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한가운데 7일장이 서다 – 서울 천호동 우성아파트

아무래도 아파트의 느낌은 현대적이다.
그곳에선 도시적 세련미가 물씬 풍긴다.
그 아파트가 고층 아파트이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에 비하면 5일장이나 7일장과 같은 우리의 장터는 그 느낌이 전통적이다.
그곳엔 시골스런 인간미가 넘친다.
그 둘이 일주일에 한번씩 나란히 함께 자리를 한다.
내가 사는 곳에서 지척의 거리에 있는
서울 천호동의 우성아파트도 그런 곳의 하나이다.
매우 토요일이면 아파트의 한가운데 시장이 둥지를 틀고 좌판을 마련한다.
토요일인 바로 오늘 9월 10일에도 그 둘이 함께 하는 시간은 예외가 없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동과 동 사이를 오가는 길목에 시장이 자리를 잡는다.
아파트가 내려다보는 아스팔트길엔 일주일 내내
무심히 오가는 자동차가 그곳의 주인이었지만
토요일이 되면 이제 그곳에서 시장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삶이 피어오른다.
오늘따라 하늘이 유난히 맑고, 구름도 싱그럽다.
장사가 잘 되려나 보다.

Photo by Kim Dong Won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이엔
물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장은 세련미는 없지만
대신 인간미를 갖추고 있다.
사람들이 물건을 사이에 놓고 주고받는 대화를 듣다보면
그 사이에 삶의 훈기가 가득한 느낌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어물전이다.
파는 아저씨와 사는 사람들 사이에 싱싱한 바다가 한가득 펼쳐졌다.
아저씨가 손에 바다를 집어든다.

Photo by Kim Dong Won

아저씨가 생선을 다듬을 때
젊은 아낙은 머리를 더 잘라내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머리를 요만큼 넣어야 맛있다고 하셨다.
아저씨는 그냥 생선을 다듬어주는 것이 아니라
맛까지 챙겨주셨다.

Photo by Kim Dong Won

한쪽 곁의 포장마차에선 부부가 손님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사람들의 손짓에 나서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은행잎이 노랗게 익어가는 가을이다.
포장마차도 그 가을색으로 치장을 했다.
포장마차의 부부는 오늘 가을을 팔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가을의 맛에 취한다.

Photo by Kim Dong Won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아이는
시장에서 아주머니가 챙겨준 돈까스를 먹는다.
아주머니의 돈까스에선 엄마의 사랑이 녹아난다.

Photo by Kim Dong Won

더덕은 강원도에서부터 이곳까지 사람들을 찾아왔다.
오늘 이 더덕을 사간 사람은 더덕을 먹는 것이 아니라
강원도의 힘을 먹는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아저씨는 이렇게 외쳤다.
–자, 살아 숨쉬는 오이요. 살아숨쉬는 오이!
오이를 건네든 아주머니는 오이를 살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이구, 싱싱하기도 해라. 정말 오이가 살아 숨쉬네.
신이난 아저씨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그럼요. 아직 꼬다리도 떨어지질 않았잖아요. 오늘 새벽에 따서 갖고 나온 거예요.
오늘 이곳에서 오이를 사간 사람들은 그냥 오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오이를 호흡하는 거다.

Photo by Kim Dong Won

잠시 손님이 뜸한 사이 담배 한대를 피워문다.
손님이 오면 신나고,
잠깐잠깐의 휴식에 한대 피워무는 담배는 또 그것대로 꿀맛이다.

Photo by Kim Dong Won

할머니에게 시장은 파는 곳이자 또 일하는 곳이다.
시간이 나면 배추를 팔던 그 자리에서 배추를 다듬으신다.
할머니의 삶은 평생 저렇듯 부지런했을 것이다.
그 부지런한 할머니가 아무 걱정없이 행복하게 사셔야
그것이 제대로된 세상일 것이다.
세상의 꿈이 저 할머니의 행복에 맞추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Photo by Kim Dong Won

우리의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팔고 사는 거래의 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도란도란 얘기를 주고 받으며 정을 나누는 곳이다.
파를 다듬는 두 할머니의 사이에서 따뜻하게 정이 피어오른다.
갑자기 아파트 전체에 인간의 온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2 thoughts on “아파트의 한가운데 7일장이 서다 – 서울 천호동 우성아파트

    1. 심지어 강원도 산골에 가도 그곳에서 파는 더덕이 중국산이란 얘기가 있을 정도니까요.
      중국 농산물 교역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이 일본에 이어 2위더군요.
      어제는 아는 사람들과 근처의 산을 등반하고 산아래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먹었는데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우리나라 농산물만으로 그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무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다 들더군요.
      저는 이번주 수요일쯤 봉평이나 한번 가볼까 생각 중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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