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서 키우는 화분에서 꽃이 하나 피었다.
누구의 눈길이나 모두 끌어갈 정도로 꽃이 예쁘다.
꽃을 처음 본 것은 2008년이었다.
어머니가 꽃이 피었는데 너무 예쁘다며 구경하라고 했던 기억이다.
나는 꽃의 모양에서 백조를 연상했다.
백조는 순백의 새이니
이 꽃은 보라빛의 백조였던 셈이다.
꽃의 이름은 네오마리카 그라실리스(Neomarica Gracilis)이다.
붓꽃의 일종이며 브라질 태생이다.
우리나라에선 학란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인데
고고한 자태로 봐선 학의 느낌도 많이 난다.
네오마리카란 새로운 마리카란 뜻이며
마리카는 요정의 이름에서 따온 식물의 이름 중 하나이다.
그러니까 네오마리카란 이름에는 마리카란 식물과 닮은 점이 있지만
새롭게 발견된 식물이란 의미가 담겨있다.
그라실리스는 날씬하고 가느다랗다는 의미의 말이다.
아마도 잎의 모양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지지 않았나 싶다.
2009년에도 다시 꽃을 볼 수 있었다.
이때는 꽃몽오리부터 접할 수 있었다.
꽃몽오리는 입을 내밀고 먹이를 구하는 새의 부리를 연상시켰다.
하지만 꽃잎 하나가 펼쳐졌을 때의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
그 안에 든 꽃이 마치 알속에서 부화를 기다리는 새 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신기하여 카메라를 들고 한 시간여를 그 앞에서 기다리며 사진을 찍었다.
정말 알을 깨고 나오듯 잎을 터뜨리며 꽃이 피었다.
네오마리카 그라실리스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잎들은 칼처럼 길고 뾰족하며 꽃은 향기롭다.
하지만 꽃이 핀 뒤 단 하루밖에 가질 않는다.
정확히는 18시간 정도 간다고 한다.
실내에서 화분에 키우기에 아주 좋은 화초이다.
물은 많이 요구하는 붓꽃 종류가 아니기 때문에
너무 물을 과하게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서양에서는 워킹 아이리스(walking iris),
즉 걸어다니는 붓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은
꽃이 핀 줄기가 꽃이 지고 난 뒤 무게로 인하여 지면으로 기울어지며
그러면 지면에 닿은 줄기에서 새롭게 뿌리가 나와 번식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정원에 심어 놓으면
이 식물이 정원을 걸어다닌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식물을 나누어서 새로운 곳에 심어도 된다.
꽃이 예쁘다고 탐을 내면 인심쓰듯 반을 갈라주어도 된다는 얘기이다.
서양에서 불리는 또다른 이름으로는
사도의 붓꽃이나 사도의 식물(Apostle Plant)이란 것도 있다.
여기서 사도란 예수의 12 제자를 가리킨다.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은
사람들이 이 화초는 최소한 12개의 잎을 갖추기 전에는
꽃을 피우지 않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의 네오마리카 그라실리스는 열두 사도들이 전도를 엄청나게 했는지
잎이 상당히 무성하다.
지난 해 이사를 했다.
그리고 올해 이사온 집에서 다시 네오마리카 그라실리스의 꽃을 볼 수 있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역시
네오마리카 그라실리스가 꽃을 피우자
꽃이 핀 것이 아니라
작은 새 한마리가 잎에 날아와 앉아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 새는 하루밖에 머물지 않는다.
네오마리카 그라실리스는 사실 머리가 셋인 꽃이다.
그 세 개의 머리가 모두 머리를 고집하면
네오마리카 그라실리스는 삼각형의 대칭을 이루는 꽃에 머물고 만다.
셋 중 하나가 머리가 될 때
다른 둘이 몸으로 머리를 받쳐주면
그때는 꽃이 아니라 새가 된다.
네오마리카 그라실리스는 쉽게 꽃을 피우는 화초는 아니다.
그러나 어렵게 꽃을 피웠는데도
오래도록 꽃을 고집하지 않는다.
꽃을 피우고 저녁이 되자
이제 때가 되었음을 다 안다는 듯이
딱 하룻만에 날개를 접었다.
아쉽지만 가야할 때를 아는 꽃이다.
**네오마리카 그라실리스를 소재로 한 또다른 글
– 꽃의 부화
– 백조가 되고 싶었던 꽃
2 thoughts on “네오마리카 그라실리스”
와~ 개화 장면을 담기 위해 한 시간을 지켜보신 적도 있네요.
walking iris, Apostle Plant 같은 별명도 특이한 꽃이군요.
비록 하루밖에 안 펴도 몇 년 동안 이맘때가 되면 털보님네 베란다를 수놓으면서
주목 받았으니, 이 꽃도 보람 있어 하지 않을까요?
아침 햇볕이 담을 넘어올 때였는데 요맘 때의 햇볕이 아주 따갑잖아요. 그 따가운 빛을 다 참아가면서 카메라를 꽃에 들이대고 있었죠. 아주 순식간에 벌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안하면 못찍겠더라구요.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올해 다시보니 반갑긴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