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구름 2

이사하고 나서 제일 친하게 지내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옥상이라고 답하게 생겼다.
단독 주택에 살 때는 작지만 마당이 있었고
그 마당에 화단이 있었다.
일하다가 종종 카메라를 들고 마당으로 나가
화단에 심어진 꽃을 들여다 보거나 나무들을 올려다보며
눈을 맞추곤 했었다.
아파트 8층으로 이사를 하고 나선
마당으로 나서던 걸음이 옥상으로 바뀌었다.
밑으로 내려가려면 8층을 내려가야 하는데
옥상은 단 두 층만 올라가면 되는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에 그리되는 것 같다.
그 통에 일하다가 구름이 좋다 싶으면
카메라를 둘러메고 옥상으로 올라가
열심히 구름과 하늘을 올려다 보며 눈을 맞춘다.
그동안 찍었던 구름 가운데서 재미난 것들만 모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8월 5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 아파트 옥상에서

백두산 천지 구름, 혹은 한라산 백록담 구름.
웅장하기로 보았을 때 백두산의 천지에 가까울 듯 싶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8월 25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 아파트 옥상에서

빗질 구름.
구름은 하늘을 어지럽히기도 자주 어지럽히지만
누군가가 열심히 빗질하여 청소도 자주 하는 것 같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8월 27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 아파트 옥상에서

물결 구름.
하늘은 거대한 호수이고, 구름은 그 호수의 물결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3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 아파트 옥상에서

5대양 6대주 그림.
유럽하고 시베리아, 북미는 슬쩍 빠뜨렸다.
그곳들을 별로 안좋아하나 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3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 아파트 옥상에서

닭다리 구름.
오른손잡이용.
오른손으로 닭다리잡고 뜯으시면 되시겠다.
맥주 구름은 찾질 못했다.
각자 시켜서 드시길.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4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 아파트 옥상에서

달바라기 구름.
꽃은 해에서 눈을 떼지 못해 해바라기가 되었지만
구름은 달에서 눈을 떼지 못해 달바라기가 되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5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 아파트 옥상에서

작은 실례 구름.
오른쪽으로 뽕하고 슬쩍 실례를 하셨다.
크기로 보아 상당히 참다가 눈치보면서
극히 적은 양을 슬쩍 내보내신 것 같다.
냄새는 나지 않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5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 아파트 옥상에서

말풍선 구름.
딱히 채워넣을 말은 생각나지가 않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5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 아파트 옥상에서

푸른 사랑을 품은 구름.
상당히 반듯한 하트였는데
초점 맞추는 사이에 급격하게 모양이 변해갔다.
그렇다고 사랑이 변하진 않았을 것이다.
원래 사랑의 표현이란 것은 순간이고
그 표현의 여운은 오래 간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5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 아파트 옥상에서

햇볕에 감전된 찌르르 구름.
가끔 구름이 태양을 품으면
번개라도 맞은 듯 찌르르 전기가 흐른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5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 아파트 옥상에서

닭다리 구름.
왼손잡이용.
밑에 구름은 소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5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 아파트 옥상에서

율도국 구름.
저곳에 가면 홍길동을 만날 수 있을 거다.
외국인이라면 아틀란티스 구름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5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 아파트 옥상에서

삼각산 구름.
하늘을 찌르는 재미로 솟은 산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5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 아파트 옥상에서

브레지어 구름.
판매는 하지 않는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8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 아파트 옥상에서

햄버거 구름.
가운데 무슨 고기를 넣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마도 수입산 미국 쇠고기는 아닐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5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 아파트 옥상에서

토끼 구름.
어디론가 열심히 토끼고 있다.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다리가 흐릿하게 뭉개져 보일 정도였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20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 아파트 옥상에서

갈빗뼈 구름.
갈빗대가 한쪽만 선명한 것으로 보아
한쪽은 아직 옷을 걸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20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 아파트 옥상에서

지퍼 구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막 푸르려고 하고 계시다.
다 풀지는 않았다.
하늘의 맨몸을 볼 수 있는 기회였지만
더 이상 지퍼를 풀지 않아 그 기회는 놓치고 말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21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 아파트 옥상에서

뽀뽀 구름.
왼쪽과 오른쪽 구름이 하나가 아니다.
두 구름이 지금 입맞추는 중이다.
슬쩍 실례할 때도 냄새가 없더니
뽀뽀할 때도 쪽쪽 소리는 나지 않았다.

4 thoughts on “하늘과 구름 2

  1. 꽃하고 나무랑 자연에 조예가 깊으신 건 알았지만,
    이렇게 천문에도 발을 들여놓으신 줄은 몰랐더랬습니다.^^
    한 달 가까운 공들인 관찰을 단숨에 보고 넘기는 게 송구할 지경인데,
    일단 노고를 치하드립니다.

    1. 구름이 좋은 날이 의외로 많지가 않는 거 같아요.
      흐릿한 날도 바깥으로 나가면 사진찍을 것들이 꽤 되는데 옥상에선 그저 구름밖에는 찍을 것이 많지 않더라구요.
      가끔 옛날의 작은 화단이 하늘보다 변화는 컸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작은 것에 많은 것을 담았던 하늘이라고나 할까.

  2. 아싸~ 왼손잡이용 닭다리가 튀김옷을 더 잘 입은듯 맛나보입니다.
    그거 제꺼니까 손대지 마세욧….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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