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2006

올해도 또 한해가 저문다.
어디 저무는 것이 한해 뿐이랴.
하루도 저물고, 일주일도 저문다.
또 매달 그 달의 끝에선 그 달도 저문다.
하지만 역시 저무는 세월의 의미가 가장 남다른 것은 한 해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때쯤 시간의 폭을 길게 잡아 한해를 돌아보곤 한다.
한 달에 한 장씩 사진을 뽑아 나도 올 한해를 돌아보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월 17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 공원)

1
징검다리는 물을 막지 않는다.
바위들이 적당히 사이를 두고 어깨를 걸면
우리들을 등에 업어 물을 건네 주는 징검다리가 된다.
바위와 바위의 사이가 너무 멀어지면
물은 자유롭게 흐를 수 있지만 우리의 걸음이 끊기며
그 사이가 너무 좁으면
우리의 보행은 안전해 지지만 물의 흐름은 막히고 만다.
징검다리는 바위가 물과 우리의 보행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 다리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2월 4일 강원도 태백산)

2
태양은 떠 있다.
태백산 고목의 머리 위로.
찬란하게.
아마도 태양은 똑같이 떠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머리 위로도.
마찬가지로 찬란하게.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3월 23일 서울 천호동 우리 집)

3
마당의 장미는 항상 오뉴월에 활짝 피었다, 그리고 진다.
그렇지만 날씨가 푸근하다 싶으면
늦가을에 앙상한 가지끝에서 고개를 내미는 꽃들이 있다.
그 꽃들은 그 자태 그대로 얼어붙어 겨울을 빨갛게 난다.
꽃은 3월까지도 그대로였다.
떨어진 꽃을 흰 종이 위에 눕혀 나의 모델로 삼았다.
꽃이 나에게 그냥 붉은 색이 아니라
겨울 추위를 이긴 붉은 색을 보여주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4월 15일 서울 남산)

4
가끔 한해의 시작이 그해의 1월 1일이 아니라
봄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1월 1일부터 봄까지의 남아있는 겨울은
새해라기 보다 새해의 준비 기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새해는 실제로는 새로맞는 해가 아니라
새해를 맞기 위한 준비의 시기인 셈이다.
다만 우리는 새해를 맞기 위한 마음의 설레임을 위하여
새해가 오기 한참 전인 그때에 새해의 시작을 둔다.
그리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준비하여
드디어 우리는 봄에 새해를 맞는다.
꽃들과 함께 일제히 일어나서 색색으로 환호하며.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5월 20일 일산 호수공원)

5
나무에겐 잎이 필요하다.
푸른 하늘과 지나는 바람에게 손을 흔들기 위하여.
나뭇가지만으로도 팔을 흔들 순 있으나
가는 나뭇가지는 애처로워보이기 일쑤이다.
그래서 나무에겐 잎이 필요하다.
손을 활짝 펴서 흔들면 반가움이 놀랍게 증폭된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6월 11일 천호동 우리 집)

6
장미는 우리 집 마당에서 두 달여를 머물다 간다.
사실 장미는 여전히 그대로 우리 집 마당에 있지만
꽃이 지면 장미는 간 것이다.
그러므로 장미는 꽃으로 왔다,
꽃을 거두면서 우리 곁을 떠난다.
꽃이 제 자리에 붙박혀 있어 꼼짝을 못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게 꽃으로 왔다 꽃을 거두며 우리 곁을 떠난다.
꽃들은 그렇게 왔다 간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7월 14일 변산반도의 곰소항)

7
내가 올해
티끌하나 섞이지 않은 듯한 희디힌 구름과 푸른 하늘을 본 것은
단 두 번이었다.
두 번 모두 그날 아침은 잔뜩 흐려있었다.
맑은 하늘과 솜털같은 흰구름은 그렇게 잠깐 왔다가 갔다.
그러나 나는 그 이틀로 한해를 살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8월 18일 서울 고덕동 이마트)

8
왼쪽은 나의 그녀이다.
오른쪽 그녀의 이름은 이희아이다.
오른쪽의 그녀는 두 손가락의 피아니스트란 작위를 갖고 있다.
근처의 할인점에 들렀다가
우리는 식사를 하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사진 찍기를 청했더니 그녀가 응해주었다.
우리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스타이기 때문에.
스타와 사진을 찍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9월 7일 여수 돌산도)

