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이를 악물고 하루를 견딘다.
완전히 위로 꺾은 고개 때문에
하루 종일 안면으로 쏟아져 내리는 하늘밖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이 불편한 자세에도 불구하고
이를 악물고 삶을 견딜 수 있는 것은
그에 대한 추억 때문이다.
그가 오는 날,
아니 정확히 그가 아니라 그의 탈색된 체취가 빨래란 이름으로 오는 날
나는 시선을 땅으로 바꾸고
그의 체취를 입에 머금은 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자세를 취한다.
그렇게 빨래의 옷감 그 사이사이로 남아있는 축축한 물기운에
그의 체취가 녹아있다.
바람이 흔들 때마다
그 물기 속에서 그의 체취가 빠져나간다.
나는 알고 있다.
햇볕이 좋은 날이면
단 한 시간만에
빨래란 이름으로 내게 온 그의 체취가
다시 옷의 이름으로 탈색되어 내 곁을 떠나리란 것을.
날이 흐린 날이면
그 시간은 서너 시간 동안 뒤로 밀려간다.
햇볕 따갑고 바람 좋은 날,
그렇게 그의 체취를 몇 십분 만에 보내고 나면
삶의 허망함이 도져서
하늘로 고개를 꺾고
이를 악물어야 하는 나의 표정에도 더더욱 힘이 들어가고 만다.
어떤 이는 자신의 삶을 키운 것은
8할이 그리움이라고 했지만
내 삶을 키우고 지탱하는 것은
온통 그의 체취에 대한 그리움이다.
이를 악물 힘만 있으면 나는 그 그리움으로 또 하루의 삶을 넘기고
그의 체취를 만날 수 있다.
땅을 내려보면
그의 체취와 만났을 때의 추억이 너무도 생생하게 자극할 그리움이 두려워
나는 그의 체취를 보내고 나면
항상 고개를 위로 꺾고
이제나 그제나 이 자세이다.
오늘도 햇볕을 등에 업고 내 그리움의 하루를 보내고 있다.
2 thoughts on “빨래집게 이야기”
오규원의 시처럼…., 시선이 아름답고 재미있습니다.
김철수의 아포리즘이 생각나서 붙여봅니다.
미간을 빨랫줄 삼아서 마음을 가져다 널어 보라. 바람 부는 대로 색색의 마음 나부끼면서 갈수록 가벼워짐도 그렇거니, 가끔은 땅에 떨어져 뒹굴어도 그만…, 마음 빨래와 같으니…..,
몸냄새와 체취 차이….몸냄새는 땀과 분비물이 산화된 악취이고, 체취는 땀과 분비물이 사랑에 의해 발효된 향기일까요…
나도 그에게서 항상 체취를 느끼고 싶네요…
좋은 글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