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는 정말 이상한 녀석이다.
김장철이 되면 꼭 그맘 때쯤 집에 나타나
소금을 온몸에 끼얹고
그 소금이 녹은 물에서 해수욕을 즐긴다.
뭐 그렇게 하면 그동안 속을 채우기 위해
안간힘으로 살아온 삶의 피로가
한순간에 노근하게 녹아내리면서
모든 피곤이 다풀린다고 했다.
그냥 즐기는 것도 아니다.
소금물 속에서 몸의 뒤적거려 가며 해수욕을 즐긴다.
“해수욕 하니 그렇게 좋냐”라고 묻기라도 하면
해수욕이 뭐야, 해수욕이, 우리 배추들 세상의 용어로는
이게 절이기라는 거야라고 나오신다.
해수욕을 즐기는 것은 좋은데 그 다음이 문제이다.
몸에 짠기 묻었다고 민물로 씻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항상 몸을 씻겨주는 것이 내 몫이다.
겉보기엔 깔끔해 보이는데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씻기라고 한다.
올해는 네 번이나 민물로 씻어주었다.
엄청나게 깔끔떤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짠기를 너무 씻어내도 안된다.
바다의 추억을 남겨야
나머지 세월을 그 추억으로 견딜 수 있다면서
너무 짠기 빠지지 않게 하라고 잔소리다.
해남 배추는 더더욱 그런 것 같다.
여기서 끝나면 말도 안하겠다.
그 다음에는 무슨 전신팩을 해야 한다고..
고추가루에 갖은 양념으로 버무린 붉은 팩으로
전신팩을 해주어야 한다.
팩을 한 뒤에는 미인은 이제부터 잠을 자두어야 한다며
김치 냉장고 속에 들어가 잠을 청하신다.
올해도 예외가 없다.
해수욕과 붉은팩이 몸에 좋다는 소문에
올해도 알타리가 배추를 따라왔다.
배추 샤워시키다 팔이 뻐근해져 신경질이 난 나는
알타리는 소금물 속에 콱 쳐박아 버렸다.
그래도 어차피 알타리도 내가 씻겨주어야 한다.
김장날은 배추와 알타리 씻겨주다 시간 다가는 날이다.
—
김장 때면 배추만 이상한게 아니다.
무도 이상하다.
무는 꼭 이때즘 나타나선 미끄럼틀을 태워달라고 난리다.
그게 날이선 채칼 미끄럼틀이라 좀 위험해 보이는데도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
타고 내려가면 온몸이 공중분해되는 짜릿한 기분이라고 한다.
그게 그냥 기분만 그런게 아닌데..
껄핏하면 무다리의 비유로 뜻하지 않은 곳에서 놀림받던 무는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간 끝에선
그야말로 날렵하기 이를데 없는 몸매를 얻는다.
그리고 그 몸매로 배추 속으로 안긴다.
가끔 김치맛이란 것이
배추와 무우의 사랑이 숙성된 맛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윽, 그럼 우리는 겨울을 사랑의 맛으로 견디는 거야.
2 thoughts on “김장철의 배추와 무”
제가 읽은 김장 풍경 가운데 최고의 미문인 것 같습니다.
속속들이 간이 밴 배추와 무가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역시 김치는 땅 파고 묻든, 김치냉장고로 깊은 잠을 재우든 일단 죽여야 사네요.^^
20포기는 감당할만한데 올해는 25포기로 겨우 다섯 포기를 더 늘렸는데도 팔이 좀 뻐근합니다. 죽어야 사니.. 부활이 따로 없습니다. 부활은 우리나라에선 겨울 행사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