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란 것이 단순히 짐을 옮기는 것이 아닌 듯 싶다.
특히 이번 이사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랬다.
그동안은 있던 짐을 그대로 갖고 옮겼으나
이번에는 이사를 하면서 대부분의 살림살이를 새로 장만했다.
그 때문에 이사를 하고 자리를 잡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옛집의 마당 – 살림은 집안에 있는 법이지만
옛집에는 마당이 있어 살림 중 여러 가지가
마당으로 나가 자리를 잡고 있기도 했다.
정이 많이 든 집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좀 지겹기도 했다.
가장 나를 지겹게 한 것은 종종 비가 샌다는 점이었다.
특히 올해는 비가 많아 아래층 거실에서 비가 많이 샜다.
웬만한 비에는 새질 않는데
집중 호우로 50mm 정도를 넘어가면 기별이 온다.
한해에 그런 경우가 한두 번 있었으나 올해는 상당히 잦았다.
신문지 몇 장 깔아놓았다가 치우면 되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비가 샐 때마다 마음이 많이 심란했다.
그러나 비비추가 유난히 많았던 작은 화단은 아주 좋았다.
그 화단을 한 켠으로 두고 있던 마당있는 집은
곧잘 나의 사진 무대가 되면서 많은 추억을 남겨주었다.
이제는 사진으로만 남은 옛집이 되고 말았다.
앞쪽 베란다 – 이사는 7월 29일에 이루어졌지만
이삿짐이 모두 새로운 집으로 옮겨진 것은 아니었다.
도배 공사를 하고 있어
이삿짐은 이틀 동안 이삿짐 센터의 창고 신세를 져야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곧바로 새집으로 이사를 간 것이 있다.
그것은 화분과 컴퓨터였다.
화분은 이사를 가자마자
앞쪽 베란다가 이미 찍어놓은 자기들의 자리란 듯이 자리를 잡았다.
이사를 가기 전에 그녀는 화단의 비비추를 화분으로 옮겼다.
화단에서 자라던 꽃나무 하나도 화분으로 옮겨심었다.
올해 그곳에서 자라난 이름모를 식물도 화분으로 거쳐를 옮긴 뒤
새집까지 함께 왔다.
아파트의 베란다는 옛집의 마당보다 빛이 더욱 잘든다.
그녀는 화분의 식물이 예전보다 훨씬 더 잘 자란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식물은 흙만 파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
식물은 아울러 빛이 있어야 자란다.
화분들은 아주 좋은 집으로 이사를 와 자리를 잘 잡은 것 같다.
부엌 – 부엌 살림 중에서
이삿짐을 빼던 7월 29일날 미리 새집으로 온 것은 냉장고 였다.
냉장고는 오기 전에 손잡이 하나가 부러져 수리를 받아야 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부품이 없어 수리를 받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냉동고의 손잡이를 냉장고로 옮겨붙이고
냉장고 전체에 시트지를 붙인 뒤 고양이 문양을 붙여넣는 방법으로
대대적인 냉장고 꾸미기에 돌입했고
그리하여 냉장고는 완전 성형을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예전의 베이지색 냉장고 대신 회색빛 냉장고가 부엌에 놓이게 된 사연이다.
싱크대는 7월 30일날 새로 설치했다.
식탁과 전자렌지, 세탁기도 이번에 새로 장만했다.
어머님 방 – 어머니는 문간의 가장 작은 방을 자신의 몫으로 삼았다.
원래는 조금 더 큰 방을 쓰시라고 했으나 어머니가 마다하셨다.
8월 5일날 장롱이 들어왔고, 서랍장은 8월 10일에 왔다.
장롱이 온 날 대충 짐이 정리되었다.
8월 6일에는 어머니 방에 새로이 27인치 TV 수신용 모니터를 설치했다.
컴퓨터 모니터로도 쓸 수 있는 제품이다.
그동안 어머니가 쓰던 17인치 모니터는 거실로 내왔다.
어머니는 장롱과 화장대 겸용의 서랍장을 아주 마음에 들어하셨다.
TV도 IP TV로 회선을 바꾸어 화질이 크게 좋아졌다.
다만 IP TV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조금 시간이 걸리고 있다.
내 작업실 – 가장 큰 방을 내가 차지했다.
방이라기보다 작업실이다.
작업실의 풍경은 예전과 비교하면 크게 바뀌었다.
원래 내 작업실에는 책꽂이가 다섯 개에 CD장 세 개가 있었으나
그녀가 책꽂이 두 개와 CD장 두 개를 놔두고는 모두 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냥 가져다 쓰자고 했으나
그녀는 그렇게 버리기 아쉬우면 삶아 드시고 오라고 했다.
삶아 먹는데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고
또 조리법도 딱히 떠오르질 않아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
이번 작업실은 새로운 책꽂이 세 개가
옆과 뒤에서 나를 감싸주는 형세를 주축으로 하여
물푸레나무 책상이 내가 들어갈 때마다 나를 반기는 형국으로 꾸며졌다.
아울러 한쪽으로는 그녀의 장롱이 버티고 있다.
책상과 책꽂이는 8월 2일에 왔고, 장롱은 8월 4일에 왔다.
책상이 부족하여 구입한 흰색 보조 책상은 8월 12일에야 왔다.
8월 13일에는 용산에 나가 컴퓨터의 스피커와 하드를 구매했다.
그리하여 컴퓨터의 스피커를
예전의 3만원짜리 중국제 5.1 채널 스피커에서
브리츠의 2.1 채널 스피커로 바꾸었다.
