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면의 방

대개 방은 네모지다.
하여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면을 둔다.
하지만 때로 방은 장방형의 모습을 하기도 한다.
예전에 내가 주로 작업을 하던 방이 그랬다.
그 방은 네모나기보다 한쪽으로 긴 장방형의 방이었다.
한쪽으로 길다 보니 그 방은 네 개의 면을 가졌다기보다
단 두 개의 면을 갖고 있고,
나는 그 두 개의 면 사이로 끼어든 느낌이었다.
장방형의 방은 항상 느낌이 그렇다.
그 방에 앉아 있으면 방의 가운데 앉아있는 느낌이라기보다
면과 면, 그러니까 앞뒤의 두 면 사이에 끼어 있는 느낌이 들곤 했다.
알고 보면 그 방은 네 면을 가진 방이 아니라
옆의 두 면이 실종되어 앞뒤의 단 두 면 만으로 이루어진 방이다.
이사하면서 내가 이용하게 된 방은 네 면을 모두 가진 방이었다.
말하자면 방의 한가운데 앉았을 때
네 면이 모두 등거리에서 공평하게 시야에 들어오는 방이다.
나는 오늘 그 방에 앉아 빙그르르 한바퀴를 돌며
방의 네 면을 모두 차례차례 마주해 보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8월 9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 집에서

남쪽.
남쪽은 창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이다.
하늘을 보여주는 창이다.
하늘을 살필 수 있는 이 좋은 자리는 책상이 차지했다.
그리고 모니터 세 개가 그 책상을 점유했다.
두 개는 나의 작업용 모니터이고, 하나는 서버 컴퓨터에 연결되어 있다.
왼쪽으로 모니터 하나를 더 놓을 예정이다.
예전의 맥 G4와 연결할 모니터이다.
나는 이 자리에 앉으면 하늘의 낯빛을 살필 수 있고,
컴퓨터로는 최신의 현대에서 과거로 넘나든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8월 9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 집에서

서쪽.
서쪽으로는 책꽂이 두 개가 자리잡았다.
시집과 소설책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문학 관련 서적들이 들어차 있다.
나의 방에서 서쪽은 문학의 향취, 그것도 시의 향취에 젖는 곳이다.
아마도 책꽂이를 살펴본 사람이라면
나의 문학적 취향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시인이 오규원이란 점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규원의 뒤는 황동규, 그리고 그 뒤는 김주대 시인에게 배려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8월 9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 집에서

북쪽.
북쪽에도 책꽂이가 하나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이 곳은 원래 작은 CD장이 자리잡고 있었던 곳이다.
그러다 거실을 엿보던 책꽂이 하나가
거실 대전에서 패하여 쫓겨들어오자 자리를 양보해준 곳이다.
이곳의 책들은 잡다하다.
하지만 간혹 문학의 순수를 고집하다 보면
문학이 넓게 열리기 보다 문학이 문학에 갇힌다.
이곳의 잡다한 책들은 그런 의미에서
문학이 문학에 갇히지 않도록 해주는 소중한 구실을 하곤 한다.
문학 못지않게 문학 아닌 것들이 소중하다.
이곳은 원래 두 개의 스위치와 하나의 전기 콘센트가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책꽂이를 놓으면서 그 스위치를 불편없이 켜고 끌 수 있도록
벽과의 사이에 적당히 틈새를 두었다.
그 때문인지 스위치를 켜기 위해 책꽂이의 뒤로 손을 넣을 때마다
책꽂이의 등뒤로 깊숙이 손을 찔러 넣는 기분이다.
북쪽은 또한 두 개의 문을 두고 있다.
하나는 몸이 나갈 때 사용하는 문이고,
하나는 몸에서 내보낼 것이 있을 때 사용하는 문이다.
말을 바꾸면 하나는 몸의 출입구이며,
다른 하나는 몸이 이용하는 배설의 문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8월 9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 집에서

동쪽.
해뜨는 동쪽은 이 방에서 유일한 그녀의 구역이다.
붙박이 장롱으로 이 방에서 자신의 구역을 점유한 그녀는
이곳을 통하여 자고 또 입는 시간을 관장한다.
하루의 시작은 태양이 열지만
내 방에서 입고 자는 모든 일들은 그녀가 열고 닫는다.
붉은 그녀의 구역이 내 방의 동쪽에 있다.

4 thoughts on “4면의 방

  1. 햐~
    이제 하나씩 정리하고
    살림들이 안정을 찾아가는군요.
    멋지고 새로운 기분, 그리고 시원하게 터인 기분….
    창문이 있는 곳에 딱 놓인 책상 멋집니다.
    행복이 가득한, 명문이 무한정 쏟아지는, 그리고 기옥님 사업이 번창하는 그런 집이 되기를요…..

    1. 고마워요.
      많이 바쁘다면서요.
      이제 놀러오면 재워줄 수도 있어요.
      보조 책상이 들어오면 내 방은 거의 자리를 잡을 듯 싶어요.
      이사 기념으로 오늘은 무엇인가 하나 쓰던가 해야 겠어요.
      곧 얼굴봐요.

  2. 새로 장만하신 물푸레나무 책상이 공개되는군요.
    넓다란 나무색 상판이 근사해 보입니다.
    책도 책이지만, 단독 책장과 책상 밑까지 웬 씨디, 디뷔디가 저리도 많답니까?
    비록 거실대첩에선 일시 패퇴하셨지만, 동쪽 장롱에 슬금슬금 잠입하면서
    권토중래를 모색해 보셔도 되겠어요.^^

    1. 물푸레나무 책상을 장만해준 것까지는 좋았는데
      좋은 책상이라고 지저분하게 쓰지 말라는 등
      어찌나 간섭이 심한지요..
      물푸레나무 책상을 집어던지고 싶은 심정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원하지만 간섭하지 않는다는게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장롱은 자기 영역이라고 그곳에 내 것도 좀 넣으려고 해도
      하나도 넣어주질 않고 제 물품은 모두 신발장으로 몰아내더군요.
      오늘은 저렴한 보조 책상을 하나 시켰어요.
      비싸면 모시고 살아야 할 것 같아서
      내 맘대로 저렴한 것을 골랐죠.
      이제는 CD하고 DVD 시대도 저물고
      외장 레이드 시대가 올 것 같습니다.
      아직은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곧 저렴해지면
      음악이고 영화고 컴퓨터 자료고
      모두 외장 레이드에 담아
      네트웍으로 접근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