초”
개망초의 이야기는 어떤것일까? 막막 궁금해지는 아침이네요 ㅎ
그 참…망초도 그럴까요?
사람들 너이가…바람꼬리를 흔들며 나타났다가 산길을 따라 순하게 내려갔다고요
좋았었어요 산길..아카시아꽃내음…
그러게요 그 날 바람이 정말 시원했지요^^
아마도 그때의 개망초가 바람에게 속닥거려 어디서나 우리 하루를 말할지도 모르겠어요. 개망초가 꽃이 본격적으로 피면 상당히 무성해니까 왁자지껄해지지 않을까 상상했어요. ㅋㅋ
아^^;; 그러거에요?
개망초가 무더기로 피면 서로 서로 속닥거려서… 아하…
저는 그날 그 개망초아이가 입은 없고 눈과 마음만 있는줄 알았어요 ㅋㅋ
그날 우리의 기억들을 여기저기 퍼뜨려놓고 싶어서 그런거죠, 뭐.
사람들은 말고 개망초 같은 작고 예쁜 꽃들에게 말예요.
눈과 마음만 있는 건 확실한 거 같아요.
하지만 눈으로 말하기도 하니까요. ㅋㅋ
아 늘 시작할 때의 설렘이 기다려집니다.
아침에 호기롭게 중국집을 들어가 빼갈을 시키는 그
첫 기분
첫 술
첫 잔
이런 단어들로만 세상이 이루어진다면…ㅎ
돌아올 때
지하철에서 쿨쿨 자다 집에 다와서 깼어요.
그제서야 막 꿈에서 깬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