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2014

올해는 록밴드의 공연을 유난히 많이 본 해였다. 대부분 홍대에서 활동하는 젊은 밴드였다. 거의 한달에 한번씩 빠짐없이 공연을 볼 수 있었다. 한해를 모두 음악으로 기록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여름을 넘기고 나자 그 기회가 뚝 끊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나에겐 텍스트와 음악 사이의 관계를 짚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록밴드의 공연과 함께 할 기회가 계속되었다면 올해는 음악 특집으로 꾸며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공연 사진말고도 올해 역시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진을 찍었다. 딸이 함께하여 하루 일정이지만 전주로 다녀온 가족 여행도 기억에 남고, 그녀와 간만에 오붓하게 떠난 하루 일정의 속초행도 좋았었다. 해의 끝무렵에 습관처럼 그 중에서 열두 장의 사진을 뽑고 모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4년 1월 14일 우리 집에서)

1
털옷은 따뜻하다. 털옷은 X자로 팔짱을 끼고 체온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었다. 따뜻함이란 바깥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때로 내 것을 지키면서 얻어진다. 털옷은 내가 가진 따뜻함을 잘 지키는 것으로 나를 따뜻하게 해주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4년 2월 20일 서울 양재동에 있는 락밴드 브리즈의 연습실에서)

2
나는 글자는 읽을 수 있지만 악보는 읽지 못한다. 글자를 읽을 때면 텍스트의 의미가 내 머릿속을 지나간다. 악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악보를 볼 때면 음이 머릿속을 울리며 지나갈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악보에 걸쳐놓은 헤드폰이 악보의 음을 듣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4년 3월 1일 서울 종로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3
그림의 떡은 먹을 수 없고, 그림의 계단은 오를 수 없다. 하지만 왜 그림에서 떡을 찾는 것일까. 떡을 그려도 그림은 그림이지 떡이 아니다. 그림의 계단도 계단이 아니라 그림이다. 가끔 맞는 듯한 얘기들은 그릇된 전제에서 출발하여 마치 그림의 떡도 떡인양 말을 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14년 4월 1일 서울 천호동에서)

4
목련은 그렇게 우아한 낯빛으로 와서 나의 넋을 빼놓더니 무수한 발자국만 남겨놓고 가버렸다. 그래도 떠나기 전에 내 곁을 수없이 서성이긴 했나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4년 5월 8일 경기도 팔당의 두물머리에서)

5
구름은 높이의 풍경만을 갖고 있었으나 논에 물이 들어차고 바람이 자는 날에는 슬그머니 풍경을 논으로 내려 깊이의 풍경까지 챙겼다.

Photo by Kim Dong Won
(2014년 6월 16일 서울 홍대거리에서)

6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찻집이었다. 안은 온통 담쟁이 덩굴이 차지하고 있었다. 주인이 나와 문을 열고 불을 켜면 화들짝 놀라 밖으로 튀어 나올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4년 7월 24일 서울 시청앞의 서울광장에서)

7
4월 16일에 수학여행을 떠나는 단원고 학생들을 싣고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면서 수많은 학생들이 희생당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참사가 발생하고 100일째 되던 날, 단원고 2학년 2반 아이들의 부모는 모두 2반의 아이들이 되었다. 부모가 된 아이들은 특별법을 제정하여 자신들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며 안산에서 서울까지 걸어왔다. 아이들은 아이여야 한다. 부모의 몸을 빌린 아이들은 한없는 슬픔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4년 8월 11일 서울 천호동에서)

8
술을 마실 때마다 별 하나가 떴다. 그러다 그 별중의 하나가 사랑이 되었다. 그 다음엔 그 사랑이 별이 되었다. 계속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4년 9월 4일 전북 전주의 경기전에서)

9
날이 맑고 빛이 좋은 날이었다. 모두 해바라기 덕택인 것만 같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4년 10월 3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10
언덕 위의 사람들은 여럿이었지만 두 연인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한 연인은 남자가 비행기가 되어 있었고 한 연인은 입술을 맞추고 있었다. 입맞추는 연인도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4년 11월 10일 강원도 속초의 영금정에서)

11
속초 바닷가에 돌고래 한 마리 떠 있었다. 돌로 이루어진 고래이다. 절대로 유영하는 법이 없다. 어떤 파도에도 굳건하게 제 자리를 지킨다. 진정한 돌고래는 흔들리는 법이 없다.

Photo by Kim Dong Won
(2014년 12월 22일 경기도 하남의 고골에서)

12
마른 잎으로 남은 가을은 겨울 동안 깊은 상실을 앓는다. 하긴 생의 마감이 그렇게 오래 분명하게 지속되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마감은 지속되나 마감된 생은 채워지질 않는다. 상실은 누군가에게 위로 받아야 한다. 위로는 눈의 몫이었다. 눈은 마른 잎에게 내 품에 누으라고 했다. 눈의 품에 누운 가을은 하얀 화폭의 그림이 되었다. 화얀 화폭은 저문 생의 상실을 그림으로 채우며 그 상실을 지웠다.

2 thoughts on “Photo 2014

  1. 참 의미 있는 한 해 정리법입니다. 다른 달 사진들도 아름답지만,
    3월과 10월 노는 날엔 함께했던 추억이 스며 있어 더 정겨운 느낌입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