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읽어 시에 닿다 —시인 김주대의 그림 한 점

Photo by Kim Dong Won

거실에 시인 김주대의 그림 한 점이 걸렸다. 그림 속의 나무는 곧은 몸을 버리고 몸을 한쪽으로 굽히고 있다. 이런 경우 우리들이 일차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바람많은 산정이지만 나는 바람은 생각지 않기로 했다. 그림의 풍경이 너무 고요했기 때문이다.
시선을 나무 가까이 가져가면 가지끝에서 물이 오른 갓난 잎들을 연두빛의 색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산이 흰색으로 덮였다고 해도 그림의 계절은 겨울이 아니다. 주대 시인은 내게 산의 색이 칠한 색이 아니라 하나도 손대지 않은 색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한지가 원래 갖고 있는 자연그대로의 색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색에도 물들지 않은 색을 대지로 삼아 그림 속의 나무는 자랐다. 다시 말하여 나무는 그 대지를 빨아올려 자신의 자양분으로 섭취해가며 자랐고, 그 점은 나무의 몸에 그대로 남아있다. 세상의 색에 물들지 않은 산의 그 색을 나무 또한 검은 몸의 일부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 몸의 윤곽을 갖기 위해 나무는 검은 색과 타협했다. 삶이란 타협없이는 불가능하다.
나무의 몸은 구불구불하다. 나무의 몸이 누군가에게 가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은 곧게 일직선으로 간 것은 아니다. 몸이 일직선으로 가면 몸이 몸을 찌르는 창이 되기 쉽다. 몸이 구불구불갈 때, 대개의 사람들이 마음의 흔들림을 걱정하나, 그때 오히려 마음은 더 굳어진다. 그렇게 하여 나무의 마음이 몸으로 굳어지면 그렇게 굳어진 마음은 다시는 펴지질 않는다. 마음의 지조가 평생 나무의 것이 된다.
나무가 마음을 준 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 수가 없다. 산정의 나무는 그저 마음의 방향만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그 방향처럼, 우리도 내 몸이 기울여 알려주는 내 마음의 방향을 알려면 나무처럼 산으로 높이 올라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상의 색이 미치지 못하여 색에 물들지 않은 높이로 오르고 나무처럼 그 산의 꼭대기에 서면, 그때 비로소 마음이 우리의 몸을 한쪽으로 굽혀 마음이 가는 방향을 알려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때면 우리 몸의 손끝에서 마음을 좀더 뻗어보기라도 하려는 냥 새순이 돋을지도 모른다.
그림을 보다가 문득 조만간에 사는 곳의 자장을 뿌리칠 적당한 높이의 산을 고르고 나무처럼 구불구불 걸어 정상까지 오른 뒤 내 몸의 방향이 어느 쪽으로 구부러지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러고 나면 그 날 이후로 나는 한쪽으로 휘어진 구부정한 몸으로 남은 여생을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의 날들이 어떤 날들일지는 잘 짐작이 가질 않는다. 다만 희미하게 추측하건데 그런 날들이 오면 맑은 날의 하늘에서 파도 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 내가 파도 소리를 떠올린 것은 그림의 하늘이 하늘이라기보다 바다에 가깝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늘이었다면 푸른 색의 농염이 훨씬 더 고르게 펴져 있어야 했다. 그러나 산과 윤곽을 맞댄 부분의 하늘은 바다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푸른 빛의 농염이 고르질 않았으며, 자꾸만 일렁이는 바다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산위로 담긴 푸른 하늘이 하늘이 아니라 바다와 하늘이 뒤섞인 빛깔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산의 뒤쪽은 바다인 셈이다. 그러나 산의 뒤쪽에 바다가 있다고 해도 산은 바라보고 있는 시선의 높이로 보았을 때 그 바다가 보일리는 없다. 그러니 농염이 고르지 못한 산정의 푸른 빛은 바다는 아니다. 그것은 산정 가까이 올려놓은 바다의 소리, 말하자면 파도 소리이다. 마치 바다는 아마도 내 마음을 전해듣고 달려온 어느 바닷가, 누군가의 마음처럼 제 소리를 산정으로 올렸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그림을 읽자 주대 시인은 “내 시는 눈꼽만큼도 언급하지 않고 오로지 그림만 본 것 같다”며 불만을 표했다. “아주 좋지 못한 자세”라는 언급도 감추어 두질 못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림에 새겨넣은 시에 힐끗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주 짧은 시였다.

그립다는 말은 언어가 아니라 살이다
—김주대, 「지각의 현상학」 전문

입을 빼물고 있는 주대 시인에게 한 마디 했다. 도대체 뭐가 불만이냐. 그림을 읽으면서 시에 가서 닿은 듯한데…
시인은 시를 쓴 뒤에 시를 버려두고 그림의 세상으로 가버렸고, 나는 그림을 읽어 그가 버리고 간 시에 가서 닿았다.
(2015년 4월 28일)

**인용한 김주대의 시는 다음의 시집에 실려있다.
김주대 시집,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 현대시학,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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