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일번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10월 25일 서울 우리 집에서

서울 시장 선거를 하루 앞둔 10월 25일,
전화벨이 급하게 울렸다.
전화기를 들었더니 전화기 속의 목소리가 이렇게 말한다.
“여기는 일번입니다.”
선거 운동인가 보다 했다.
“아, 예, 그러시군요. 잘 알았슈.”
그리고는 전화를 뚝 끊어 버렸다.
그런데 전화를 끊는 순간 아차 싶었다.
말이 좀 어눌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일번이 아니라 일본이 아니었을까.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여기는 일번입니다.”
다시 어눌한 어투로 같은 말이 반복된다.
“Oh, I’m sorry. Just a wait please.”
전화기를 곧바로 딸에게 넘겼다.
일본에서 온 전화였다.
딸이 휴학하기 전
일본에서 장학금을 받는 곳이 두 곳이었는데
그 중의 한 곳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휴학한 내용을 이메일로 알려달라는 전화였다고 한다.
딸은 전화 건 사람이 일본에 유학온 중국인이라고 했다.
이번 서울 시장 선거 때문에 나에게도 별일이 다 생겼다.
어떤 사람은 일억으로 헷갈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딸을 일본에서 불러들였는데
비록 일본을 일번으로 헷갈리면서
좀 미안하게 전화를 끊어버린 헤프닝이 있기는 했지만
기분좋게 선거가 마무리되었다.
세상은 젊은 사람들이 바꾸어간다는 것을 확인한 날들이기도 했다.
그냥 영어를 쓰지 우리 말을 쓰니까 더 햇갈리는 경험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번 선거의 와중에 내 기억에 남은 좋은 추억 하나가 되었다.

8 thoughts on “일본과 일번

  1. 나도 그런 경험이 있어.
    어눌한 말투로 누구 전화아니냐고 하더라구.
    그래서 아니라고 했는데 또 전화가 온거야.
    좀 짜증이 나서, 아니라고 짜증을 내고 끊었는데…
    그때 아, 이 사람이 말을 어눌하게 하는 친구구나… 하는 생각이 미치더라구.
    그때 어찌나 미안하던지.
    그래서 좀더 생각하다가 다시 내가 전화해서 미안했다,
    잘 못알아듣고 장난 전화인 줄 알았다 했더니,
    자기는 괜찮다고, 그런 일 많다고 하는거야.
    어찌나 미안했던지…

    이 글을 보니 그때 생각이 나네.ㅜㅜ

    1. 아마도 이번에 전화한 친구는 한국말을 누구에게 적어달라고 한 듯 싶어.
      여기는 일본입니다. 누구누구 바꿔주세요 요것만 가르쳐 달라고 한 뒤에 전화를 했는데 일본이 그만 내 귀에 일번으로 들린 거지.
      선거 때 아니면 괜찮았을 듯 싶은데 선거 때라 더욱 헷갈린 것 같기도 해.
      두번째 전화오니까 많이 미안하긴 하더라.

  2. 시민들이 큰일을 해낸 하루였죠. 저는 삼십 여년은 시민으로, 그후 이십 년
    가까이는 도민이라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변화가 일어나 참 다행이에요.
    개표방송을 보면서 식구들이 BBK, 아니 BBQ로 조촐하게 축하했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려 배달된 걸로 봐 불티가 났던 것 같아요.
    참, 전화기가 오랜만에 보는 추억의 맥슨이군요.

    1. 스포츠 중계보다 더 긴장되더라구요.
      제가 사는 강동에서도 이겨서 더욱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곳이 내리 보수적 성향을 보이다가 촛불 때 돌아선 지역인데
      이번에도 강남권에서 벗어나 한방을 먹여준 것이 아주 뿌듯했습니다.

    2. 금융 사기는 사기치는 놈이 나쁜 놈이긴 하지만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도 약간은 책임이 있는 듯 싶다는.
      엄청난 수익을 내준다는 말에 홀라당 넘어가니 말이야.
      사기꾼을 대통령으로 뽑아놓으니 5년 동안 완전 생고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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