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을 간 것이 몇 번 된다.
갈 때마다 마음에 든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이라면 아직 길을 내지 않아
어디를 가나 옛길 그대로라는 것이다.
물론 예전에 비포장 도로로 먼지를 날리던 길이 포장도로로 바뀌긴 했지만
그렇다고 길 자체를 완전히 새롭게 내진 않고 있었다.
그래서 어디를 가나 길이 2차로이다.
이에 비하면 영월은 길이 완전히 새롭게 났다.
4차로의 길이 산을 뚫고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산의 언저리로 휘어지면서 고개를 넘어가던 옛길이 여전히 있기는 하지만
한번 새길이 나니 그 길로 다니게 되질 않는다.
풍경은 옛길을 따라갈 때 더욱 좋다.
바쁜 세상이니 어쩔 수 없지 싶어도 아쉬움이 큰 대목이다.
아쉬움 속에서도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정선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점이다.
영월에선 가까우니 일단 영월까지 내려가서 묵으면서
정선을 들락거리면 될 듯하다.
정선에서 이틀을 보낸 여행 일정의 마지막 날은 영월로 할애했다.
친구가 잡아준 삼옥리의 콘도에서 묵었다.
방이 두 개였고 인터넷도 이용할 수 있었다.
아예 방방마다 인터넷 선을 뽑아주고 있어
노트북만 있으면 얼마든지 인터넷 이용이 가능했고
속도도 도시의 광랜 속도였다.
새로 들어선 시설들은 온갖 편리로 무장을 한다.
고향 친구 덕분에 편리한 곳에서 하루를 잘묵고
다음 날 아침,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홀로 아침 산책에 나섰다.
나가는 길에 창에 담긴 풍경을 한장 찍는다.
풍경이 창에 담기면
마치 액자에 넣어 내게 선물로 내밀고 있는 느낌이다.
이곳에 묵은 것이 두번 째이지만 산책길은 달랐다.
지난 번에는 강으로 내려가는 길이 질퍽거려 가다가 걸음을 돌려야 했다.
오늘도 강으로 걸음을 옮겨본다.
그 길에서 잔디밭에 놓인 긴 의자 두 개가 눈길을 끈다.
의자의 앞으로는 산의 능선이 곡선을 그리며 산의 정상을 올랐다 흘러내리고
또 산안개가 느린 걸음을 옮기며 손을 더듬어 산의 허리를 찾는다.
커다란 밤나무 한그루 앞에도 긴 의자 하나가 놓여있다.
찰이 벌어지는 시기이니 앉아 있으면
밤송이가 입을 벌리고 노래를 부를 것이며,
그때마다 진한 밤색의 가을 노래가 툭툭 떨어져 밤나무 밑을 구를 것이다.
그 밤을 줏어먹으면 밤색 가을노래가 뱃속을 울릴 것이다.
밤나무에 밤이 무성하기 이를데 없다.
가지에서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밤이 풍성할수록 깜깜해지는 건 아니겠지?
날은 점점 훤하게 밝고 있었다.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보면 산은 솟아 있는데
계곡을 중심으로 보면 산은 계곡으로 몰려내려간다.
하긴 오르는 걸음만 있다면 얼마나 숨이 찰 것인가.
산은 정상으로 솟으며 턱에 찬 숨을
계곡으로 몰려내려가 가라앉히고 있는 것이리라.
산을 갈 때면 우리도 산을 닮아
정상으로 오를 때는 숨이 턱에 차고
계곡으로 내려와 흐르는 물에 발을 담글 때는
숨이 가라앉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묵을 때 보았던 산중턱의 집이 다시 눈길을 끈다.
저곳에선 이곳이 어떻게 보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자연에 묻힌 듯한 저 집은 그림같은데
내가 묵은 곳은 자연을 밟고 선 듯한 느낌이 들지나 않을까 걱정도 된다.
강으로 내려가는데 아침 식사 거리를 장만하려는 것인지
개미들이 굴을 나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동글동글하게 말아 바깥으로 내놓은 흙 때문에
금방 개미집을 눈치챌 수 있다.
강물은 흘러 영월 시내쪽으로 간다.
거슬러 오르면 정선쪽으로 갈 수 있지만 길은 막혀 있다.
며칠 전 정선 강변에서 봤던 녀석이라고
저네들끼리 소근거리며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산을 갖고 나오질 않았는데 빗발이 뿌리기 시작한다.
다시 숙소로 올라왔다.
잔디밭을 살펴보니 여기저기 버섯들이 눈에 띈다.
버섯처럼 비올 때를 철저히 대비하는 식물도 없다.
우리는 비올 때나 우산을 펴는데
버섯은 비가 올 때나 안올 때나 항상 우산을 펴고 있다.
짐은 그대로 두고 역전 앞의 <다슬기촌>으로 나가 아침 식사를 했다.
지난 번에는 다슬기 순두부를 먹었는데 이번에는 해장국으로 바꾸었다.
그녀는 이번에도 역시 다슬기 순두부였다.
운좋게도 가자마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곧바로 사람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내 입맛에는 해장국이 더 맞았다.
종명씨는 다음에 오면 꼭 다슬기 무침을 먹어보겠다고 했다.
나도 한번쯤 다슬기 무침을 먹어보고 싶었다.
아울러 다음에는 다슬기 전에 막걸리도 한잔할 생각이다.
식당 아저씨가 나를 기억하고 이제 단골되셨다고 반겨주었다.
숙소에서 내려다 보니 밤색 노래를 부르던 밤나무가
한눈에 모두 내려다 보인다.
한두 그루가 아니다.
거대한 밤색 합창으로 가을을 채워주고 있었다.
6 thoughts on “영월 삼옥리의 아침 산책 – 영월, 정선 기행 10”
밤이 풍성할수록 깜깜해 지는건 아니겠지..라고라..?
아하하하..참나.. 못살겠네 정말~~
그 왜 나무가지고 노는 노래 있잖아요.
십리 절반 오리 나무, 방귀뀐다 뽕나무, 낮에 봐도 밤나무.. 이런 식으로 나가는..
그 노래가 생각나서 저도 웃기는 소리 한번 해봤죠.
한창 밤이 익는 철이더군요.
어제도 산에 갔다가 밤 많이 봤어요.
물론 하나도 캄캄하진 않았지만요.
참 좋네요.
맑은 공기가 막 살을 파고 들어와 꼭꼭 찌를 거 같습니다.
선선하고 맑은 공기 때문에 살갗이 긴장할 때는
마음도 덩달아 좀 높아지고 깊어지고 깨끗해지면서
고개가 쭈욱 뽑혀 올라가 높은 하늘에 딱 걸리는 느낌,이 들어요.
사진만 봐도 이러니 직접 가면 살들이 난리를 피울 거 같습니다. ㅎ
정선은 좀 먼데..
요기까지는 일단 중부고속도로타면 2시간만에 갈 수가 있어요.
다음 번에 가면 맑은 공기 속에 살들을 모두 풀어놓고
투명인간이 되어 돌아다니다 와야 겠어요.
10월 3일쯤 쉬면 안양쯤에서 얼굴봅시다.
콘도가 기가 막힌 곳에 자리잡고 있군요.
몇 군데 말위트에서 빵 터지고. 다슬기 해장국에서 침 삼킵니다.
저거 어떻게 배달 안 될까요?^^
항상 고향 내려가면 친구들이 예약해놓고
그럼 가서 먹곤 해서
여기는 다 이 맛이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요.
영월은 친구들이 있어
그냥 친구들과 밥먹던 식당으로 가면 되는 것 같아요.
하루면 갔다 오는 듯 싶으니 언제 한번 모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