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무의 시 「맥주」에 따르면 맥주는 그냥 술이 아니다. 맥주는 “신의 갈증을 인간이 풀어준” 놀라운 술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맥주를 마실 때, 신은 우리들의 몸을 통해 그 자신의 갈증을 푼다. 아울러 신의 갈증을 풀어준 술이긴 하지만 그 덕에 맥주를 마실 때 “인간은 가끔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술중에서 마시면서 갈증이 풀린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술은 맥주가 유일하지 않나 싶다. 윤병무 시인이 가장 좋아하는 맥주가 무엇인지는 「맥주」를 읽어보면 금방 짐작이 가능하다. 그것은 바로 “황금빛 맥주의 기원/필스너우르켈”이다. 또 시를 읽어보면 필스너 우르켈이 어디 맥주인지도 알 수가 있다. 그가 그 맥주를 가리켜 “체코에 가보고 싶은 이유”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맥주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시인은 “황금을 녹여 마신다고 이 맛이 날까”라고 되묻기까지 한다.
한때 나도 벨기에에 가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맥주 호가든이 벨기에산이었기 때문이다.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딸아이의 말은 벨기에에 가고 싶다는 욕망을 더욱 자극했다. 딸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벨기에에 가면 딱일 듯 싶어요. 그냥 동네 가게에서 제일 싼 맥주를 끄집어내 마셔도 정말 맛있었어요. 어느 날, 내가 벨기에를, 윤병무가 체코를 각각 떠돌고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맥주 기호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그의 맥주 필스너 우르켈은 “윗입술 담그기 딱 좋은 삼 센티미터의/잔거품”으로 그와 가장 먼저 대면한다. 윗입술을 담그기 딱 좋다고 말했지만 필스너 우르켈의 거품은 입술보다 “코끝에 살짝” 먼저 닿는다. 알게 모르게 우리들이 입술을 나눌 때도 사실은 코가 먼저 닿을 때가 있다. 그는 맥주를 마시는게 아니다. 맥주와 입을 맞추는 것이 틀림없다. 당연히 달콤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그 순간을 ‘감미’롭다고 말한다.
나도 필스너 우르켈을 마셔봤다. 사실 감미롭지는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나는 입을 맞춘 것이 아니라 그냥 맥주를 마신 것이니까. 내게 필스너 우르켈은 사실 쓴맛의 맥주였다. 하지만 내가 마셔본 맥주 중에서 쓴맛이 가장 강한 것은 기네스였다. 나는 필스너 우르켈을 마실 때 쓴맛도 부드러울 수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불행히도 쓴맛에 대한 나의 기호는 사실 기네스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건 쓴맛을 맛있게 견디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좋은 방편이라는 내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상사는 것이 씁쓸할 때면 기네스 맥주 한잔 마신 셈치자는 궁리일지도 모른다. 윤병무는 필스너 우르켈의 맛이 “처음은 달고 나중은 써요”라고 전한다. 그리고 대개 “진지한 삶”이 그런 맛이라고 그 앞에 미리 덧붙여둔다. 맥주를 마시며 그는 진지한 삶의 맛을 음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황금을 녹여 마신다고 이 맛이 날까요
윗입술 담그기 딱 좋은 삼 센티미터의
잔거품에 코끝이 살짝 닿는 순간 감미로워요
이어지는 첫 한 모금은 기쁨 그 자체
진지한 삶처럼 처음은 달고 나중은 써요
느낄 만큼만 달다가
아쉽지 않을 만큼만 써요
—「맥주」, 부분
오랫동안 그는 한 출판사에서 일했으나 요즘의 그는 일산의 풍동에서 The보리란 이름의 맥주집을 한다. 그의 맥주집에서 파는 맥주는 클라우드이다. 그가 “보리차에 소주 타고 탄산 섞은 듯한” 것이 “한국산 맥주”라고 말했지만 클라우드는 그래도 그런 수준에서 약간 벗어난 맥주이다. 원래 한국산 맥주는 그냥 참고 마셔야 하는 맥주여서 “금세 사라지는 맥주 거품을/말맛으로 대신 채”우면서 마셔야 한다. 그래서 맥주를 마시는 술자리가 시끄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클라우드는 말맛을 조금 덜 섞고 맥주맛 만으로도 마실 수 있는 맥주이다. 그래도 여전히 내 입맛에는 차질 않는다. 다행스러운 것은 클라우드 생맥주는 마실만하다는 것이다. 그의 맥주집에선 클라우드 생맥주를 내놓는다.
그의 맥주집에 가면 일단 필스너 우르켈을 하나 마실 생각이다. 또 맥주를 마실 때 평소의 버릇을 버리고 입을 맞춰볼 생각이다. 달콤할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날은 맥주를 마시고 나면 시 한편을 마신 듯한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시인에게 물어볼지도 모른다. 아니, 맥주에 어떻게 시를 섞었어요? 시인이 맥주를 마시면 때로 맥주도 시가 된다.
(2015년 2월 27일)
*맥주집은 그만두었다. 맥주집을 그만 둔 뒤로 윤병무 시인은 다시 출판사에서 책을 펴내는 삶으로 돌아갔다.
**인용한 윤병무의 시는 다음의 시집에 실려있다.
윤병무 시집, 『고단』, 문학과지성사, 2013
2 thoughts on “시인의 맥주 예찬 -윤병무의 시 「맥주」”
시집에 실린 시들 가운데 유독 시선을 끌었을 것 같은 시제군요.^^
제 저렴한 입맛으로는 칭다오 캔도 살작 단맛이 나는 게 무난했던 것 같고,
도쿄 음식점들에서 내는 아사히 나마비루 정도면 캬~ 소리를 내주겠더군요.
시를 읽기 전에 사다먹은 맥주가 필스너 우르켈이라 더욱 시에 눈길이 갔습니다. 현지에서 먹는 생맥주는 맥주맛이라기 보다 거의 꿀맛에 가깝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