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에 나갔다가 클라라의 커피에서
커피를 한잔 얻어마셨다.
그것도 바리스타가 직접 내려준 커피를 얻어마셨다.
커피집에서 커피를 마신 것이 무슨 큰 일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이 집의 바리스타에게서 커피를 얻어마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바리스타의 얼굴을 보기가 어렵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벌써 커피집은 커튼으로 창을 가리고 있다.
그러면 문이 닫힌 것이다.
클라라의 커피집으로 향한 것이 오후 4시반 경이니
보통 때였다면 커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시간이다.
다만 예외가 있다.
커피를 볶는 날은 늦게까지 문을 열곤 한다.
그런 날은 문이 닫혀있다가 오후 늦게 문이 열리기도 한다.
재수좋게 아주 시간을 절묘하게 맞추었다.
도착하면서 보니 바리스타가 바깥에 나와서 지붕을 쳐다보고 있었다.
문이 열려있는 것이었다.
나중에 물었더니 연기가 잘 빠지질 않아서
굴뚝을 살펴보고 있었다고 했다.
가게 안으로 얼굴을 들이미니 반가운 표정으로 맞아준다.
이제는 얼굴을 익혀 마치 잘아는 사이처럼 인사를 나누는 관계가 되었다.
일단 코스타리카와 엘살바도르를 골랐다.
그랬더니 그것 중 하나는 놔두고
좋은 원두를 볶고 있으니 그걸 가져가란다.
말라카와의 블루 마운틴이라고 했다.
커피를 아는 그녀가 블루 마운틴이라고 하자 욕심을 부렸다.
한 봉지 더 살 수 있냐고 한 것이다.
이건 한 사람이 너무 많이 사가면 안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한 봉지 더 내주었다.
그리고는 따로 커피를 내려주었다.
안개낀 흐린 날의 운치를 지닌 커피였다.
커피의 이름을 물었더니 탄자니아 피베리(peaberry)라고 했다.
보통 커피 나무에 열리는 열매를 커피 체리라고 하는데
이 커피 체리는 단단한 외피와 고무 상태의 과육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과육의 안에는 두 개의 종자, 즉 씨앗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먹는 원두는 이 종자,
즉 커피 열매 전체가 아니라 커피 씨앗이며,
이를 생두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런데 이 탄자니아 피베리는 그 종자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설명을 해주며 클라라 커피의 바리스타는
사실 이 탄자니아 피베리의 맛은 거칠다고 했다.
남녀로 선을 가른다면 남성적인 맛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거칠다는 맛의 느낌이 잘 와닿지 않는다면
힘이 격한 남자와 강렬하게 포옹을 했을 때의 느낌을 상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의아해진 나는 이건 맛이 부드러운데요라는 말로 내 의문을 표했다.
바리스타가 웃으면서 자신이 커피를 내리는 과정에서
그 거친 맛을 부드럽게 달랬다고 했다.
나는 웃으면서 그 말을
“그럼 커피를 내리면서
남자를 여자로 성전환시키신 건가요?”라는 말로 받았다.
바리스타가 “그런 셈이죠”하면서 웃었다.
여성화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커피를 마시는 동안
격하게 포옹한 느낌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에 안긴 느낌이 났다.
그녀가 클라라 커피의 바리스타는
날씨도 고려하여 커피를 내린다고 했다.
이렇게 흐린 날,
거친 맛의 커피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날은 부드럽게 안아주는 커피가 필요한 날이란다.
그 말도 아주 그럴 듯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바리스타가 내 성향을 알아본 것이 아닐까 싶다.
격한 포옹보다 부드럽게 안기는 따뜻한 가슴을 꿈꾸는 것이
내 성향이란 것을.
12월초의 어느 날 오후에
커피를 마시며 잠시 따뜻한 가슴에 푸근하게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