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클 때 대개 그렇듯이 딸아이도 어렸을 적
어떤 가수를 아주 열성적으로 좋아했었다.
그때 이해할 수 없는 행태 중의 하나는
그 가수의 CD를 구입한 뒤에
포장도 뜯지 않고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이었다.
CD를 듣는데서 행복감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포장도 뜯지 않고 갖고 있다는 것에서 행복감을 누리고 있었다.
그렇게 딸아이는 듣는데서 오는 행복 이외에
갖고 있다는 데서 오는 행복을 구별하면서
그 둘을 모두 누리고 있었다.
이번에 나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니, 우리 모두는 사실 갖고 있다는 데서
암암리에 어느 정도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나에게 그 행복을 준 것은 애플의 노트북인 파워북 160이다.
고장이 나서 들어오지도 않는다.
애플의 제품을 쓰면서 좋은 점 가운데 하나는
한 회사의 제품이다 보니 모든 모델에 익숙하게 되고
기술의 발전에 따라 디자인도 달라져
제품만 보면 시대까지 함께 읽힌다는 것이다.
이 제품은 내가 유일하게 산 노트북이자 초창기의 노트북이다.
컬러도 아니고 흑백 제품이다.
이 뒤로 컬러 제품이 나왔고
애플의 노트북은 요즘은 맥북으로 불리면서 그 이름도 바꾸었다.
파워북 160이 비록 초창기 모델이지만 이것으로 인터넷도 했었다.
팩스겸용 36kps 모뎀을 장착하여 인터넷을 즐길 수 있었다.
지금이야 이더넷 라인을 꽂으면 곧바로 인터넷 세상으로 연결되는
편리하기 이를데 없는 세상이지만
이때만 해도 전화선을 이용하여 PPP라는 방식으로 인터넷을 했었고,
그 설정이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이 팩스 모뎀은 기본 항목이 아니어서 파워북을 산 뒤에 따로 장착을 했었다.
이 제품으로 엄청나게 일을 많이 한 기억이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속도가 쳐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손에서 멀어졌고
결국은 고장이 나서 쓰지도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 파워북을 버리질 못하고 이번에 이사를 할 때도 그냥 들고 왔다.
이 제품에 서린 많은 기억들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간혹 제품은 그냥 제품이 아니라 기억을 담고 있는 창고 같은 것이다.
그녀랑 언성을 높이며 싸우다 이 파워북의 뚜껑을 심하게 닫아버리는 바람에
그만 상단 뚜껑이 망가져 30만원을 주고 수리를 했던 기억도 있다.
노트북이 흔치 않던 시절,
원고를 넘겨주려 갈 때 지하철에서 무릎 위에 펼쳐놓고는
사람들의 눈길을 모두 모으면서 자랑질을 했던 기억도 있다.
모두 아득한 기억들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 제품과 안녕을 고하려 한다.
멀지 않은 시기인데 마치 시대가 아득하게 사라지고 있는 느낌이다.
기술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 보니
짧은 시간에 시대가 아득한 과거로 까마득하게 물러난다.
잘가라, 내 오랜 옛친구, 파워북 160.
8 thoughts on “안녕, 파워북 160”
저는 7200/120을 잘 쓰다가 아이 게임용으로 줬는데, 이젠 아무도 안 써 사무실
구석에 방치돼 있고, 그후엔 한동안 맥과 거리를 두다가 3년 전에 맥북 13인치,
그리고 한 달 전에 아이패드2로 다시 맥을 잇고 있습니다.
맥 라이프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시군요. 맥북은 하나 사고 싶은데 거의 집구석에 처박혀 있는 몸이라 저한테는 맥프로나 아이맥이 딱인 듯 싶어요. 사고 싶기로는 맥프로에 새로나온 선더볼트 디스플레이인데 언제나 그렇듯이 돈이 문제라는. ㅋㅋ
전 Classic , SE/30, Si II 로 레이져 라이터를 사용했어요. 엘렉스 시절에 대학에 지원하는 맥아카데미라고 있었는데 거기를 저희 동아리에서 관리했는데 제가 그 열쇠를 가지고 있어서 맘껏 사용했지요.
PowerMac은 제가 처음 산 맥이라 버리질 못하고 있어요.
이제는 G4도 속도 때문에 쓰지는 못하겠더군요. 프로그램들 덩치가 커지니 어쩔 수 없는 듯. 저는 사고 팔고를 반복했죠. 이상하게 새 맥을 살 때 일이 많아져서 산 값을 금방 뽑았던 기억이예요.
전 아직도 처음 산 PowerMac 6100/AV를 두개 가지고 이사할 때 마다 가져오고 있습니다. 하나는 중고를 선물로 받은 일본 출시제품과 함께요… 아직 버리질 못하고 있습니다.
전 LCII로 맥 생활을 시작했는데 파워맥 6100, G4를 거쳐 이제 아이맥까지 왔네요. 맥북은 언제 장만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워낙 비싼데다 요즘은 맥보다 카메라에 관심이 많아서 돈생기면 아무래도 렌즈를 사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눈깔사탕 같은 마우스볼이 꽤나 인상적인 노트북이군요.
삼색인지 사색인지 하는 애플의 옛 로고도 선명하구요.
저 골동품을 처분하신다니, 마음이 짠~하시겠습니다.^^
가장 마음이 짠 했을 때는 쿼드라 840이라는 기종이었어요.
처음으로 산 완전 전문가용 맥이었죠.
그 기종으로 정말 많은 일을 했었어요.
그 전에는 넘보지 못했던 3D도 처음으로 시도해보곤 했었죠.
빠르다고 해도 렌더링이 느려서 3D 작업한 뒤에 맥을 켜놓고 퇴근을 하면 아침 출근 때 완성되어 있곤 했었어요.
올 때 짐정리하면서 보니까 LC3라는 기종 한 대가 다락방에 있더라구요. 그건 버리고 왔어요.
노트북은 아까워서 갖고 왔는데 이제는 버려야 할 때인 듯 싶어서 이번에 정리하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