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보다 시인이 먼저 오는 경우가 있다.
또 그림보다 화가가 먼저 오는 경우가 있다.
화가 이상열의 경우가 그랬다.
나는 그림 이전에 그를 먼저 만나게 되었으며,
그렇게 그와 인연을 맺고 나서
한참 뒤에야 그의 그림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때가 2004년 8월 14일이었다.
염천의 더위가 세상을 뒤덮고 의기양양 그 기세를 뽐내던 때에
나는 드디어 그의 그림을 보러 인사동을 찾았다.
그의 그림은 인사갤러리의 2층에서 나를 맞아주었다.
그날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실은 전시장에서 보았던 두 명의 여자였다.
그들은 <외도 III>이란 제목의 그림 앞에 서 있었다.
두 명 중 한 명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그림을 올려다보고 있었으며,
다른 한 명은 허리를 절반쯤 숙인 자세로
그림가까이 시선을 밀착시키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여자가
그림으로 손을 뻗었다.
사람들 중에는 아니, 저런 몰지각한 행동이 있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림에 대한 예의를 그림과 멀찌감치 떨어진 거리로 다하려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
알레르기 증상을 갖고 있던 나는
그녀의 손길을 방치한채
계속 그녀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왜 손을 뻗은 것일까.
또 그 옆의 그녀는 왜 그렇게 허리를 숙여 시선을 그림 쪽으로 밀착시켰던 것일까.
이중섭의 <황소>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그림이란 것이 현실의 모사, 즉 현실의 베끼기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날 황소를 본 것이 아니라 황소의 힘을 보았다.
황소를 그리긴 쉽지만 황소의 힘을 그리긴 쉽지 않다.
황소를 그리긴 쉽지만 황소의 뒷굽에서 흙이 밀려날 때
황소의 몸안에서 꿈틀대는
그 뼈와 근육의 용틀임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다.
나는 이중섭의 황소에서 그 힘과 용틀임을 보았다.
혹 그녀는 이상열의 그림에서
파도가 아니라 파도의 손짓을 본 것이 아닐까.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손끝이라도 파도와 맞대려 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녀가 손끝을 뻗을 때,
곁의 그녀도 허리를 숙여 자기도 모르게 그 파도의 자장이 이끄는 대로
시선을 가져간 것이 아닐까.
그녀들은 손길을 거둔 뒤에도
그들의 불편한 자세를 마다않고
그 그림 앞에서 한참 동안을 머물러 있었다.
나는 세상이 예술가들에 대해
좀 특별한 대접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언젠가 <환경과 생명>의 주간으로 있는
장성익의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그의 아내 또한 그림 그리는 사람이다.
그때 거실의 벽에 온통 파란 색으로 칠해진 그림 하나가 걸려있었다.
우리는 한참 동안 그걸 쳐다보다가
바다를 그린 건가봐요라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밑칠을 해놓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건 아직 그림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바탕색을 칠해놓은 상태의 것이었다.
나는 그날, 참 예술가들은 좋기도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화가가 아니었다면 누가 그 밑칠한 그림을 그림이라고 착각하며 시선을 주었을 것인가.
그날 나는 그림을 제대로 볼 줄 모른다는 창피함보다는
내가 그래도 화가를 화가답게 대접했다는 뿌듯함이 더 컸다.
내가 보기에 이상열은 다른 무엇보다 화가이다.
때문에 그를 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그림이 먼저오고,
그 다음에 화가가 오는 일반적 순서를 밟게 되지만
인간적 관계로 그를 먼저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 순서를 반대로 밟아
화가가 먼저오고, 그 다음에 그의 그림이 오는
흔치 않은 경험 세계를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그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그가 예술가라는 것을 자주 잊어버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일상을 가장 가까이서 접하는 주변 사람들은
더더욱 그러한 망각의 위험이 크다.
그의 그림은 거의 못본채
거의 그의 일상만을 접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그를
평범한 일상 속으로 묻어버리기 쉽다.
그것이 못내 안타깝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가 화가임을,
그가 예술가임을 항상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사실 그날, 그녀들이 자리를 비켜준 뒤,
그 그림 앞에선 나는
나도 모르게 손끝을 그림으로 뻗다가
화들짝 놀라 손길을 거두었다.
(화가 이상열은 나보다 연배가 한참 위이다. 당연히 그의 이름 뒤에 선생님의 존칭을 붙여아 하나 그런 존칭이 종종 글의 긴장을 헤치기 때문에 결례를 무릅쓰고 그냥 그의 이름자를 아무 치장없이 날 것 그대로 가져다 썼다. 부디 이해해 주시길.)
5 thoughts on “화가 이상열에 관한 추억”
전시회 일정 잡히면 꼭 알려주세요…^^
두 분 모두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누추한 블로그에 들러주시니 영광입니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항상 건강하시길 빌겠어요.
김동원 님의 글을 읽고 그림보다 탁월한 글솜씨로 인하여 그림의 격이 올라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더욱 글에 걸맞는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노력과 많은 시간을 가지고 몰입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글 속에서 평론가의 예리한 눈과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동원님의 홈피에서 사진작품과 글을 통하여 세상을 보는 남다를 시선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종종 홈피에 들리겠습니다.
조기옥 자매님과 가족 모두가 주님안에서 행복하시기를 원하오며 저에대한 사랑과 관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오감을 다 동원^^해서 느껴보고 싶어요…
그림만 잘 그리시는게 아니고 노래도 어찌나 잘하시는지…
게다가 유머감각까지…ㅎㅎ
화가의 아들로 태어나고 자라서인지… 낯설게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사진찍는 사람들이 좋은 사진을 보면 촬영정보(Exif같은…)을 알고싶어 지듯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좋은 그림을 보면 어떻게 그렸는지 알고싶어 진답니다.
五感을 다 동원해서라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