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비닐하우스

Photo by Choi Young Sun
2011년 2월 26일 경기도 팔당의 두물머리에서

사람들은 대개 집이 누추하면 사람부르길 꺼린다.
누추하기로 보자면
비닐 한겹으로 만들어진 비닐하우스보다
더 누추한 집이 있을까.
그러나 빛은 그 누추한 집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니 부르지 않아도
문을 열면
마치 이제나 저제나
항상 이 집에 놀러오고 싶었다는 듯이
곧바로 비닐하우스의 안으로 들어와
아예 길게 몸을 눕히고
가장 편한 자세로 그 집에 머문다.
사람들은 빛이 누추한 집이나 부잣집이나
모두 차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질 않다.
한 벽면이 모두 통유리의 창으로 이루어진
호사스런 집에선
빛이 그렇게 편안하게 머물다 가질 못한다.
남향의 통유리창을 가진 호사스런 집에서
그 집으로 들어온 빛은
그 집이 얼마나 살기 편하고 좋은 집인가를 말해주며
집의 높은 상품성을 선전하는 홍보 요원으로 전락하고 만다.
부잣집의 빛은 그저
봐요, 이 집, 겨울에도 빛 잘들고, 정말 좋죠라는 말을 거들며
집의 선전꾼으로 우두커니 서 있어야 할 뿐이다.
나의 이런 생각 때문인지
나는 어쩌다가 찾게 되었던 거대하고 화려한 교회의 목사들에게선
거의 모든 경우 그 예배당 건물의 선전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와 달리 만약 하늘의 뜻이 있고,
그 뜻을 우리에게 전하는 하늘의 목소리가 빛이라면
그 목소리는 누추한 비닐하우스를 통해서만 이 땅으로 온다.
그 빛은 문을 열면 곧바로 그 문으로 들어와
가장 편안한 자세로 집안에 눕고는
이곳이 바로 하늘의 뜻이 거처할 곳이라는 것을 알린다.
그리고 놀랍게도 하늘의 뜻을 아주 잘아는 자들이 있어
그 목소리를 귀신같이 알아듣고는
그 낮고 누추한 곳으로 함께 한다.
나는 그 낮고 누추한 곳에서 주로 카톨릭의 사제들을 만났다.
내게 그들은 누추한 곳으로 낮게 임한 하늘의 빛처럼 보였다.
저 높은 곳에 뜻이 있거든
이 세상의 가장 낮고 누추한 곳으로 가라는
그 역설을 알려주는 빛은
오직 누추한 곳으로만 찾아온다.
한동안 두물머리 유기농 단지의 비닐하우스에
그 빛이 찾아와 머물렀다.
그 빛은 지금도 여전히
세상의 낮고 누추한 곳을
찾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욕심이 많은 나는
빛 잘드는 8층의 남향집을 버리지 못하고 살고 있으며,
빛은 잘드나 한편으로 하늘의 빛이 없어 마음이 황폐해질 때면
가끔 빛이 된 사람들을 만나
기꺼이 내게 시간을 내주는 그 사람들을
하늘의 빛처럼 쬐며 살아가고 있다.

6 thoughts on “빛과 비닐하우스

  1. 신앙인보다 더 신앙적인 글이에요.
    보잘 것 없는 사진을 이렇게 아름다운 글로
    생명을 불어넣어주시다니요.

    이렇게 사진을 알아주시는 분에게는
    멋지게 프린트 한 장 해 드려야 하는데… 여력이 안되어서. ^^**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를 알고 계시는 야미(이아미?)은 누구신지 궁금해져요.
    부끄러운 거야 교회에도 성당에도 절에도 … 다 있는 거 아닐까요? ^^

    1. 그날 고마웠어요.
      눈덮인 계곡을 잠시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평화로워 지더라구요.
      윗분은.. 사실 함께 한번 뵌적이 있어요.
      오래 전이라 수도원이었는지 두물머리였는지 그게 좀 가물가물하네요.
      사실은 두 분 모두 제 마음의 황폐함을 덜어주시는 빛이시라는.

    2. 수도원에서 eastman님 부부와 수사님 사무실에 들러 보이차 대접을 받고,
      커다란 애플 모니터로 수사님 사진 잠시 봤던 사람입니다.^^
      그때 다른 보이차를 갖다 드리마고 해놓고 못 갖다 드리고 있네요.
      봄이 되면 한 번 찾아 뵈야겠어요. I am i 라고 읽으시면 돼요.^^

    3. 김동원 선생님, 이스트맨님 역시
      저에게는 빛이십니다. 가끔 위선을 떨고 싶을 때 바로잡아주는 빛…. ^^

      I am I. 하느님이셨군요. ^^;;
      저희 까페에서 ‘차’는 ‘2차’에요.
      ‘사람이 먼저’입니다.

      그러니 차 없이 오셔도 무방합니다.

  2. 최 수사님 사진이군요. 확실히 흑백사진이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주네요.
    저도 몸을 담고 있긴 하지만, 개신교가 대체로 천박한 인상을 주는 게 부끄럽네요.

    1. iami님이 그 부끄러움을 덜어주고 계셔서 저에겐 오히려 iami님이 고마운 분이십니디.
      간만에 수도원에 들러서 최수사를 만났어요.
      우연히 사진 얘기가 나와서
      그동안 찍은 최수사의 사진들 보다가 이 사진을 봤는데
      곧바로 이 사진좀 쓰게 나한테 보내달라는 말이 나오더라구요.
      남이 찍은 사진에선 영감을 받는 일이 드문데
      최수사 사진은 종종 영감을 주곤 합니다.
      두물머리 사진 엄청나게 찍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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