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의 효용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8월 20일 작은 구멍을 통해 거실로 나가고 있는 네트웍 선

아파트로 이사와서 가장 골치 아픈 것이 컴퓨터 네트웍이었다.
대부분의 집이 컴퓨터가 한 대 뿐이지만
우리 집은 각자가 자기 방에서 자기 컴퓨터를 쓰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단독 주택에 살 때는 그냥 내가 LAN선을 설치하여
두 방의 네트웍을 구성했었다.
선은 보기 흉하지 않게 장롱의 뒤로 설치를 했었다.
물론 그때도 벽을 뚫고 가는 것은 쉽지가 않았는데
다행히 에어컨을 설치하려고 뚫어놓은 구멍이 있어
그것을 LAN선 연결에 이용했었다.
아파트에서는 그게 쉽지가 않다.
나는 내 방에서 인터넷을 쓰니까 아무 불편이 없는데 문제는 그녀이다.
그녀의 아이맥은 때로 거실에서 사용되기도 하고
또 그녀의 방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그녀의 방은 다행히 기본으로 유선이 한 회선 들어가 있다.
그래서 그녀의 방으로는 손쉽게 유선 네트웍을 구성할 수 있었다.
문제는 거실이었다.
거실은 IP TV가 놓여있어 이미 한 회선을 잡아먹은 데다가
그곳에서 분리한 인터넷 회선이 나의 방으로 들어와 있었다.
방 하나에 네트웍 회선은 단 두 선밖에 이용할 수 없는데
이미 두 선을 다 써버린 것이 거실이었다.
할 수 없이 거실에선 무선 네트웍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선은 속도가 너무 느려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무선으로 내 방의 컴퓨터를 연결하여
영화 하나를 스트리밍으로 재생해 봤더니
해상도가 좋은 경우에는 자주 버벅거렸다.
그런데 이 집과 무슨 인연이 있는지
거실과 내 방 사이에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다.
케이블 TV의 회선이 그 구멍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녀에게 저게 도대체 무슨 선이냐고 물어보았더니
이 집의 주인이 케이블 TV를 보기 위해 어렵게 뚫어놓은 구멍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고 한다.
케이블을 뽑아버리니 LAN선이 충분히 드나들만한 작은 구멍이 나타난다.
LAN선을 넣었더니 무사통과였다.
동네 컴퓨터 가게의 아저씨께 부탁하여
LAN선 끝에 단자 하나만 찝어 달라고 했다.
집에 와서 해주고 갔다.
자기도 이 아파트에 산다며 이사온 환영 선물이라고 돈도 받지 않았다.
구멍을 뚫고 나가 거실로 연결된 LAN선은
그녀가 사용하는 아이맥의 이더넷 포트로 무사히 연결되었다.
네트웍은 말할 수 없이 빨라졌다.
케이블 TV를 보기 위해 전의 주인이 뚫어놓은 구멍 하나가
이사온 집에서 크나큰 효용을 발휘했다.
집을 이렇게 딱맞게 얻기도 힘들 듯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8월 20일 아이맥의 이더넷 포트에 연결된 네트웍 라인

4 thoughts on “구멍의 효용

  1. 이제는 부업하셔도 될 듯 하시네요.
    컴퓨터에 관해서 해박하시니…

    전 아파트 단자함에 공유기 넣어서 집 전체에 다 유선으로 붙여 버렸습니다.

    1. 단자함 자체가 일종의 허브처럼 되어 있더라구요.
      문제는 어느 단자가 어느 방의 것인지를 알 수가 없어요.
      그걸 파악하는 기계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방과 방 하나를 연결하는 것은 전문가에게 부탁해서 하고
      거실과 방 하나는 결국 구멍을 이용했죠.
      유선이 빠르기는 빠르네요.

  2. 인터넷 연결이 안 되거나 속도 문제가 생길 때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는데,
    묘수를 내셨네요. 이제 공사판 김 감독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어제 근사한 시간 선사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더위가 지나가면 종종 마실가겠습니다.

    1. 손님을 초대해놓고 너무 기분이 업되어 그만 제가 많이 취하고 말았습니다.
      좋은 사람들이 오니 자제가 잘 안되요.
      오늘 사진 정리하고 있는데 3대 기타리스트의 행복이 다시 한번 느껴지더라구요.
      종종 방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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