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내가 살았던 시골의 우리 집 문은
대개의 시골집이 그렇듯이 창호지로 된 문이었다.
달빛이 좋은 날 불을 끄고 방에 누워있으면
얇은 창호지문에 달빛이 한가득이었다.
세상은 조용했지만 그렇게 달빛이 문에 가득 차 있는 날이면
밤새 달과 속삭이는 느낌이었다.
서울로 이사오고 난 뒤로
창호지문을 가득 채워주던 그 달빛과의 교감은 잊어버렸다.
거의 달을 올려다볼 기회도 가지질 못하고 살았다.
그러다 2층짜리 단독 주택을 사던 날,
정리를 하고 1층의 안방에 누웠었다.
그 날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바로 창에 걸린 달 때문이었다.
자리에 눕자 창 앞에 있던 은행나무 가지 사이로
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숨겼다 하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겨놓고 있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달을 다시 찾은 느낌이었다.
그때 방에 누우면 달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집의 바로 앞으로 자리한 집이 1층짜리 단층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그 집의 자리에 높은 건물이 들어섰고
다시는 안방에 누워 달을 올려다 보는 사치는 누릴 수 없었다.
시골살 때는 집의 높이가 따로 없었다.
모두가 집의 높이를 나란히 맞추고 살았다.
집이 집을 가리는 일은 없었다.
서울에선 집들의 높이가 들쭉날쭉이었고,
너무 붙어있어 앞집이 뒷집을 가리고, 뒷집은 또 그 뒷집을 가렸다.
아주 높이가 높은 집은 많은 뒷집들의 달을 혼자 독차지했다.
이제는 달이 보고 싶을 때 마당으로 나서거나 골목까지 나가야 했다.
그러다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아파트로 이사와서 오늘 처음으로 베란다에서 다시 달을 마주했다.
사실 아파트로 이사간다고 했을 때
그럼 이제 다시 달을 볼 수 있는 것이냐고 가장 먼저 물었었다.
그리고 드디어 달을 마주하게 되었다.
삼각대를 꺼내고 달의 사진을 찍었다.
달빛은 가리면서 드러내는 빛이다.
어렸을 적, 시골에서 자랄 때
그다지 밝지 않아 모든 것을 확연하게 보여주진 않지만
달빛만 있으면 낮의 기억을 더듬으며 밤길을 갈 수 있었다.
가려주면서 드러내기에 달이 뜨면
동네의 어른들도 아이들에게 내주었던 한낮의 개울로
미역을 감으러 나올 수 있었다.
밤은 가리고 햇볕은 드러내려 들지만 달은 그 어느 쪽도 아니다.
밤이나 햇볕과 달리 달은 가리면서 드러내준다.
오랜 만에 그 달을 다시 찾았다.
구름이 남도의 나그네라도 되는 양
빠른 걸음을 옮기며 달을 스쳐 흘러가고 있었다.
6 thoughts on “다시 찾은 달”
동원님…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글은 가끔 들러서 꾸준히 보고 있지요… ^^ 이사하신 새집 아주 근사했어요… 특히, 천장까지 닿을것 같았던 씨디들… 대박이었습니다.ㅋㅋ
출간기념회에서 단체로 찍어주신 사진 한장 받을 수 있을까해서요. 눈감으면 한분한분 얼굴들과 그날 그자리에서의 멋진 기억들이 선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가물가물하네요… ㅋㅋ…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은 기억이네요~
이사로 바쁜데다 컴퓨터가 말썽을 부려서 정리를 못하고 있어요. 정리되는대로 연락줄께요.
며칠 전 저희집 베란다에서 본 날렵한 초승달이 이쁘길래 이사 선물로 클릭해 보냈는데,
요즘 불안정한 날씨 땜에 털보님 새집으로 배달됐을 땐 저렇게 꽉 차도록 컸군요.^^
선물이 맘에 안 드시면 다시 뻥~ 차세요. 반쯤 패인 달로 반송하실 수 있으니깐요.
서울도 예전엔 창호지 문이어서, 어스름한 추억이 공유되는데요.
이제 곧 보름달되지 싶어요. 이번에 차면 그때가 추석인건지.. 한번 더 차야 추석인지 모르겠네요.
우리 모임은 다음 주에 화장실 공사가 예정되어 있어서 그게 끝나면 갖는 것이 적당할 듯 싶어요. 날짜 잡히는대로 연락드릴께요.
달 …근사해요..
달을 기억하고 바라보고 싶어하셨다는 말씀이 더 인상적이에요
아파트로 이사하면 달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하셨다니
저는 그 감성에 조금 놀랐어요…^^
풍부함도 다… 사람마다 마음에 따라…음…
이사 다시 축하 드리고요 달과 같은 아름답고 둥근 행복이 깃드시길요!
좋게 말하면 감성이고 사실대로 말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셈이죠. ㅋㅋ
높은 아파트가 앞쪽에 서 있긴 하지만 베란다에 나가면 앞이 트여서 그건 좋은 거 같아요.
구름이 좋을 때는 하늘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아주 크게 업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