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겨울엔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1월 30일 강원도 용포리에서

물은 겨울엔 납짝 엎드린다.
날씨가 추워지면 냇물에 얼음이 잡히고,
그럼 고개를 들곤 길을 갈 수가 없다.
겨울엔 고개를 들면 얼음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이마를 찢고 만다.
얼음의 위쪽으로 길을 모색하다간
그 등에 올라타는 순간 그대로 얼어붙어 버린다.
그러면 얼음이 풀릴 때까지 얼음의 등에 업혀
그대로 겨울잠을 잘 수밖에 없다.
그 등은 냉기가 서늘하여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지 않지만
봄이 올 때까지 잠을 청해두지 않을 수 없는게 얼음의 등이다.
가끔 눈이 내린 날,
얼음의 등에선 눈이 하얀 잠을 자기도 한다.
눈은 서늘한 곳을 좋아하여 그곳에서도 잠을 잘잔다.
하지만 서해나 동해가 궁금하여 길을 나선 물이
얼음의 위쪽으로 길을 잡았다가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얼어붙고 만다.
그래서 끊임없이 하류를 궁금해 하며 아래쪽으로 흘러가고 싶은 물은
자세를 낮추고 얼음 밑으로 납짝 엎드려야 한다.
그럼 비록 코를 막고 잠시 숨을 참아야 하지만
얼음의 아래쪽으로 계속 흘러갈 수 있다.
그렇게 가다보면
더이상 막힌 숨을 참을 수 없어 머리가 다 띵할 즈음
구원처럼 갈라진 얼음의 틈새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틈새로 빠져나가면
푸~후,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다 쏟아내고 난 뒤,
다시 졸졸 거리는 노랫소리를 흥얼거리며 길을 갈 수 있다.
겨울엔 날이 추워 냇물이 얼어붙지만
자세를 낮추고 납짝 엎드리면
여전히 동해나 서해의 어딘가로 노래를 부르며 흘러갈 수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1월 30일 강원도 진동리에서

4 thoughts on “물은 겨울엔

  1. 저런 얼음을 보면 시리도록 차가울것 같으면서도 아련한 그리움같은게 밀려와요.
    아마도 그건 어릴때 동네 냇가의 얼음이 떠오르고 그곳을 건너 논에서 썰매를 타거나
    추워지면 나뭇가지들을 여기저기에서 주워다 불장난을 즐기던 때가 떠올라서 그런가봐요.자꾸 어릴때 기억에 집착하는거보면 제가 늙었나하는 생각도 드네요.^^

    1. 저는 시골서 20년을 살다가 서울로 왔는 걸요.
      그래서 그때 추억이 아주 많아요.
      겨울에 물에 풍덩 빠져서 엄마한테 혼날까봐 강변에 불피워놓고 젖은 옷 말리던 생각도 나고.
      한가한 날 고향에 가서 하루 종일 여기저기 거닐다 오고 싶어요.
      아님 예전에 카메라 없던 시절에 여행갔던 곳들, 부산 태종대, 완도, 제주도 성산, 계룡산 등등의 곳들을 카메라들고 다시 한번 가보고 싶어요.

    1. 걱정하지마.
      얼음이 다 얼어붙어 있는 건 아니구
      중간중간 숨구멍이 뚫려있어.
      내가 시골서 자라서 잘 알아.
      그리고 어떤 고래는 한번 숨쉬고 물속으로 최고 두 시간 정도 잠수하는 걸로 알고 있어.
      물도 아마 고래의 일종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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