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 필터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1월 19일 우리 집에서

오래 간만에 렌즈를 하나 샀다.
좋은 줌렌즈를 하나 갖고 싶었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아 구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의 모든 사진을 50mm 단렌즈와 105mm 마이크로 렌즈로 찍고 있었다.
줌렌즈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모두 세 개의 줌렌즈를 갖고 있다.
먼저 18-70mm 렌즈가 있다.
처음으로 DSLR 카메라를 살 때 딸려온 렌즈이다.
카메라와 묶어서 판매한 렌즈였지만 성능은 매우 뛰어나다.
예전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을 때는 많이 애용했었다.
하지만 DX 포맷의 렌즈라서
새로 구입한 FX 포맷의 카메라에선
카메라의 성능을 제대로 받쳐주지 못한다.
10-20mm의 광각 렌즈도 하나 있다.
이것 또한 DX 포맷의 렌즈라 카메라의 성능을 충분히 살려주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28-300mm 렌즈가 있다.
이는 현재의 카메라를 제대로 지원하지만
최상위급의 렌즈는 아니어서 사진의 질이 그렇게 높지 않다.
거의 28mm 단렌즈 삼아서 쓰고 있다.
이들 줌렌즈에 비하면
사진의 구도를 잡는데 많이 제약이 따르긴 하지만
두 개의 단렌즈는 사진의 질이 매우 뛰어나다.
원래 단렌즈가 질적으로 우수하긴 하지만
최상위급의 줌렌즈는 단렌즈에 못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문제는 가격이다.
사람들은 그런 렌즈의 가격을 가리켜 가격이 안드로메다라고 말하곤 한다.
손에 넣기에는 가격이 너무 멀다는 뜻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그 렌즈가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계기는 내 피곤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요즘 들어 몸이 많이 피곤하여 걸핏하면 책상 앞에서 졸곤 했다.
그런 나를 몇 번 보더니
그녀가 그렇게 집에만 있지 말고 사진이라도 찍으러 나가라고 했다.
그러고보니 아파트로 이사온 뒤로 계속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듯 싶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사와서 집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해 이사를 한 뒤로 강원도 정선으로 놀러도 갔었고
아는 분들과 천마산도 다녀왔었다.
혼자 근처의 산에 간 적도 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이곳에선 그다지 밖을 나가지 않는 느낌이다.
사람이 축쳐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그녀가 갑자기 언젠가 필요할테니 표준 줌렌즈를 하나 사라고 했다.
사라고 했는데도 망설여졌다.
일주일 정도 주저주저하다가 결국은 인터넷으로 구입하고 말았다.
워낙 비싼 렌즈라 그냥 쓸 수가 없어
렌즈를 구입할 때 렌즈 필터도 함께 구입했다.
필터는 곧바로 배달이 되었는데 렌즈는 아직 오지 않고 있다.
필터는 특수 효과를 내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엔 렌즈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내가 구입한 것은 렌즈 보호용 필터이다.
렌즈가 눈이라면 필터는 눈보호기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눈은 오질 않고 눈보호기만 덜렁 와 있는 셈이다.
눈이 와야 그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
눈보호기를 먼저 받고 눈을 기다리고 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운이 나고 있다.
사실 기운을 내야 한다.
렌즈 무게가 거의 1kg에 가까워서
기운을 내지 않으면 들고 다니기도 어렵다.
내가 사용하던 렌즈 중에 제일 무거웠던 것이
560g 정도 하던 것이었으니 갑자기 크게 무거워지는 셈이다.
다들 무겁고 좋은 카메라와 렌즈를 쓰다가
가볍고 작은 카메라와 렌즈로 바꾸고 있는 것이 요즘의 추세이다.
나는 추세를 완전히 정반대로 거스르고 있다.
카메라에 장착하면 둘을 합친 무게는 2kg 정도 될 듯하다.
무게로만 보면 13인치 노트북 정도의 무게이다.
사람에 따라 기운을 차리게 하는 보약은 따로 있다.
내게는 그것이 24-70mm 표준 줌렌즈이다.
내 생애 써보리라곤 생각도 못했던 최고급 렌즈이기도 하다.
녀석은 부수적 효과도 대단하여
밥만 먹고 나면 저절로 설겆이를 하게 된다.
필터를 먼저 받아놓고 녀석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4 thoughts on “렌즈 필터

  1. 렌즈 사랑이야기 듣기…^^
    /밥만 먹고 나면 저절로 설겆이를 하게 된다.
    필터를 먼저 받아놓고 녀석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하하…. 구정 잘 쇠시길 바래요
    언니와 시간이 맞으면 공방에 함께 오세요!^^

  2. 마지막 부수적 효과에서 빵 터졌습니다.ㅎㅎ
    때론 칭병이나 와병이 약발이 대단한 법이지요.^^
    새 눈 장만, 감축드립니다요.

    1. 설겆이는 귀찮은 것인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즐겁기도 하더군요. ㅋㅋ
      드디어 오늘 옵니다.
      나중에 죽을 병이 걸렸는데 렌즈로 치료했다는
      렌즈 서라피가 나오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새 렌즈를 사다가 눈앞에서 세 번 흔들었더니
      곧바로 벌떡 일어나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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