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 그 엷은 장벽

Photo by Kim Dong Won

그 성긴 틈새를 생각하면 철조망은 분명 장벽이 아니다.
우리의 시선은 그 틈새를 헤집고,
그 건너의 풍경을 얼마든지 호흡할 수 있다.
그런데도 철조망은 우리들을 답답하게 한다.
그리고 그렇게 답답해 하던 우리들 중의 누군가가 철조망 한가운데의 틈새를 벌렸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무엇이 조금 더 보였을까.
그럴리가 없다.
그러나 그렇게 벌어진 철조망의 틈새는 그때부터 숨통이 된다.
가운데의 틈새를 벌려 조금더 크기가 큰 구멍을 하나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숨통이 트인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한다.
왜일까.
철조망은 벽돌담과는 성격이 다르다.
벽돌담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막으면서 시야도 까맣게 막아버리는 이중의 차단물이다.
그러나 철조망은 그런 벽돌담과 달리 보여주면서 걸음만 막는다.
벽돌담 앞에선 눈도 갈 수 없고, 다리도 갈 수 없다.
그러나 철조망 앞에선 눈은 앞으로 가는데
발목은 이곳에 붙잡힌다.
철조망이 앞을 막을 때 답답한 것은 그러므로
시선은 이미 앞으로 달려나갔으나
발걸음이 그 뒤를 따르지 못하고 이곳에 묶여 있을 때,
우리의 발목이 겪게 되는 호흡 곤란에 다름 아니다.
시야가 막히고, 발걸음이 막힐 때,
마음에서 그 너머에 대한 궁금증을 거두면
시야와 발걸음이 모두 손쉽게 그곳에서 돌아선다.
둘은 같은 답답함을 앓으며, 그래서 포기도 쉽게 합의가 된다.
그러나 철조망 앞에선 이미 앞으로 벗어난 시선과
그 뒤를 따르지 못하는 발의 답답함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마음 속에서 눈의 느낌과 발의 느낌이 션명하게 대립된다.
그 대립이 선명할수록
그 앞에서 자꾸 서성이게 된다.
또 어떻게 보면 벽돌담의 너머를 궁굼해 할 때보다 더욱 답답해진다.
바로 그 답답함 때문에 누군가 그것을 견디다 못해
철조망의 한가운데를 조금이라도 더 크게 벌려놓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

철조망의 아래쪽엔 사람들이 코스모스를 심어 놓았다.
코스모스는 저곳에 뿌리를 두었는데 이곳으로 머리를 내민다.
철조망이 없었다면
바람이 그 가늘고 긴 허리를 휘감고 지나갈 때마다
한바탕 몸을 흔들며
요란스럽게 가을을 환영하는 몸짓으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꽃의 자리가 철조망의 아래쪽이 된 운명 때문에
아무 것도 없는 이곳에 대한 궁금증으로
안간힘을 쓰며 머리를 내밀고
이곳을 바라보는 것이 꽃의 운명이 되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