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과 정선은 서로 붙어 있다.
영월의 바로 곁이 정선이다.
영월은 제천과도 붙어있다.
정선은 같은 강원도이지만
제천은 도를 달리하여 충청도에 속한다.
하지만 가는 길의 편리함을 생각하면
오히려 도를 달리하는 제천이 더 가깝다.
그만큼 영월에서 정선으로 가는 길이 험하다는 얘기이다.
몰운대는 정선에 있다.
나는 강원도 영월에서 자랐지만
사실 같은 강원도의 정선은 그다지 자주 걸음하지 못했다.
가끔 강원도 사람보다
자연에 대한 흠모가 더욱 절실한 도시 사람들이
강원도의 가치를 더 먼저 발견한다.
몰운대도 그랬다.
나는 몰랐는데 시인 황동규가
그곳의 가치를 나보다 먼저 알아차렸다.
나는 황동규의 시에서 비로소 정선의 몰운대를 알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뒤늦게 몰운대를 찾은 것은 세 번.
어찌보면 내 발길을 그곳으로 이끈 것은
황동규의 시 속에 몰운대가 녹아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몰운대로 들어가다 보면
바로 곁으로 아득한 절벽 위의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위험하다는 경고문을 무시하면
소나무까지 한번 나가볼 수 있지만 상당히 아찔하다.
몰운대를 처음 찾고 나서 두 해 뒤에
고향을 내려간 길에 친구를 살살 꼬셔서 함께 다시 몰운대를 찾았다.
소나무는 여전했다.
멀리 아래쪽으로 차가 조그맣게 축소되어 보인다.
황동규의 시에 등장하는 고사목이다.
황동규는 이 나무를 가리켜
번개에 맞은 뒤 죽은 척하고 있는 나무라고 말했다.
나무는 죽어도 죽지 않는다.
다만 죽은 척하고 있을 뿐이다.
처음 찾았을 때는 이 나무의 가지 한 부분에 푸른 풀이 피어있었다.
2010년에 찾았을 때도 나무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사진으로 비교해보니 가지들이 약간 정리된 듯하다.
추석 명절을 팽개치고 그녀와 떠난 여행길에서
다시 몰운대의 고사목을 찾았다.
나무는 여전했다.
여전히 죽은 척하고 있었다.
몰운대의 고사목은 어떻게 보면
마치 허공을 그 가지로 움켜쥐고 있는 느낌이다.
가지는 자세히 보면
세월의 풍상을 크게 겪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하긴 막힐 것없는 바람의 길목에서
얼마나 시달렸으랴.
몰운대에서 내려다 보면 밭의 가장자리를 따라
길이 이리저리 휘어지며 산으로 올라간다.
이 길을 따라 계속 걸으면 억새로 유명한 정선의 민둥산을 오를 수 있다.
논의 풍경은 항상 똑같지만
밭의 풍경을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기회가 되면 밭을 따라 휘어지는 길을 따라
여유롭게 좀 걸어보고 싶다.
몰운대의 바로 아래쪽은 가파른 절벽이고
그 절벽의 아래쪽으로 물이 하나 흘러간다.
내가 자란 영월의 문곡리에도 이와 비슷한 시냇물이 있다.
이런 시냇물을 보면 물길을 따라 오르내리며 걸어보고 싶다.
이 시냇물의 이름은 어천이다.
물고기가 많아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물을 철벅거리며 걸어보기에 딱 좋은 깊이로 보인다.
걷다가 피곤하면 물의 한가운데로 마른 자갈을 모아
섬처럼 몸을 드러낸 곳에서 잠시 쉬면 될 것이다.
실제로 물고기를 잡고 있는 사람들도 보았다.
서울 사람들이 반도라고 부르는 것으로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한 명칭은 반두라고 해야 하는 것 같다.
강원도에선 이를 족대라고 불렀다.
족대로 고기를 잡으면 주로 미꾸라지가 잡힌다.
위에서 내려다볼 때 밭을 따라 휘어지던 길로 내려와
위로 올려다 보면 몰운대는 이런 모습이다.
고사목의 자태는 아래서는
망원경의 힘을 빌지 않으면 자세히 살펴보긴 어렵다.
하지만 망원 렌즈로 당겨서 찍으면
팔이라도 벌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좀더 가까이서 올려다 보니 번개에 맞으면서
번개를 삼켜 번개가 된 듯도 싶었다.
몰운대에는 그러고보면
살아있는 푸른 나무들과 고사목이 한자리에 있다.
살아있는 나무와 죽은 나무가 모두 몰운대를 지키는 느낌이다.
하긴 역사를 뒤돌아보면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지킨 것이
삶으로 한정된 경우는 없었던 듯 싶다.
민주나 자유과 같은 고귀한 것들은
오히려 죽음으로 지켜낸 측면이 많다.
삶이 그 귀한 죽음의 뜻을 이어받을 때
세상의 소중한 것들이 지켜진다.
몰운대에서도 그래서 죽은 나무와 살아있는 나무가 함께 뒤섞여 있는 것일까.
원래 몰운대의 절벽 꼭대기에 서서 세상을 한번 내려다 본 뒤에는
좀전에 보았던 아래쪽으로 내려가
몰운대는 다시 올려다보는 것이 큰 재미였는데
2011년에 내려갔을 때는
아래쪽으로 들어가는 길목이 막혀 있어 들어가질 못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서 귀찮아진 것이 아닐까 싶었다.
들어가는 길목에 있었던 곤드레나물 밭에도 다른 작물이 심어져 있었다.
언제 또 이곳을 찾아갈지 모르겠다.
다음에 갈 때는 여러 시편에 남겨져 있는
황동규의 몰운대 얘기를 읽어보고 가야겠다.
2 thoughts on “정선 몰운대”
죽은 척하고 있는 나무라니, 역시 시인의 표현이 멋있습니다.
08년 9월 사진에는 정말 새순이 돋은 건지 초록이 보이는데요.
이 사진에선 용가리가 화염을 내뿜고 있는 것처럼도 보이구요.
저도 여름에 정선 갈 때 네비가 제천 쪽으로 해서 올라가는 길을 보여주던데,
보기엔 얼마 안돼 보이는 강원도 내륙지방이 멀긴 멀더리구요.
정선은 어디나 호락호락하질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숨어있는 좋은 길도 많구요.
저는 가면 주로 숨어있는 길들로 다니는데
숨어있는 길로 슬쩍 들어서면 영월도 꽤 볼만하긴 해요.
숨어있는 길의 골치아픈 점은 길밖의 풍경이 너무 좋아서
차를 타고 가면 안될 거 같고
그냥 내내 걸어가야 할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죠.
물론 걸어서는 어림도 없을 정도로 길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