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떠난 뒤
오랫만에 다시 고향을 찾았을 때,
가장 확연한 변화는
산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고향을 뜨기 전까지만 해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산을 오르고 내리는 내 걸음을
이끌어 주었던 산길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길이 있었던 곳을
짐작으로 더듬는 내 추억의 자리엔
무성한 풀만 가득했다.
고향에 갈 때마다
고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의 꼭대기에 올라보고 싶었으나
풀들이 길을 지우고 삶의 터전으로 삼은 산에선
그 무성할 풀들을 헤쳐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사람들이 떠나 인적이 뜸해진 고향의 산과 달리
주말마다 사람들의 걸음으로 몸살을 앓다시피하는
서울이나 그 인근의 산들은
오랫만에 찾아도 산길이 확연했다.
고려산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찾은 것은 몇 년만이었지만
그동안 다른 사람들의 걸음이 잦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8월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며칠 동안
그 길에서 사람의 흔적이 뜸했던 것이 틀림없다.
풀들이 낮은 자세로 길을 염탐하며
사람 냄새를 맡아 보고 있었다.
사람 냄새가 희미하다 싶으면
슬쩍 그 길로 나앉을 것이 분명하다.
저러다 풀들의 끝이 밟히면 코가 깨지는 꼴이 되겠지만
풀들은 그 위험한 염탐을 마다않고 있었다.
아마 내 고향에서도 그랬으리라.
내가 하루가 멀다하고 산길을 올라
뒷동산을 뛰어다닐 때는
그 길을 내 몫으로 비워주었지만
내가 떠나고 난 뒤로 발길이 뜸해지자
그 길을 염탐하다 그 길에 뿌리를 내리고
내가 언제 오나 목을 빼고 기다리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기다림에 부응할 수 없게 되었다.
원래 기다림은 기다리는 사람이 올 길을 남겨두는 법이나
풀은 기다림이 너무 길어지면 길을 남겨두지 않는다.
그때는 길의 추억을 먹고 자란 풀들과 인사하는 수밖에 없다.
고향으로 가는 길은 넓고 곧게 바뀌었지만
고향의 산길은 모두 지워졌다.
자연은 너무 오래 버려두면 길을 남겨두지 않는다.
정작 고향에 가서 걷고 싶은 것은 그 산길이었지만
고향에선 그 길을 잃고
지금은 서울 인근의 산에서 그 길을 걷고 있다.
2 thoughts on “산길과 풀”
요즘 산길은 풀이 한참 자라 연중 가장 무성해 보이면서 발목을 덮거나
간지럽히는데, 그게 실은 사람의 출입을 염탐하는 거였군요. 고향 산길의 추억이
죄다 없어지지 않고 조금은 남아 있어야 할 텐데, 많이 서운하실 것 같습니다.
산길이 없어져 이제는 예전에 다니던 곳으로는 못다니고 풀이 가장 무성하지 않은 곳을 골라서 올라가게 되더라구요. 그런 곳도 찾기가 쉽지 않지만요. 고향의 산꼭대기에 한번 올라보고 싶은데 갈 때마다 쳐다보기만 하고 돌아서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