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원 선생님을 만나고 오다

흐린 오후의 시간 속으로 불현듯
오규원 선생님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선생님 생각을 몰고 온 것은
“바다보고 싶다. 강화도갈까”라는 그녀의 말 한마디였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그녀에게 한 말은 “오규원 선생님?”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끝나고 한 시간여 시간이 흘렀을 때
우리는 강화를 향하여 올림픽 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2011년 11월 12일 강화도 전등사에서

오규원 선생님은 원래 서울예대에 계셨지만
지금은 강화도 전등사의 숲에 계신다.
선생님을 만나려면 전등사로 들어간 뒤
서문 쪽으로 가야 한다.
서문 쪽을 향하여
길이 막 본격적으로 오르막을 올라가려고 할 때쯤
왼쪽으로 선생님이 서 계시다.
처음 갔을 때는 그냥 비탈에 서 계셨으나
지금은 누군가 그 비탈에 돌 몇 개로 마련해준 작은 정원이 있었다.
정원에는 누군가 놓고간 장미가 놓여있었다.
노란 장미였다.
시간이 한참 흘렀는지
장미는 제 삶을 내놓고 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2011년 11월 12일 강화도 전등사에서

세상 뜨고 난 뒤
오규원 선생님은 전등사 한켠의 소나무가 되셨다.
소나무가 되신 뒤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할까봐
항상 명찰을 달고 계신다.
처음 찾아갔을 때
나도 명찰을 보고서야 선생님을 알았다.
선생님이 나무가 되던 바로 그 날의 시간을 함께 했더라면
선생님은 명찰이 필요 없었겠지만
아쉽게도 난 그 시간을 내지 못했다.
선생님은 나같은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명찰을 허리춤에 걸으셨다.
한번 찾아뵙고 난 뒤로는 이제 명찰 없이도
숲으로 가 나무가 된 선생님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지만
선생님은 여전히 명찰을 걸고 계신다.
얘기를 들으니
세상뜨면서 나무가 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아예 번지수도 배정받으신 모양이다.
선생님이 사는 곳은 501번지이다.
몇해전 길건너편으로 김영태 시인도 느티나무가 되어 이사를 왔다고 한다.
김영태 시인이 계신 곳은 502번지이다.
오규원 선생님 계신 곳에서 빤히 보였다.

2011년 11월 12일 강화도 전등사에서

선생님은 마음을 꺼내 바로 앞 작은 나무에 걸어놓으셨다.
내게 주는 마음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선생님 마음의 주인은 “한잎의 여자”일 것이다.
한잎의 여자에게 주는 마음이라 그런 것인지
정말 딱 한잎만 걸어놓으셨다.

2011년 11월 12일 강화도 전등사에서

선생님께 술 한잔 따라 드렸다.
나도 한잔 마셨다.
홀짝 홀짝 마시다 보니
병속의 술이 병속으로 자꾸 기어들어가
거의 반쯤 내려가 있었다.
내가 술을 마시면
술은 자꾸 제 속을 파고들며 기어들어간다.
그러다 결국은 바닥 속으로 숨어버린다.
한번 바닥으로 숨어버리면
다시는 술을 찾을 수가 없다.

2011년 11월 12일 강화도 전등사에서

선생님 한번 올려다 본다.
오규원 선생님, 항상 바람과 춤추고 계신 거예요?

2011년 11월 12일 강화도 전등사에서

선생님 발밑에 소나무 잎이 엷게 깔려있다.
사실은 선생님이 떨어뜨린 것이다.
선생님은 가끔 그 뾰족한 소나무 잎의 끝으로
하늘을 가볍게 찌르며 장난을 치신다.
그때마다 하늘이 앗, 따가워 하며 깜짝놀라지만
이미 고개를 돌렸을 땐
선생님이 짐짓 모른척 이파리를 아래로 떨어뜨리고 난 뒤이다.
선생님 발밑에 하늘과 장난치며 보내는
선생님의 한계절이 수도 없이 떨어져 있었다.

