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 시간 1분의 사랑 – 박연준의 시 「눈감고, 푸르뎅뎅한 1분」

Photo by Kim Dong Won

치마에 무엇인가가 떨어지면서 얼룩이 졌다. 그 얼룩을 좋아할 수가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때로 사람도 우리들 인생의 얼룩이 될 수 있다. 누군가 아이구, 이 웬수, 내가 너를 만난 것이 내 인생의 오점이다, 오점이야라고 말했다면 그렇게 한탄하는 사람의 인생에 누군가가 떨어져 얼룩처럼 번진게 틀림없다. 그러니 어떻게 얼룩을 좋아할 수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얼룩처럼 떨어진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그건 엄청나게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치마에 들어간 무늬가 좋아서 치마를 샀는데 그 무늬가 금방 흐려져 버렸다면 그런 치마를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때로 사람도 치마의 무늬처럼 그 사람만의 특징을 갖는다.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그 특징 때문에 상대방에게 끌리곤 한다. 배려심이 깊어 식사를 할 때면 항상 상대가 좋아하는 메뉴 쪽으로 식당을 고르는 것 등이 그러한 특징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이 좋아서 누군가를 만났는데 그런 점이 곧바로 없어져 버렸다면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까. 만약 그런데도 그를 좋아할 수 있다면 상대방을 엄청나게 사랑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사랑을 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사랑은 사실 그 이상의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 예를 들자면 그 사람과 마주 앉아 있을 때 그 사람 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도 좋아지고, 그 사람의 왼쪽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면 그 하늘의 구름도 좋아지는 신기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데 그 사람 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을 둘러싼 온 세상이 다 좋아지는 것이 사랑하는 날의 우리들이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아무래도 겉모습에 많이 신경을 쓰게 된다. 옷맵시를 한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고 머리 모양도 손질하게 된다. 그러면서 실실 웃게 된다. 그렇지만 사랑을 한다고 항상 사랑이 달콤하고 행복한 순간을 안겨주는 건 아니다. 사랑은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사랑한다면서 서로 싸우고 물어뜯기도 한다. 그러니 사랑할 때 상대를 만나기 위해 머리를 다듬고 화장을 하는 일이 나중에 알고 보면 상대에게 물어뜯기기 위해 한 짓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사랑에 빠졌을 때는 상대의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심지어 상대가 하품하는 모습에까지 빠져든다.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누구나 손을 잡고 싶어한다. 손을 잡을 때면 우리는 수줍음을 타기도 한다. 손을 잡고 싶어하는 우리의 마음은 손을 잡으면서 사실은 손가락을 놓친다. 손이란 총칭으로서의 개념이다. 손가락은 그 손의 안에서 개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율적 부분이다. 사랑할 때의 우리는 그 개별적이고 자율적인 부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알지 못한다. 사랑할 때는 손을 잡고 싶은 마음이 손가락의 움직임을 가린다. 그 열 개의 손가락은 수줍음이 없는데도 우리들 마음 속의 눈에는 손의 수줍음만 잡힌다.
사랑할 때는 상대를 열고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다. 물론 우리가 열고 싶은 것은 상대의 마음이다. 하지만 마음은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여는 것은 결국 상대가 입고 있는 옷의 지퍼이다. 우리는 윗옷의 지퍼를 풀고 싶어하며, 하의의 지퍼도 열고 싶어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지금의 이 마음이라면 사랑하다 죽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때의 우리들이 채소였다면 죽는 줄도 모르고 끓는 물에 뛰어드는 시퍼런 채소 같을 것이다. 채소는 끓는 물에 데쳐도 금방 꺼내면 시퍼런 색 그대로이다. 사랑할 때는 끓는 물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도 채소의 시퍼런 색이 언제나까지나 그대로 유지될 것만 같다. 그렇게 끓는 물에 데쳐져 죽는데도 죽는 줄도 모르고 끓는 물에 뛰어드는 것이 바로 사랑할 때의 우리들이다.
사랑하는 날의 우리는 상대를 균형있게 바라보지 못한다. 예를 들어 상대의 왼쪽 어깨를 바라보았다면 오른쪽 어깨를 함께 바라보며 균형을 살필만도 하건만 왼쪽으로는 어깨를 살펴보면서 오른쪽으로는 그가 갖고 있는 차의 바퀴로 시선이 갈 때가 있다. 때문에 사랑할 때의 우리는 사실은 상대가 왼쪽 눈만 있고 오른쪽 눈이 없는데도 그 사실을 모를 수 있다. 상대의 차가 오른쪽 바퀴만 있고 왼쪽 바퀴는 없는, 완전히 고장나서 버려진 폐차인데도 그것을 전혀 모를 수 있다. 사랑하는 날의 우리는 전혀 상대를 균형있게 바라보지 못한다.
사랑은 내게서 오래 머물게 하고 싶다는 욕망이지만 너무 일방적으로 빠지면 지나가는 사랑도 그저 좋기만 하다. 그냥 수염난 그가 내 앞을 지나가는 것만으로 잠시 행복해진다. 사랑에 빠지면 사람이 그렇게 된다.
하지만 과연 그런 사랑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눈멀고 귀멀먼 가능하다. 때문에 그런 사랑을 하려면 가장 먼저 눈부터 감아야 한다. 하지만 그런 맹목적인 사랑이 과연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그건 맞는 말이다. 그런 사랑은 1분밖에 가질 못한다. 야채를 끓는 물에 넣었다가 푸른 빛을 그대로 간직한채 데쳐내는 시간이 그 정도 될 것이다. 그런 사랑이 1분 이상을 넘기면 야채는 제 빛깔을 잃는다.
내가 지금까지 한 얘기는 전혀 시적이질 않다. 또 누구도 이런 얘기들이 시가 될 수 있다고 생각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 박연준이 그의 시 「눈감고, 푸르뎅뎅한 1분」에서 내게 들려준 사랑 얘기이다. 어디 한번 이제 그 시를 직접만나 확인해 보시라.

