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과 사람들의 순간적인 미적 구성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23일 서울 천호동에서

11초전,
골목의 사거리를 내려다 보았을 때
눈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열세 명이었다.
적은 인원이 아니었지만
사거리는 거의 비어있는 듯 보였다.
사람들 사이의 간격은 넓었고,
그 때문인지 골목의 풍경은 엉성해 보였다.
가장 멀리로는 골목의 속도 방지턱을 눈앞에 둔 중년의 남녀가 보였다.
남자는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고 있었고
여자는 남자를 곁에 두고도 혼자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 둘은 천천히 골목의 사거리를 향하여 걸어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서 걷고 있는 사내는 흰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손에는 검은 봉지 하나를 들고 있었다.
고정적으로 사거리의 한귀퉁이를 점하고 있는 사내도 하나 보인다.
차에 화분을 싣고 다니며 꽃을 파는 사내이다.
그 사내의 한쪽 어깨를 가리며 또다른 사내 하나가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막 사거리를 지나 이제 시야에서 사라질 사람도 있다.
검은 봉지를 들고 사거리를 지나치고 있는 아주머니와
편의점 앞에서 비스듬하게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아주머니가 그들이다.
그리고 셋이면서 하나인 사람들이 보인다.
하나는 엄마와 딸이다.
또다른 하나는 젊은 남자 친구들 셋으로 구성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사람 수로만 따지면 여섯이지만
뭉쳐있는 하나란 점에선 둘이기도 하다.
같은 골목안에 있지만 그들은 흩어져 있다.

11초후,
이제 골목에선 모두 열여섯 명의 사람들이 보인다.
세 명이 추가된 것에 불과하지만
사람들 사이의 간격이 거의 일정해 지면서 순식간에 골목이 찬다.
갑자기 사람의 밀도가 균일해진 느낌이다.
여기에 속도감이 빠른 동적 요소 두 가지가 추가되었다.
이제 막 골목을 빠져나가며
꼬랑지만 사거리에 걸치고 있는 자동차의 뒤쪽이 그 중의 하나이다.
또 사거리의 가운데를 피해 한쪽으로 방향으로 잡고
이제 막 사거리로 진입한 자전거도 속도감이 있는 동적 요소 중 하나이다.
그 둘은 한쪽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사거리를 가운데 두고 좌우로 나누어 순간의 균형을 잡는다.
바지에 손을 집어 넣은 남자와 혼자 팔짱을 낀 여자는 속도 방지턱을 넘어섰다.
그리고 그 두 사람과 대칭을 이룰 만한 지점에
새롭게 등장한 남자와 여자가 있다.
모자를 쓴 한 남자와 두 손으로 뒷짐을 진 여자로 이루어진 그 둘은
한쌍을 이루어 멀리 방지턱을 넘어선 남녀와 균형을 맞춘다.
화초를 파는 사내는 여전히 그 자리이다.
그는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 있어 줌으로써
사거리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이루어지는 대칭적 균형을 흔들지 않으려
매우 조심하고 있다.
그의 덕택에 화초 판매 차량 곁에선
흰 모자를 쓴 사내와 새롭게 나타난 한 여자가
한 사람은 앞으로 걷고 한 사람은 옆으로 걸으면서 빗각을 형성하고
골목의 아래쪽에선 비스듬히 방향을 잡은 한 사내와
똑바로 앞을 보며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는 한 사내가
또다른 빗각을 형성한다.
그리고 사거리의 가운데쯤에선
셋이면서 하나인 젊은 친구들, 그리고 엄마와 딸이 자리를 바꾸면 균형을 맞춘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의도하고 자리를 잡는 자연이 없듯이.
그러나 마치 자연의 풀들이 우연찮게 미학적 구성을 이루며 자리를 잡듯
사람들이 골목을 걸어가며 극히 짧은 한 순간 우연찮게 미학적 구성을 이룩했다.
사람들은 의도하지 않고 있지만
어느 한 순간 미적 대칭과 균형을 만들어내며 살아가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23일 서울 천호동에서

2 thoughts on “골목과 사람들의 순간적인 미적 구성

  1. 과연 혼자 놀기의 달인이십니다.^^
    보통은 같은 사진을 놓고 조금 손질한 다음에 달라진 것 몇 가지를 찾는데,
    11초 전후 사진을 만들어 역동적인 차이를 발견하고 묘사하신 게 특이합니다.
    ‘빗각’이란 멋진 말은 만드신 거에요?

    1. 5초 정도 간격을 두고 계속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나중에 이 사진 두 장을 골라냈어요. 구성의 변화가 어떻게 미적 차원으로 변했을까 궁금하더라구요. 그게 대칭과 균형을 통해 이루어지는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보는 사람에 따라 고정된 요소에 주목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빗각은 비스듬이 엇나간 각도란 뜻으로 아무 생각없이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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