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의 어라연 가는 길 – 영월, 정선 기행 11

정선에서 영월로 올 때 미리 마음 속에 점찍어둔 곳이 있었다.
바로 어라연이다.
비오는 날 강변을 따라 바로 밑까지 갔던 어라연을
이번에는 길을 달리하여 산으로 오른 뒤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영옥씨네 가족은 모두가 함께 나섰고,
그녀는 몸의 상태가 좋지 않다며 그냥 숙소에 남았다.
나중에 들으니 함께 갔었던 문산리까지 들어가
다리밑의 시원한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렇게 산으로 올려보내놓고 기다리는 것도 괜찮았다고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3일 강원도 영월에서

걸어가는 첫부분은 그냥 찻길이기도 하다.
한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폭이다.
그러나 사람은 셋이 나란히 가기에 충분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들어가는 입구의 안내판에선 어라연까지 가서 돌아오는데
3시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되어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3일 강원도 영월에서

고개를 하나 넘자 마을이 나온다.
찻길은 이 마을에서 끝난다.
강을 따라 가는 길도 그 길의 끝에 집을 한채 두고 있다.
어라연 가는 길에선 길의 끝에 사람이 산다.
어라연에서 길은 사람이 사는 곳까지만 차를 받아주고
그 뒤로는 사람만 반겨준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3일 강원도 영월에서

언덕을 올라서자 길가는 숲과 나무가 아니라 밭이 차지했다.
밭은 또 들깨나 고추 등의 농작물들이 차지했다.
밭은 깨를 심으면 고소한 맛을 길어올리는 바다가 되고,
고추를 심으면 매운 맛을 길어올리는 바다가 된다.
우리는 고소한 푸른 바다와
매운 맛의 푸른 바다를 지나 산으로 갔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3일 강원도 영월에서

마을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골짜기에 물이 많다.
추석 명절 내내 하루도 빼놓지 않고
때로는 가늘게, 때로는 굵게 비가 가져온 풍경이다.
평상시엔 물이 없이 고요한 정적만이 채워져 있을 것이다.
비가 오면 여러가지 불편한 점도 많지만
골짜기마다 물이 넘쳐나는 풍경은 보기에는 아주 좋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3일 강원도 영월에서

가파른 경사로가 나타났다.
초입은 계단으로 되어 있다.
편하게 끝까지 오르는가 싶었는데
계단은 금방 끝이났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3일 강원도 영월에서

그 다음부터는 나무와 전봇대에 매어놓은 밧줄이
우리들을 이끌어주었다.
산꼭대기에 사람이 사는 것도 아닐텐데 이 전봇대는 어디로 가는가 싶다.
눈이라도 오면 밧줄이 아주 고마울수밖에 없는 가파른 경사였다.
내년쯤 오면 계단이 끝까지 놓여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내가 줄을 당겨서 끌어올려줄테니까
모두 줄만 꼭잡고 있으라고 큰소리를 쳤다.
다행히 아무도 그 소리를 믿지 않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3일 강원도 영월에서

다 올라가니 나무들이 보기에 좋은 평지가 나온다.
조금 앉아서 쉬다가 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다시 걸음을 옮겼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3일 강원도 영월에서

중간중간 볼만한 나무들이 많았다.
대개는 소나무들이다.
소나무는 그냥 자라는 것이 아니라
바람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어 멋을 내며 자라는 듯 싶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3일 강원도 영월에서

드디어 나뭇가지 사이로 어라연이 보이기 시작한다.
강으로 뻗어나간 산맥의 머리 부분을 휘감고 돌아가는 저곳을
어라연이라 부른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3일 강원도 영월에서

강을 내려다보며 쉬고 있는데 나비 한 마리가 자꾸만 달려든다.
결국 영기의 바지 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졌다.
아니 도대체 언제부터 사귀었냐?
산에 가서 나비랑 눈맞으면 바지가랑이 잡히는 건 순식간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3일 강원도 영월에서

어라연이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원래는 물이 투명하도록 맑은데 비가 와서 많이 탁하다.
그렇지만 탁한 물도 약간 연두빛이 배어든 독특한 빛깔로 보인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3일 강원도 영월에서

망원으로 당겨보았다.
물이 빠지면 산맥의 머리끝 강변까지 가볼 수 있는데
오늘은 물이 많아 그것은 어려울 것 같다.
역시 이곳의 풍경은 산에 올라 한번 구경하고 갈만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3일 강원도 영월에서

드디어 정상에 왔다.
정상이다라고 소리쳤더니 먼저와서 쉬고 계시던 분들이
여기는 정상이 아니라고 한다.
정상으로 가려면 장성산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정상을 그분들에게 양보하고 이곳을 정상으로 삼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3일 강원도 영월에서

잣봉에서 내려다보니 강건너로 무수한 산들이 발아래 있다.
다 같은 높이로 보이는데 이상하게 내려다보인다.
다음에 오면 강건너의 산 하나를 골라 그 산을 올라볼 생각이다.
정상까지 오는데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내려가는 것은 더 빠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올 때 안내판에 있었던 3시간 30분이란 시간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3일 강원도 영월에서

어라연을 향하여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여기선 내려가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금방 눈치챘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내려가도 내려가도 끝이 없다.
내리막길을 이렇게 힘들게 내려간 것도 처음인 듯 싶다.
이 길로 올라오는 사람은 하나도 만나지 못했다.
올라오는 사람이 있었다면 불쌍해서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3일 강원도 영월에서