내 치마에 묻은 너를 생각해
금세 흐려지는 무늬를 너라고 생각해

너의 오른쪽 산을 좋아해
왼쪽 구름을 좋아해

나는 작은 가위로 머리칼을 자르며 웃지
네 이빨에 물리고 싶어서
나는 햇빛보다 먼저 창가로 가지
하품하는 네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그러나 나는 손가락을 놓치지
열 개의 개구쟁이들은 수줍음이 없지
나는 너를 열고 싶지
너의 지퍼 속에 들어가고 싶지
시퍼렇게 시퍼렇게, 죽고만 싶지

너의 왼쪽 어깨를 좋아해
오른쪽 바퀴를 좋아해

지나가는 너의 수염을 좋아해
─박연준, 「눈감고, 푸르뎅뎅한 1분」 전문

때로 우리들이 생각하는 사랑은 야채를 끓는 물에 넣고 데칠 때, 야채의 원래 색깔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시간, 바로 1분 정도의 시간밖에 가질 못한다. 그러니 사랑하고 싶다면 조심하시라. 그 사랑이 단 1분만에 끝날 사랑일 수도 있다. 아니 1분 이상을 넘기면 절대로 안되는 사랑일 수 있다. 그러니 그런 사랑을 계속하면서 맛나게 가져가고 싶다면 절대로 1분을 넘기지 마시라. 하지만 사랑에 조리법이 통하는 경우가 어디에 있던가. 사랑은 불가항력적으로 밀려들며, 결국 그 뒤끝에서 물러터진 야채를 맛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사랑이 그렇게 순식간에 끝난다니 너무 실망스러우신가. 하지만 실망하지 마시라. 그것은 다 박연준이 사랑을 데치는 야채에 비유했기 때문일 뿐이다. 아직 시인이 김장을 담아본 적이 없는 젊고 어린 처자일 수도 있다. 혹 앞으로 시인이 김장에 비유할 만한 사랑을 하게 된다면 사랑은 한 계절을 무사히 넘길 수도 있으며, 사랑의 비유가 젖갈류에 가서 닿는다면 몇년의 세월 속에 삭혀가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사랑은 아무도 모른다. 우리들이 20년 동안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고 있는 생활이 문뜩 사랑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시인의 힘을 빌어 사랑의 증명을 삼고 심다면 그냥 다들 기다리시라. 시인이 그 삶을 겪을 때까지. 다만 아직은 아닐 뿐이다.
(2013년 2월 24일)

**인용한 박연준의 시는 다음의 시집에 실려있다.
박연준 시집,『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문학동네, 2012

2 thoughts on “제한 시간 1분의 사랑 – 박연준의 시 「눈감고, 푸르뎅뎅한 1분」

  1. 해설된 시를 읽는 독특한 시 감상법을 선사해 주셨네요.
    이렇게 읽으니까 시가 조금 이해가 되는군요.^^
    시집 제목은 또 무슨 뜻인가요?

    1. 시집 제목의 연유는 좀 슬퍼요.
      아버지가 치매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더라구요.
      딸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리 부르더라고 하더라는.
      시집이 경쾌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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