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은 숲의 물결이다.
숲은 푸른 잎을 채워 물결을 부르고
가을엔 그 물결을 모두 비워낸다.
겨울은 물이 메마른 계절.
물은 메마르면 드러낸 바닥을 내버려둔채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지만
한여름 숲을 가득 메웠던 잎의 물결은
바싹 마른 뒤에는 숲의 바닥을 뒹굴며 바삭거린다.
나무 가지가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마른 침을 삼키고
온겨울을 몸뚱이 하나로 지탱해가는 동안
숲은 여전히 나무로 차 있으면서도
보는 곳 어디나 마치 구멍이 숭숭 뚫린 마음처럼 휑하다.
그렇게 마음이 휑하니 비어있어
겨울산에 가면 어디나 시선을 들이밀 수 있다.
몸이 빈 것보다 더 휑한 것이 마음이다.
겨울에 산에 간 우리는 그렇게 빈 마음밭을 쏘다닌다.
봄이 오면 그 비어있던 마음에 다시 초록이 차오른다.
초록은 키작은 관목들의 잎으로
밑에서부터 물결을 채운다.
곧 나무의 우듬지까지 초록의 물결이 찰 것이다.
벌써 내 키를 넘긴 초록의 물결을 지나 숲을 간다.
이제 곧 산에 오면 심해를 유영하게 될 것이다.
메마른 산에 초록의 물결이 서서히 차오르고 있다.
봄숲의 나무는 살아서 제 생명으로 세상을 살아나게 한다.
우리도 그와 같으리라.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서 세상이 살아나는 것이리라.
봄숲에 가서 다시 차오르는 초록과
그 초록의 물결에 설레는 것도
메마른 세상을 견디며 살아남은
우리의 생명감 때문이기도 하리라.
4 thoughts on “봄숲과 초록”
전 저보다 작은 그런 풀을 본 적이 별로 없어요.
왜 다들 그렇게 큰지 사람이나 풀이나 나무나
우듬지까지 갈 것도 없이 초록은 저를 넘어간 지 오래입니다. ㅎ
풀과 눈맞추는 법을 아는 군요.
이번에 만나면 배워야지.. 그 방법 좀.
제가 이런 멋진 곳을 마음대로 찾아다녔고,
무심코 걷고 올랐던 길에 담긴 아름다운 계절 철학을
호흡했다는 게 즐겁기 그지없습니다.
저 위의 사진은 사실 iami님이 먼저 길을 열어주신 덕분에 따라가서 얻은 거예요. 항상 팔당역 뒤로 다니다가 언젠가 올려주신 블로그 내용보고 담에 나도 옆으로 한번 가봐야 겠구나 생각했다가 그 길로 가서 좋은 사진을 많이 얻었어요. 이제는 거의 초록으로 덮였지만 사진을 찍을 때는 가장 초록이 이쁠 때라 한참 동안 걸음을 멈추게 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