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2월 9일 강원도 인제의 미시령 옛길에서

난 나뭇잎을 다 떨어뜨리고 나면
종종 겨울나무의 나뭇가지가 나무의 뿌리로 보이곤 했다.
나에게 있어 나무는 그렇게
겨울 동안 뿌리를 하늘로 이고 그 계절을 넘긴다.
여름 한철엔 땅 속 뿌리가 물을 호흡했을 것이며,
또 푸른 잎은 태양이 흩뿌리는 그 풍성한 빛을 마음껏 호흡했을 것이다.
그러나 겨울이 오면 그 모든 호흡이 멎는다.
나도 잠시 호흡을 멈추어본다.
채 10초를 넘기기가 어렵다.
호흡을 멈추고 겨울을 넘겨야 하는 나무에게
한계절을 내내 멈추어야 하는 그 긴 시간은 더더욱 넘기 힘든 시간일 것이다.
호흡없이 어떻게 그 긴 시간을 넘긴단 말인가.
그래, 살아가기 위해선 호흡이 필요하다.
아무리 짧아도 겨울은 서너 달은 갈 것이다.
그 긴 시간을 호흡없이 살아갈 순 없다.
나무가 아무리 끈기가 있다고 해도 그렇게 오랜 시간을 호흡없이 견딜 순 없다.
나무는 그때부터 가지를 뿌리로 삼는다.
그러면 푸른 하늘은 호수나 연못이 된다.
가끔 구름이 하늘을 모두 잿빛으로 뒤덮고
그 일부를 조금 열어 푸른 하늘의 자리를 옹색하게 내주는 날이면
그 한 조각의 푸른 하늘은 모양마저 호수나 연못을 닮는다.
그럼 나무는 가지를 뿌리처럼 뻗어 그 푸른 하늘로 들이밀고
마치 여름의 한창 시절 물을 호흡할 때처럼 하늘을 마음껏 호흡한다.
생각해보면 그게 공연한 상상은 아니다.
난 산을 오를 때면 내가 다리로 호흡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는 그냥 자전거를 타고 있다기보다
자전거를 통해 호흡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러니 나무의 호흡이 뿌리와 잎에 한정될 이유는 없다.
난 가끔 숨을 쉬면서도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카메라를 둘러메고 산에 가거나
자전거에 몸을 싣고 한강변을 달리곤 한다.
그러면 가슴이 뚫린다.
나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멈춘 호흡에 짓눌려 겨울을 몸부림치며 넘기는게 아니라
사실은 물구나무서서 뿌리를 하늘로 들고
하늘을 마음껏 호흡하고 있을 것이다.
겨울나무 사이로 산을 오를 때,
내가 답답하지 않은 것도, 나무들의 그 푸른 겨울 호흡 때문일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2월 9일 강원도 인제의 미시령 옛길에서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