2011년 11월 12일 강화도 전등사에서

올려다 보니 옆나무와도 놀고 계시다.
구름을 훅불어 옆나무로 날려보내고 계시는 중이다.
처음에는 작은 구름 한조각 불어보내시더니
재미 붙이셨는지 엄청나게 큰 구름을 슬슬 옆나무로 밀어보내셨다.
선생님 곁에 오니 좋다.
선생님의 재미난 저녁에 샘이 났는지
서쪽으로 지던 해가 자꾸 뭉그적거리며
숲의 가지를 붙들고 가기 싫다고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등을 떠밀자 어쩔 수 없다는 듯
가지를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선생님께 안녕을 고하고
정족산성을 남쪽으로 한바퀴 돌아본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불현듯 선생님 생각이 밀려들면
또 강화도에 갈 것이다.

10 thoughts on “오규원 선생님을 만나고 오다

  1. 만나러 가신다길래 시인은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하나 궁금했드랬어요. 시로 묻고 시로 화답할까? 그랬는데. 좋은 얘기 많이 나누셨죠?
    그 그늘이 그리우시겠네요. 오늘밤엔 특히나
    .

    1. 살아계실 때 제가 많이 좋아했었어요.
      문득문득 생각날 때가 있어요.
      지난 번에는 봄에 찾아뵈었는데
      막 생강나무가 꽃을 내밀던 시기였어요.
      이번에는 겨울이라 그런지 물든 낙엽이 많이 눈에 띄더군요.

  2. 나무가 되신 선생님
    웃음을 솔잎으로 떨구는 선생님
    나무가 선생님의 혼까지 온전히 흡수했다면
    선생님은 죽어도 살고 살아도 사신 분이네요…
    전등사….나무….

    1. 이번에는 뵌 뒤에 전등사 둘러싸고 있는 산성을 반바퀴 돌았는데 그것도 아주 좋았어요. 전에는 북쪽을 돌았는데 이번에는 남쪽으로 돌았죠. 담에 강화에 한번 놀러가요. 바닷 바람이 좋더라구요.

    1. 오규원론으로 등단했었구요.. 그 뒤로도 오규원론을 여러 번 썼어요. 발표하지 않고 그냥 써두기만 한 것도 있구요. 워낙 좋아했었던 시인이었어요. 살아계실 때 딱 한번 만났는데 자주 좀 찾아갈 걸 하는 아쉬움이 커요.

  3. 아… 오늘 동원님글은 정말 많이 뭉클해요….
    나무가 춤을 추며 서로에게 흘러 들어가는 모습…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아득해져요…
    언니랑 동원님… 참 좋은분들…뭉클…

  4. 전등사에 다녀오셨군요. 아, 부러버요. 잘 지내시지요? 며칠전 매생이국집 앞을 지나가가 두 분 생각이 났었어요.
    전 문경 가려다 주차장으로 변한 도로에서 살짝 빠져 팔다옛길을 달렸지요. 그리고 슬펐어요. 봉안마을 몽양 선생의 체취가 서린 독서방이 무너졌대요. 많이 허무했어요. 그 곳이 존재했었는가 찾을 수도 없었어요. 우연히 마주친 이가 아니었더라면 포기했어야 했는데, 1년전에 이사왔다고 헐렸다 하더군요. 그래서 옛날에 올렸던 사진을 찾아 봤더니 동원님의 댓글이… 본 기억은 나는데, 왜 답글을 안 달았나 저도 궁금. 암튼, 그곳이 집이었다는 흔적은 기왓장과 첨성대처럼 쌓았더 내부 벽돌… 좀 슬펐어요.ㅠㅠ

    1. 그냥저냥 지내고 있어요.
      그게 보존해야 하는 것은 아는데 개인이 하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어려운 것 같아요. 문화재고 뭐고 다 먹고 마시는 곳으로 바뀌어가는 듯 싶어요. 강물 속에 돈쳐박는 미친 짓만 안해도 얼마든지 그런 곳을 살릴 수 있는데 명바구 정권에 그런 걸 바란다는 것이 너무 큰 욕심 같아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