예전에는 스피커가 중국제로 허접했어도
사운드 카드가 워낙 좋은 것이라 사운드가 들을만 했다.
컴퓨터를 바꾸면서 그 사운드 카드를 쓸 수 없게 되었고
그러면서 사운드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이번에 스피커에 8만원을 투자하여 어느 정도 들을만한 것을 장만했다.
모두 3대의 컴퓨터와 4대의 모니터가 이 작업실에 자리를 잡았다.
한 대는 내가 메인으로 쓰는 작업용 컴퓨터이고
다른 한 대는 G4이며,
아울러 웹 서버로 사용하는 리눅스 체제의 컴퓨터가 한 대 있다.
책상의 왼쪽으로 8개의 외장 하드들이
무슨 출정을 기다리는 군단처럼 늘어서 있는 것도 볼만하다.
스피커가 새롭게 교체한 것이 아니라
내부의 DVD 드라이브도
8월 20일에 블루레이 드라이브를 추가하여 보강을 했다.
나로선 아주 쾌적한 작업 환경이 갖추어졌다.
딸과 그녀의 방 – 딸이 오면 딸의 방,
딸이 일본에 가 있을 때는 그녀의 방이 되는
이중 용도의 방으로 이용된다.
이곳의 화장대는 원래는 내가 쓰려고 산 작은 보조책상이었으나
그녀가 내 방에 놓기에는 보기 싫다며 자신의 방으로 가져가 화장대로 삼았다.
책꽂이도 원래 내 방에 사려고 두 개를 들였으나
분위기가 잘 맞지를 않아 이 방으로 옮겼다.
이곳의 침대는 원래 사용하던 것이다.
들어가면 가장 아늑한 곳이기도 하다.
뒷쪽 베란다 – 이사오고 나서 거의 매일 비가 내리더니
8월 5일에 드디어 하늘이 맑은 낯빛으로 우리들을 반겨주었다.
뒤쪽 베란다로 나가면 주변의 아파트들이 동네를 둘러싸고 있다.
그 뒤로 구름이 놀러와 잠시 좋은 풍경을 선물했다.
해도 앞쪽이 아니라 뒤쪽 베란다로 나가야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남향이라 그런지 동쪽을 뒤쪽 베란다에서
더 잘 마주할 수 있게 되어있는 듯하다.
뒤쪽 베란다는 김치 냉장고와 세탁기의 차지가 되었다.
거실의 소파 – 거실에선 이사하고 나서 한 때 그 자리를 놓고
그녀의 소파와 나의 책꽂이가 거실대첩을 벌였다.
승리한 것은 그녀의 소파였다.
소파는 8월 16일 화요일에 왔다.
그녀의 얼굴에 만족스런 표정이 가득했다.
그날 나는 알게 되었다.
사람마다 서로 즐거움이 다르다는 것을.
나는 용산에 나가 2TB짜리 하드 두 개를 사갖고 들어올 때
얼굴에 웃음이 가득 담기고
그녀는 거실에 소파를 들일 때 웃는다.
거실의 소파에 누워있는 그녀의 편안한 휴식을 보니
그녀가 거실대첩에서 소파 군단을 내세워 결전을 치룬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거실은 아울러 에어콘의 자리이기도 하다.
에어콘은 원래는 맞은 편에 있다가 배관 문제로 자리를 옮겼다.
8월 1일 월요일에 처음 설치했었으나
아래층의 항의가 들어와 8월 8일 월요일에 위치를 바꾸어 재설치했다.
거실의 그림 두 점 – 거실의 한쪽 벽에 이상열 선생의 그림 <개나리>가 걸렸다.
다른 벽면에는 또다른 이상열 선생님의 그림 <무릉도원>이 걸려있다.
오디오와 17인치 모니터가 자리잡고 있으며
가끔 그녀의 27인치 아이맥이 한쪽으로 끼어든다.
내 화장실 – 화장실은 가장 늦게 공사를 시작했다.
8월 17일에 시작하여 철거, 타일, 도기 장착의 순서로 3일 동안 계속되었다.
그 공사 덕택에 거의 나만 쓰는 별도의 화장실이 하나 생겼다.
언젠가 옛날 우리 집의 화장실에 품위를 선물해 주었던 홍순일씨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마 순일씨 도움이 없었다면 화장실 고칠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화장실은 그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나 다름없다.
원래는 있던 화장실을 그대로 써보려고 했으나
화장실에 밴 냄새를 견디기가 어려워 무리를 했다.
변기를 뜯어내고 화장실을 새로 고치자 요술같이 냄새가 사라졌다.
이제는 문을 열어놓고 산다.
주 화장실 – 주 화장실도 홍순일씨 도움으로 모습이 크게 바뀌었다.
원래 있던 욕조를 없애고 샤워 부스를 설치했다.
예전에는 한 사람이 샤워를 하고 있을 때면 화장실에 들어가기가 어려웠으나
이제는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
아무래도 그녀가 샤워할 때마다
이상하게 손을 씻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 듯하다.
이제 거의 모든 것이 자리를 잡았다.
거의 20여일이 걸린 것 같다.
사람들을 불러 이 집에서 새로운 추억을 쌓아가는 일만 남았다.
2 thoughts on “이사와 자리잡기”
이사 편에 이은 여름방학일기 2편이군요.^^
방별로 사연과 용도 그리고 만족이 다 제각각 다르면서 연결돼 보이는 게
인상적입니다. 곧 친견의 영광을!
이제 거의 정리가 된 듯 싶어요.
저녁 때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