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3일 금요일의 촛불은
시청앞의 서울광장에서 모였다.
오전 내내 비가 내린 날이었다.
빗줄기는 굵었고
집회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질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렸다.
남부쪽은 날씨가 맑다는 소식이었다.
남쪽의 아는 이는 남쪽의 날씨를
서울과 바꾸어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몸은 남쪽에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서울의 시청앞에 와서
촛불의 자리에 함께 하고 있었다.
을지로3가역에서 내려 시청까지 걸어갔다.
을지로 입구를 지날 때쯤
멀리 서울광장쪽에서 자동차의 소음을 뚫고
최도은의 「불나비」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촛불이 오전내 계속된 비를 뚫고
민주와 자유를 노래하고 있구나 싶었다.
수녀님들이 촛불집회에 함께 해주셨다.
9월 23일 월요일, 같은 자리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올리는
‘국정원 개혁과 정부의 회개를 촉구하는 시국미사’가 있다.
사진찍는다고 얼굴을 가리면서도
한쪽 눈으로 바라보고 계신 수녀님이 귀여우셨다.
추석 때 여행을 떠났다 월요일에나 돌아온다.
일정이 맞을지 모르겠다.
일정을 잘 맞추어 여행의 끝을 미사로 장식해볼 생각이다.
세상에는 무수한 여인들이 있지만
그 중의 제일은 촛불든 여인이라.
세상에나 세상에나..
거동도 불편하신 할머니 한분이
촛불을 들러 오셨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잘못온 할머니셨다.
박근혜는 물러가라라는 구호가 나오자
그제서야 할머니는 자리를 잘못 찾아온 것을 깨달으셨다.
그래도 촛불은 잘못오신 할머니를 마다않고
잘 모시고 있다 보내드렸다.
9월 13일의 서울광장 촛불 집회엔
3만의 촛불이 모였다.
아침부터 내린 비를 마다않고 모인 촛불이다.
연인과 가족, 친구들이 함께 하며
즐겁게 민주주의 되찾으려는 자리이기도 했다.
나는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다.
국민은 심판이며,
그 심판은 대통령 선거에 불법 개입한 국정원에 대해
아웃을 선언했다.
촛불이 환하게 빛을 밝혀
그 사실을 확인했다.
한둘도 아니고 3만의 촛불이었다.
촛불 하나가 컵을 버리고
맨몸으로 바람에 맞섰다.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작은 촛불의 당당한 위용 앞에서
바람마저도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죽였다.
가족이 함께 자리하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아빠와 엄마가 아이에게 주는 선물의 자리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를 향한 모두의 한걸음이 주는 즐거움이
엄마아빠의 선물이다.
그 선물은 언제나 촛불에 담겨있다.
촛불은 공정한 선거가 보장되는 민주 세상을 위해
우리 모두가 함께 들어올리는 축배 같은 것이다.
모두 함께 촛불의 잔을 드시라.
구호는 국정원 아웃이나
박근혜가 책임져라가 되시겠다.
어떤 자원봉사자들은
어린이들에게 손에 들어도 뜨겁지 않은
유아용 촛불을 나눠주기도 한다.
목에 걸면 가슴에서 어린이의 반짝이는 마음처럼 빛난다.
누가 촛불 집회하는 곳이 어린이에게 위험하다고 하는가.
촛불 집회만큼 어린이가 보호받는 곳도 없다.
9월 13일의 촛불집회는
펑크 록 밴드 타카피의 공연으로 마무리되었다.
록의 정신은 자유이고
촛불의 정신은 저항과 민주이다.
록은 자유를 노래했고,
촛불은 자유의 노래에 맞추어 민주를 외쳤다.
록의 노래 앞에서 국정원 아웃의 구호가 환호했고
박정희는 군사쿠테타, 박근혜는 선거 쿠테타를 외치는 목소리가
타월 위에서 펼쳐져 열정적인 록의 리듬을 탔다.
록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손끝엔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목소리가 들려있었다.
록과 촛불은 아주 잘 어울리는 궁합이었다.
록밴드들이여, 모여라.
촛불과 함께 놀자.
너희가 자유를 노래할 때,
우리는 그 노래에 맞추어 민주를 외치리라.
아빠와 함께 집회에 나온 딸이
촛불도 들고,
아빠의 든든한 어깨 위에서
타카피 밴드의 록 공연도 본다.
촛불은 단순히 시위가 아니라
시위와 공연이 뒤섞인 퓨젼 문화이다.
타카피 밴드의 보컬은
사실 자신은 이런 자리가 두려웠다며
촛불들을 향해 여러분은 용감한 분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저녁 8시부터 공연을 한다고 해서
그전부터 와서 기다렸는데
공연이 9시반에나 시작되어
무려 두시간이나 기다렸다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노친네들이 이상한 음악을 틀어
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
사람들이 와하고 웃었다.
노친네들이란 촛불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옆에서 동시에 집회를 가진 보수단체를 지칭한 것이었다.
이날 보수단체는 어디 캬바레에서나 틀어놓음직한
이상한 음악으로 우리의 귀를 괴롭히려 들었다.
타카피 밴드는 세 곡의 음악을 선물한 뒤
원래 세 곡 부르기로 했었는데
두 시간이나 기다린게 억울하게 그냥 못가겠다며
사람들의 열광적 환호에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음악으로 응답했다.
공연은 10시반이 되어서야 끝났다.
촛불의 자리에서 록 밴드들 자주 보고 싶다.
2 thoughts on “촛불 단상, 2013년 9월 13일 금요일 시청앞 서울광장”
한 번 가야지, 하고는 여태 미적거리고 있네요.
천주교 분들이 참 대단하고 한결같다 싶습니다.
여야 영수회담의 결과가 좋게 나오길 바랄 뿐입니다.
그때 결과에 따라 촛불의 일정도 결정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