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9일 일요일,
의사와 미용사들이 속리산 자락에 위치한 충북의 관평을 찾아갔다.
모두 강동구 상일동의 <한영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걸음이 올해로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의료 봉사와 이미용 봉사로 매년 한번씩 그곳의 주민들과 함께 하고 있다.
그들의 길에 함께 동행했다.
봉사를 하기도 전에 푸짐한 점심부터 먼저 대접받습니다.
무엇인가 주려고 왔는데 받기부터 하니 죄송한 마음이 앞서지만
봉사의 정성을 다짐하며 맛있게 먹습니다.
흰둥이도 반갑게 맞아줍니다.
흰둥아, 내년에도 볼 수 있겠지?
중관평으로 들어가는 마을 초입의 솔휘네 집이
오늘 눈깜짝할 사이에 병원으로 변신했습니다.
내과와 정형외과, 치과, 그리고 약국을 모두 갖춘 종합병원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옆집이 한방의료원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게다가 집의 뒤쪽으로는 오늘 미용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문을 닫은 폐교의 운동장 한켠에 의자를 내놓고 탁자를 펼치니
어엿한 전원미용실입니다.
머리를 만지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음을 빚습니다.
정성으로 손질하면 머리를 만지는 것만으로
나이를 10년은 낮출 수 있습니다.
솔휘 아빠는 머리를 자르면서 은근히 걱정을 했습니다.
너무 젊은 애들처럼 자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머리 때문에 나이가 도망가버리면 당혹스럽기 때문입니다.
머리 손질이 끝나고 나자 다들 멋있다고 한마디씩 보태주었습니다.
솔비는 공주입니다.
관평에선 깜장공주로 통하죠.
여기서 더 예뻐지면 어떡하나 걱정이지만
사실 솔비의 미모는 모두 엄마의 환한 웃음이 키운 것입니다.
기다리는 시간은 무료하지만
이렇게 함께 파마를 하고 얘기를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내 차례가 돌아오곤 합니다.
관평의 일을 맡아주신 <관평교회> 목사님입니다.
고무신의 소박함이 금방 눈에 들어옵니다.
김외수 할머니입니다.
진맥을 하기 위해 할머니의 손목을 잡았습니다.
오호, 놀랍습니다.
할머니 손목에선 고향의 숨결이 콩닥콩닥 뛰고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묻습니다.
“무거운거 많이 드시나요?”
-시골 사는데 그럼 무거운거 안들고 어떻게 살어.
“그럼, 앞으로는 꾀좀 부리세요.”
-그래야지. 알았어. 앞으로는 꾀좀 부릴께.
도란도란 얘기가 끝없이 이어집니다.
서울에 있을 때는 이렇게 진찰을 할 때면
항상 환자의 등뼈밖에 만져지지 않았는데
오늘 여기에 와서 등에 손을 얹으니
순박하게 이어온 삶의 등뼈가 손에 잡힙니다.
손끝으로 그의 삶이 전해져 옵니다.
혜민이네 할머니는 다리가 아프다고
침을 한대 맞으셨습니다.
약을 타신 할머니께서 환희 웃으십니다.
웃음이 참 곱습니다.
할머니 얘기에 귀를 빌려드리고
그 웃음에 눈을 맞추니
무엇인가를 주려고 왔다가
더 큰 것을 얻어가는 느낌입니다.
내과 전문 여의사입니다.
진료하다 말고 갑자기 태권도 권법입니다.
무슨 권법이냐구요? “찍지마세요” 권법입니다.
찬물의 순서는 나이로 위아래가 정해지지만
그네의 순서는 먼저 온 순서대로 입니다.
현민이 입니다.
장난꾸러기로 소문이 났습니다.
치과치료를 받으면서 아프다고 입을 다물어 버려
모든 의사선생이 다 동원되어 달래야 했습니다.
그러나 치료받고 나서
운동장 한켠의 뽕나무에서 오디를 따오더니
서울서 온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첫순서는 치과 선생님이었습니다.
서울서 온 아저씨가 현민이가 기특하다며
커서 크게될 나무라고
사인을 하나 받아두자고 했습니다.
현민이는 최현민이라고 크게 써주었습니다.
헤어짐의 아쉬움을 기념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올라오는 길의 저녁 노을이 곱습니다.
봉사 활동이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것이란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마음과 마음을 나눈 뒷자리의 세상은 항상 여느 때보다 더욱 아름답습니다.
3 thoughts on “의사와 미용사들, 충북 관평에 가다”
조용히 실천으로 옮기는 삶
그런분들이 아직도 계시기에
세상은 아직도 살만한 곳인것 같습니다.
다음 번엔 만나면 술한잔 합시다.
언제나와 같이 진한 감동이 밀려오는 짧지만 긴, 아름다운 사연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