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까지만 해도
마당을 온통 넝쿨장미가 뒤덮고 있었다.
넝쿨장미의 그 붉은 아름다움에 혹해
마당 위로 2층까지 이어지는 줄을 촘촘히 쳐주었고
넝쿨장미는 그 가는 줄을 용케도 잡고 이층으로 날아올라
거의 지붕까지 엿볼 정도였다.
지난 해 그 줄을 모두 걷어내고
넝쿨장미의 줄기도 모두 잘라냈다.
넝쿨장미는 졸지에 담벼락 아래로 쭈구려 앉아야 했다.
넝쿨장미를 걷어낸 손바닥만한 화단엔
올해 담벼락을 넘은 햇볕이 매일 지천으로 찾아들었다.
그리고 화단에서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많은 풀들을 보게 되었다.
어떤 것은 벌써 무릎 정도의 높이까지 자랐다.
비비추는 넝쿨장미 시절에도 있었으나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무성하여
거의 모두 화분으로 옮겨 심었다.
어머니는 한켠에 호박도 심었다.
시장에서 사온 파도 담벼락 밑에 세우고
잠시 목을 축이고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넝쿨장미의 아름다움에 혹하던 시절에는 그 붉은 빛에 취해
넝쿨장미가 햇볕을 독식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걷어내고 보니 햇볕에 목말랐던 모든 것들이
드디어 내게 얼굴을 내밀었다.
지난 해 걷어낼 때는 많이 아쉬웠으나
걷어내고 올해 봄과 여름을 맞아보니
넝쿨장미를 담벼락 밑으로 쭈구려 앉힌 것은 잘한 일이다 싶다.
작은 화단이지만 이 집을 떠나기 전에
온갖 풀들이 더불어 사는 짧은 시간을 함께하다 간다.
8 thoughts on “햇볕의 독식”
저희도 몇 번 저 아늑한 정원에서 여름밤 정취를 느낀 추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사가시면 넝쿨장미, 감나무 같은 애들은 가까이 두지 못하시겠지만,
또 그 환경에 어울리는 새 친구들이 새로운 인상과 추억을 만들어 주지 않겠습니까.
아파트 바로 밑 1층에 화단이 있더라구요.
거기 꽃들도 있고.. 나무도 몇그루 심어져 있어 아마도
걔들과 새로이 친구하게 될 듯 싶어요.
그곳은 햇볕이 잘 들어서 잘 자라는 것 같아요.
새로 정붙여야죠, 뭐.
아.. 그러시군요…
아쉬움이 가득해 보이세요…
이사가 얼마남지 않으셨네요..
온갖 풀들이 동원님의 눈길을 받으며
그 아이들 다운 인사를 할것 같아요…
헤어지는건 풀들과도 왠지 슬퍼져요^^;;
아… 이 저의 지나친 찔찔이 감성…ㅎ
그녀가 비비추는 가져간다고 빈화분으로 옮겼고.. 장미하고 감나무는 함께 갔으면 좋겠는데 여건이 안되는 거 같아요. 특히 감나무는 올해 감이 엄청 많이 열려서 더더욱 아쉬움이 큰 듯. 오늘도 아침에 슬쩍 엿보니 한 귀퉁이에 무슨 노란꽃이 하나 더 핀 것 같아요.
작은 화단이지만 이 집을 떠나기 전에
온갖 풀들이 더불어 사는 짧은 시간을 함께하다 간다.
햐-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문장.
짧은 시간을 함께하다 간다. 비장하기도 하고요. ㅎ
그냥 이 집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시원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래서요.
이층까지 모두 우리가 쓸 때도 이층에 작은 화단이 하나 있었는데 그때도 이름 모를 풀이 나곤해서 얘는 어디서 우리집을 찾아왔을까 신기하곤 했었어요.
아래층은 장미를 키운 뒤로는 그늘 때문에 풀들이 잘 자라질 못했던 거 같아요.
이제 이사갈 날이 한달여밖에 남지를 않았네요.
하~~
여들 다 계셨네요ㅎ
진작 말씀을 하셔얍죠.
저는 늦은 밤 홀로 막걸리 한잔 했습니다.
요즘은 여기서도 자주 모이네요.
전 맥주로 했습니다.
다섯 병을 만원에 준다기에 혹해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