9
바다는 푸르다.
하늘도 푸르다.
그곳에 가면 우리도 그 색에 물든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0월 17일 설악산 소청봉에서 바라본 봉정암 방향의 풍경)

10
나는 산을 내려가는 내내 산자락에 걸린 구름이 될 거다.
나는 새처럼 훌쩍 산을 넘어가지 않을 거다.
구름처럼 천천히 산을 쓰다듬으며 산을 내려갈 거다.
산을 오르고 내려가는 동안,
나는 내내 구름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1월 9일 양수리)

11
요즘은 강물도 잠시잠시 쉬었다 간다.
청평에서도 쉬고, 팔당에서도 쉰다.
모두 댐이 있는 곳이다.
사람들이 강물이 쉬어가라고 댐을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강물은 사람들이 댐을 막아 갈 길을 방해하자
성깔을 부리기 보다 그냥 그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쉬면서
그곳을 잠시간의 휴식처로 삼았다.
나는 양수리에 가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춘 강물과
도란도란 얘기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2월 9일 강원도 인제의 미시령 옛길)

12
나뭇잎은 눈이 좋았다.
딱딱한 길위에 내려앉으면 나뭇잎은 항상 걷도는 삶이 되었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나뭇잎의 자리는 위태위태했으며,
짓궂은 바람을 만나면 이리저리 쉬임없이 길을 구르며
하루해를 다 보내야 했다.
바람이 뒤흔들 수 없는 듬직한 무게를 가진 것들은 길을 좋아했지만
그 알량한 물기마저 모두 털어낸 뒤 몸이 바싹 말라
가벼워질대로 가벼워진 나뭇잎에겐
그저 옅은 바람에도 걷돌 수밖에 없는 딱딱한 길이 싫었다.
눈은 그와 달랐다.
사람들은 눈이 보기와 달리 아주 쌀쌀하여
솟는 냉기가 보통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 품에 기대고 따뜻한 체온을 보태면
눈은 스르르 녹아 그 품을 열고 나뭇잎을 받아 주었다.
하루가 지나면 눈의 가슴은 또 조금 더 열린다.
사람들 얘기와 달리
눈의 가슴은 사실은 나뭇잎의 체온으로도 충분히 녹일 수 있을만큼 따뜻했다.
그 가슴에 누워 정을 붙이면
그 가슴에 어느 새 삶의 둥지가 생겼다.
나뭇잎은 그래서 눈이 좋았다.
자기 체온으로 녹이며 삶의 둥지를 틀 수 있는 눈의 가슴이 좋았다.

9 thoughts on “Photo 2006

  1. 하루를 한주를 한달을 그리고 한해를 마감하듯 한생을 마감할 여유가 있는 마지막이 과연 행운일까요 아니면… 불안일까요…

  2. 어느덧 한해가 저물고 새해가 오는군요.
    올해 제전시회에 좋으글로 평론하여주셔서
    항시 가슴속에 감사함을 갖고 삽니다.
    내년에는 글에 걸맞는 좋은그림 마니그릴려고 하는디… …
    동원님도 새해에도 사진 마니 마니 찍으시고 건강하세요^.^

  3. 그 유명한 피아니스트 희아양이랑 사진도 찍으셨군요?^^
    참 대단한 엄마에 대단한 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들고.
    역시 훌륭한 부모 밑에서 훌륭한 자녀가 자라는걸까.^^
     
    올해는 참 잘 못살았던 해였다고 생각이 되서
    내년엔 착한 며느리,좋은 아내,좋은 엄마,행복한 나.
    뭐 그렇게 살아봐야지 작정하고 있어요.^^

    1. 바로 근처의 동네에 산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직접 만나보기는 처음이예요.
      스타를 보니까 가슴이 두근두근했는데 어찌나 인기가 많은지 식사하는데 많은 훼방을 받더군요. 우리도 훼방꾼 중의 하나가 되어 버렸지만요.

      저는 내년에는 일좀 많이하고 사진도 좀 더 많이 찍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모두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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