뜯어낸 하늘 – 김주대의 시 「눈 오는 저녁의 느낌」을 읽다가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12월 9일 경기도 하남의 남한산성에서

우리는 땅을 딛고 살고
하늘은 언제나 우리의 머리 위로 아득하다.
그 하늘이 우리의 땅으로 내려앉아
우리의 발밑에 지천으로 깔리는 일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다만 그것이 가능하려면 시인의 힘을 빌려야 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놀라운 시인의 세상으로 가보자.

하늘을 뜯어내는 듯이 눈이 내린다
— 김주대, 「눈 오는 저녁의 느낌」 부분

하늘을 뜻어내듯이 눈이 내린다고 했으니
시인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눈은 뜯어낸 하늘이다.
말하자면 눈에 덮인 세상은
하늘을 지상으로 내려 하얗게 열어놓은 세상이다.
그 세상에서 눈길은
우리가 걷던 길로 하늘을 내려
잠시 하얀 빛으로 열어놓은 하늘의 길이다.
그러므로 눈이 내린 날,
우리는 중력에 묶여 평생을 살아왔던 땅을 버리고
하늘 위를 걷는다.
그냥 걸을 때는 눈길이었으나
시인의 힘을 빌리자
그 길이 하얀 하늘의 길로 열렸고
나는 하늘을 걸을 수 있었다.
겨울엔 우리의 머리 위로 아득하기만 했던 하늘이 뜯겨져 내려와
세상이 온통 하늘로 덮였고
그런 날 우리는 하늘에 오른 즐거움과 기쁨으로
그 하늘 위를 걸었다.
하늘의 사이로 언듯언듯 지상이 내려다 보이기도 했고
나무들이 하늘을 뚫고 올라와 머리를 내밀고 있기도 했다.
겨울이 오는 것은 계절이 그 연유였고,
그 계절에는 눈이 어김이 없었으나
눈이 올 때 하늘을 땅으로 내리고
또 눈길을 하늘의 길로 연 것은 시인의 힘이었다.

**인용된 시는 다음의 시집에 실려 있다
— 김주대, 『그리움의 넓이』, 창작과비평사, 2012

2 thoughts on “뜯어낸 하늘 – 김주대의 시 「눈 오는 저녁의 느낌」을 읽다가

  1. 어제 간단한 설명을 들었는데도 시인과 평론가가 이해하는 시 세계에 대한 그림이
    쉽게 안 그려지는데요. 그래서 시를 읽어야 하는 거겠지만요.^^
    시집을 전해주신 시인께 여기다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1. 시인의 표현을 그냥 눈이 엄청나게 내리는 것에 대한 표현으로만 받아들이면 재미가 없어서 곧잘 표현을 한번 확장해보곤 해요. 그게 훨 재미난 것 같아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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