그래도 내려가다 보니 거의 어라연에 도착했다.
강의 한가운데 있는 저 바위를 상선암이라 부른다.
내려오는 사이에 하늘은 구름을 벗겨내고 푸른 빛을 내밀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3일 강원도 영월에서

산의 끝자락까지 가보았다.
마치 커다란 돌맹이를 시멘트에 섞어 놓은 듯한 바위를 여럿 보았다.
오래 전에 끈끈한 흙속에 돌맹이가 굴러떨어진 일이 있었나 보다.
진흙 목욕이 유행하던 시절이었으리.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3일 강원도 영월에서

어라연을 뒤로 두고 이제 들어오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가다 돌아보니 벗겨진 푸른 하늘이 구름을 띄워 작별 인사를 한다.
이곳에서 사진찍고 돌아서다 발이 미끄러져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다치지는 않았는데 비에 젖은 바위가 상당히 미끄러웠다.
순식간에 힘도 한번 못쓰고 넘어졌다.
산을 오르고 내려올 때는 한번도 넘어지지 않았는데
다 내려와선 강변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3일 강원도 영월에서

이제 무성한 갈대숲 사이로 길이 흘러간다.
비오는 날 이곳까지 들어왔다면
질척거리는 길을 헤쳐가기가 힘들었을 듯 싶다.
비오는 날은 그냥 차가 들어오는 곳까지만 들어왔다 가길 잘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3일 강원도 영월에서

나오는 길에선 하늘의 구름이 완전히 벗겨져
이제 가을볕이 따가울 정도였다.
처음 산행을 시작할 때는
걷기에 아주 좋을 정도로 날이 흐려 있었는데
며칠만에 다시 보는 화창한 가을 햇볕으로 산행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입구쪽으로 향하는 오르막쯤 와서
내 뒤를 졸졸 따라온 강변길을 한번 돌아본다.
며칠 전 들어오며 보았던 풍경을 이번에는 나가면서 본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3일 강원도 영월에서

나가는 길에 보니 아직 웅덩이에 고인 물이 여전하다.
비올 때는 빗줄기가 연신 동그라미를 그리며 물방울을 피워올리던 웅덩이에
오늘은 나무 그림자만 한가득이다.
차가 없으면 이곳은 웅덩이의 물도 맑은데 차가 한번 휘젖고 지나갔나 보다.
동강의 어라연은 비오는 날 들어가도 좋았고,
맑은 날 푸른 하늘과 손짓을 나누며 걸어도 좋았다.

10 thoughts on “맑은 날의 어라연 가는 길 – 영월, 정선 기행 11

  1. 참..기가 막힙니다.
    읽으면서 계속 나참.. 허참.. 못 살아.. 연발 합니다.
    참으로 기발하신 표현..
    배우고 싶습니다.

    어라연 잘 갔다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2. 하하 ‘바람 미용실에서~’ 정말 표현이 넘 잼있어요
    그러고 보니 소나무는 머리결이 스프레이 확 뿌린듯 힘이 있네요^^
    잘 보고 가네요 좋은 길…산길 친구분과 함께 오르시니…
    편안하고 행복해 보여서 참 좋네요!~~

    1. 오늘 오후엔 근처의 산에 갔다 왔어요.
      좋기는 한데 강원도의 산만은 못한 듯.
      편의 시설은 잘 갖추어져 있어 그것은 아주 좋더군요.
      바람 미용실은 기술이 아주 수준급인 듯 싶어요.
      소나무들의 머리가 보통이 아니었어요.

  3. 드뎌 내가 같이 가지 않은 여행기가 나왔군.
    어느 하늘 높은 날, 컨디션 최상으로 해서 이곳에 꼭 다시 다녀와야지. 으쌰으쌰~^^

    그날 네 사람이 산을 다 돌고 돌아오던 장면이 생각나는군.
    ‘으, 너무 힘들어~’ 그 표정.
    그래도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기도 하드라구.
    우리가 한라산을 올랐던 그 힘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것처럼 말이야.

    1. 아무리 어라연이 좋다고 해도 한라산만 하리요.
      정말 좋은 풍경을 눈에 채워갖고 오려면 큰산에 가야 하는 듯.
      오대산이나 설악산 같은 곳은 그냥 오대산이나 설악산은 아닌 듯 싶어.
      큰산에 한번 가자.

  4. 어라연, 멋진 곳이군요. 몇 장은 풍경 칼렌다를 보는 듯한 시원함을 선사해 줍니다.
    산중에 일찌감치 자리잡고 성업 중인 들깨 바다와 바람 미용실도 정겹습니다.
    등산 예상시간 표시는 어디나 중간중간 적당히 쉬면서 여유 있게 다녀올 수 있는
    거리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 반대로 해 놓으면 정말 욕 나오거든요.^^

    1. 1시간반만에 정상에 도착해선 2시간반이면 다 돌아볼 수 있을 거 같다고 큰소리를 쳤죠. 결국 네 시간이 걸리더군요.
      큰 부담없이 돌아볼 수 있는 거리 같아요.
      강건너편에 완택산이라고 있는데 그 산에서 내려다보는 동강 풍경도 아주 좋다고 하더라구요. 고향 자주 내려갈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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