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에 올 때는 쑹산공항에서 비행기를 내렸다. 다시 돌아갈 때도 우리의 비행기편은 쑹산공항에서 이륙할 예정이었다. 타이베이로 오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또다른 공항인 타오위안 공항과 달리 쑹산공항은 도심에서 가까워 공항까지 시간이 별로 걸리질 않는다. 타오위안 공항으로 가서 돌아가야 하는 딸은 우리보다 먼저 떠났다. 나는 우리도 알찌감치 공항에 가서 발권한 뒤에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자고 했다. 그녀는 시간 여유가 있으니 우리는 숙소 근처의 시먼딩 거리를 캐리어를 끌고 여행자 모드를 티내며 돌아다니다 가자고 했다. 그녀의 말대로 캐리어를 끌고 거리로 나섰지만 이게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어서 나는 도중에 내가 캐리어를 지키며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녀 혼자 두 시간 정도 돌아보고 오라고 했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우리가 묵었던 써니 호텔이다. 영어로는 써니 호텔인데 한자로는 열래여관(悦来旅馆)이라 되어 있었다. 3성급 호텔이며 호텔을 잡은 것은 딸이었다. 딸은 우리의 여행 기간 동안 객실이 남아 있는 호텔이 거의 없어 겨우 잡았다고 했다. 패밀리룸이 있어 한 객실에서 모두가 함께 지낼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서비스는 좋았다. 뭐든 얘기를 하면 해결이 되었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거리로 나선 우리는 목면나무 아래서 붉은 꽃들을 올려다 보며 한참 시간을 보냈다. 대만에 와서 처음보는 꽃은 꽃을 볼 때마다 우리를 그 곁에 오래도록 붙잡아 두었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주도로를 벗어나 이면으로 들어가자 음식점들이 눈에 띈다. 간판에는 한자로 건굉우육면(建宏牛肉麵), 그러니까 지엔홍우육면(Jianhong Beef Noodles)이라 되어 있었다. 밤에는 이곳의 거리로 들어가는 입구에 내 걸린 등에 불이 들어오곤 했었다. 다른 곳에 비해 상당히 값이 저렴하다고 한다. 이용해 보지는 못했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그녀는 시먼딩 거리로 가고 나는 캐리어를 지키며 거리 뒤쪽 푸싱초등학교 근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거리의 가로수가 모두 푸른 잎들이 무성했다. 그 싱그러움 속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대개 나무의 새둥지는 한국이라면 까치집일 가능성이 큰데 나중에 드나드는 것을 보니 까치는 아니었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초록이 빛나는 아침이다. 우리에게도 4월말이면 나무가 있는 곳에선 어디에서나 이러한 아침이 보장되지만 대만은 이제 3월말이다. 3월말의 시간과 결합되면 한국에선 초록을 찾아보기 어렵다. 3월말의 시간에 지천인 초록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내겐 신비로운 일이었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주도로의 버스 정류장과 달리 이면 도로의 버스 정류장은 정말 버스가 다니는 것인지를 의심스럽게 만들곤 했다. 거의 버스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행자로 보이는 행색의 사람들이 정류장 근처의 의자에 앉아 끈질기게 버스를 기다렸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이면도로의 한가한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 사람들은 모두 기다림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버스가 정말 왔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빈 의자들과 마주하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사람이 앉아 있을 때가 더 괜찮았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그녀가 예상보다 일찍 돌아왔다. 대만은 너무 좋다며 다시 오고 싶다고 했다. 사진으로 남기기에 좋은 풍경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사진을 찍는데 제지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했다. 우리는 그래도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처음보는 과일을 봤다. 동과(冬瓜)라고 불리는 과일인데 영어 이름은 윈터 멜론이라 한다. 주로 음료나 고급 요리 재료로 인기 있는 식재료라 했다. 먹어보진 못했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쑹산공항까지 무사히 와서 발권했다. 올 때 지하철을 바꿔타야 했는데 그녀가 여기가 아니라 맞은 편이 아니냐고 했다. 역에 서 있던 역무원에게 나는 쑹산공항으로 가려 한다고 했더니 그가 라잇 히얼, 투 스탑(Right here, two stop)이라 했다. 바로 여기서 타면 되며 두 정거장 가면 된다는 소리였다. 타이베이가 어디를 가나 짧게 주고 받는 영어로 서로 잘 통하는 곳이었다. 공항에선 발권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었다. 표를 따로 받지는 않고 그냥 핸드폰으로 발권된 표를 확인만 했다. 핸드폰으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시대였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그녀가 동전을 공항에서 다 쓰고 가자며 있는 동전을 모두 털어 음식을 하나 샀다. 한 그릇 사서 둘이 나눠 먹었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비행기는 많이 연착되었다. 40분 가량을 기다린 것 같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오후 비행기로 타이페이의 쑹산공항을 떠났다. 다른 무엇보다 사람들이 매우 친절한 도시였다. 짧게 영어를 나누며 내가 처한 당혹감을 말할 수 있었고 그러면 역까지 나를 데려다주거나 경찰이 경찰차에 태워 버스 터미널로 데려다 주었다. 음식점도 친절해서 음식에 곁들여져 나오는 차를 내가 원하는 맥주로 바꿔 주면서도 따로 돈을 더 받지는 않았다. 주로 타이베이 도시를 돌아다녔지만 몇 차례는 도시를 벗어나 인천이나 춘천쯤의 거리로 짐작되는 곳으로 여행했다. 낡은 건물들이 아주 많았으며 그런 낡은 것을 낡은 대로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이 가장 좋았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비행기가 활주로를 질주하여 이륙하기 직전, 사람들이 잘가라고 손흔들어 주었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비행기는 하늘로 날아오르고 며칠 지냈던 나라를 떠난다. 마음은 며칠 더 있고 싶었지만 비행기는 그런 마음을 나몰라라 훌쩍 떠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속도를 가장 큰 미덕으로 치는 현대적인 것들은 며칠 간 나눈 마음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고 이곳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주저함이 있었다면 아마도 비행기는 타이베이 하늘을 한바퀴 정도 돌고 한국으로 향했을 것이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지상은 점점 멀어진다. 찾아온 시기가 달랐다면 내가 갖게 된 인상도 달랐을지 모른다. 여하튼 3월의 대만은 아직 오지 않은 초록의 시절이 이미 와서 우리 눈을 채워주는 곳이었다. 아직 한국의 논들이 겨울잠에 묻혀 있는 시기에 논은 모내기를 마치고 한뼘 정도 자란 모로 푸르게 일렁이고 있었다. 4월에야 올 세상이 비행기를 타면 두 시간 거리의 3월에 와 있었다. 비행기는 다시 3월의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