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과 신발, 맨몸과 옷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9월 16일 올림픽공원내 페이퍼테이너 뮤지엄 전시회에서


오늘 잡지를 뒤적이고 있었다.
“The New Nude”라는 잡지였다.
누드 사진을 전문으로 다루고 있는 사진 잡지이다.
사진을 훑어가던 내 눈에 글귀 하나가 들어왔다.

“What spirit is so empty and blind, that it cannot recognize the fact that the foot is more noble than the shoe, and skin more beautiful than the garment with which it is clothed?”
— Michelangelo

“만약 영혼이 없고 또 그 영혼에 눈이 없다면, 발이 신발보다 귀하고, 맨몸이 그 위에 걸치고 있는 옷보다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 수 없지 않겠는가?”
— 미켈란젤로

말을 쉽게 풀면
우리에게 영혼이 있고 마음의 눈이 있어
발이 신발보다 귀하고
맨몸이 그 위에 걸친 옷보다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그의 말엔 동의가 가지만
맨몸이 눈앞에 있을 때,
우리가 과연 그 아름다움에 눈뜰까 싶다.
누드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사실 내 눈의 9할은 음탕한 욕정으로 채워진다.
내 몸의 반응으로 보건데 그러하다.
욕정이 9할이니 맨몸 앞에서 난 영혼의 눈은 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미켈란젤로는 어땠을까?
로뎅이나 피카소를 생각하면,
그도 같은 계열이니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내가 보기에 맨몸의 아름다움은
옷을 벗었을 때, 옷과 비교되어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옷을 벗으면 그녀가 입었던 옷은 생각도 나지 않는다.
난 9할의 욕정으로 그녀와 뒹굴지만
가끔 그 9할의 욕정을 넘어가
1할의 영혼으로 눈 뜰 때가 있다.
내가 보기에 벗은 몸의 아름다움은 바로 그때 눈에 들어온다.
누드 사진을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내 눈의 9할은 욕정으로 가득찬다.
하지만 가끔 1할이 그 욕정을 넘어간다.
내게 있어 영혼의 문은 항상 몸의 뒤에서 열린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9월 16일 올림픽공원내 페이퍼테이너 뮤지엄 전시회에서

2 thoughts on “발과 신발, 맨몸과 옷

  1. 여자의 섹슈얼리티에서는 친밀한 관계 맺기가 대단히 중요하다. 여자들의 경우 섹스의 중요한 목표는 친밀감을 얻는 것이다. 여자들에게 가장 기분 좋은 섹스는 서로 충실한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남자들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 UCLA대학교 심리학과 앤 페플로 교수(남자아이, 여자아이 중에서)

    1. 그게 여자와 남자의 차이일 수도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 남자에게 성이 동물적 본능인가 하는 것도 좀 헷갈려. 동물적 본능이면 여자를 가리지 말아야 하는데 그런 것도 아니거든. 성은 그렇게 쉽게 규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아.
      다만 미켈란젤로의 얘기는 벗은 몸의 미적 측면을 영혼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 격상하면서 그 전에 몸에 먼저 다가서는 욕망의 눈을 등한시 한 것 같아서 한마디 적어 본 거야. 그 욕망의 끌림만 있으면 그건 큰 문제지만 내가 보기엔 미적 차원이란 실제로는 욕망의 끌림 뒤에서 열리는 것 같아. 한마디로 몸의 끌림 뒤에 예술이 열린다는 거지. 이건 내 견해만은 아니고 사실 이를 자기 시의 전체적인 주제로 삼은 시인도 있었어. 그의 경우 예술이란 영혼의 눈으로 본 세계를 기록하는게 아니라 몸의 반응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게 되지. 곰곰히 생각해 봐야 겠지만 욕망과 영혼은 그 우열을 논하기가 어려운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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