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나무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1월 24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내가 나무라면
나는 수직의 운명에 목이라도 맨듯
좌우로 한치의 오차도 두지 않고
똑바로 선 자세로 자라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우선 그대가 오는 길목이 잘 보이도록
약간 높은 언덕을 고르고
그 언덕 위에 뿌리를 내릴 것이다.
그리고 그대가 올 때마다
그대의 발자국 소리에 마음을 기울이고
그 마음을 따라 몸을 기울일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직립의 자세를 버리고
그대가 오는 곳으로 기울어져 자라는 나무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너무 몸을 기울이진 않을 것이다.
몸을 너무 기울이면
그대를 기다린다기보다
그대를 노골적으로 탐하는 자세가 되고 만다.
그러면 그대에 대한 내 마음이 바깥으로 쏟아진다.
마음이 바깥으로 쏟아지고 나면
그대의 발길이 내 마음으로 어지럽혀지고 만다.
알고 보면 마음이 쏟아질 때
그대도 함께 쏟아져 버린다.
그러니 나는 마음이 쏟아지지 않을 만큼
약간만 몸을 기울일 것이다.
그대가 어느 곳을 걸어가다
그대를 향하여 아주 약간 기울어진 언덕 위의 나무를 만났다면
그것은 나무가 아니라
그대를 향하여 기울어진 내 마음이다.
내 마음은 그대를 향하여 쏟아지진 않으나
그대가 주는 눈길로
조금 덜어낼 수 있을 만큼 기울어져 있을 것이다.

2 thoughts on “기울어진 나무

    1. 대개 꼿꼿한 자세로 서 있는데 간혹 이렇게 약간 기울어진 나무들이 있더라구요.
      나무들은 비탈에 서도 똑바로 자라곤 하는데 말예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