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원 선생님이
강화에 있는 전등사 내의 한 나무 밑에 묻히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늘(3월 12일), 그곳에 가서 나무가 된 선생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전등사는 모두 네 곳에 문이 있습니다.
절을 성이 둘러싸고 있고
동서남북으로 각각 하나씩의 문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동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성으로 들어간 길은
양쪽으로 나무들을 두고
절의 경내로 이어졌습니다.
어느 문으로 들어가나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께 가는 길은 어느 길이나 나무들과 함께 걸어가는 길입니다.
하늘을 올려다 보았더니 아주 맑더군요.
구름이 그 하늘을 떠가고 있었습니다.
한켠에선 나무가 길게 목을 빼고 있었죠.
선생님의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려면
절의 경내에서 서문쪽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누군가 방향을 안내해 놓았습니다.
선생님의 이름 석자가 반가웠습니다.
오규원 선생님의 나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처럼 호리호리하고 긴 나무였습니다.
키가 커서 매일 지는 해가
가지 끝에 걸릴 것 같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은 위쪽의 가지 하나로 해를 받아선
그 옆의 나무에게 슬쩍 건네주시겠지요.
올려다보니
가지 사이사이로 하늘이 쏟아집니다.
때로 그 사이로 빗방울도 내리고,
밤이면 별빛이나 달빛도 쏟아지겠지요.
이젠 서울에서 별이나 달을 올려다 볼 때면
그 별과 달을 함께 올려다보고 있을 선생님의 나무가 생각날 것 같습니다.
시인 오규원 나무입니다.
나무는 원래 이름이 없었는데
선생님이 세상을 뜨자 선생님의 이름 석자에
자신의 몸을 내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무는 그때부터 이름을 갖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시인 오규원 나무가 되었습니다.
들여다보니 선생님이 세상에 머문 것은
1941년 12월 29일(음)에서 2007년 2월 2일까지 였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 시간의 경계를 너머 여전히 우리곁에 계십니다.
선생님 곁에 한참 머물다
서문쪽으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그리곤 북문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나무들이 하늘을 가운데 두고 둥글게 모여 있었습니다.
지나던 구름 하나가 걸음을 멈추고,
나무들의 등뒤에서 슬쩍 아래쪽을 엿보았습니다.
구름이 엿본 아래쪽엔 오늘 제가 있었습니다.
길은 걷기에 좋았고,
그래서 발밑에 밟히는 기분좋은 감촉의 흙길을 즐기면서
잠시 길을 따라 산위로 걸었습니다.
산위에서 내려오니
이제 시인 오규원 나무가 저만치서도 눈에 익습니다.
보통은 세상뜨면 둥근 봉분으로 남는데
선생님은 숲으로 가 나무로 남으셨습니다.
오규원 선생님, 오늘은 이만 가볼께요.
선생님 생각나면 또 올께요.
시인 오규원 나무가 길게 그림자를 펼쳐
가는 길을 배웅해 주었습니다.
11 thoughts on “시인 오규원 나무를 보고 오다”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막걸리 한잔 올리러 가야하는데….가까이 계시는 함민복 선배님이 자주 찾아뵐 듯 하네요…깊은산 선배님 와이프가 저랑 동기인데 ^^;; 아..제 와이프두 94학번이고…반갑습니다..선배님~
녜, 반가워요.
함민복 시인은 인사동에서 딱한번 만난 적이 있었죠. 참 여린 사람이더군요. 강화갈 때마다 들여다 보기는 하는데 한번도 집에 있질 않았어요. 하긴 뭐 제가 강화도 가는게 일년에 두세 차례니까요.
다음에 선생님 뵈러 갈 때는 저는 서문으로 갈까 생각 중이예요. 그렇게 가면 좀 오래 걸어야 할 것 같기는 한데 그 길은 자연속에 완전히 묻혀 있어 아주 좋더라구요.
저도 지난 8월초 휴가 때 다녀왔습니다.
92학번인 저와 94학번인 와이프, 그리고 92와 94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과 함께 스승의 그늘 아래서 한참을 머물다 왔습니다.
막걸리도 한잔 올리고 담배도 한대 불붙여 놓아주었습니다. 누군가 아주 빨간 열매가 맺힌 꽃을 한쪽가에 심어놓았더군요. 가슴이 텅 비어졌습니다. 눈시울을 붉히는 아내를 가만히 안아주었습니다. 선생님의 어느 시구절처럼 사람을 찾아오는 길하나 지병처럼 갈줄을 모르고 그 길로 아주 천천히 걸어 내려왔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시만으로도 많이 행복했었는데… 선생님과 함께 했던 기억까지 있다면 더 큰 행복일 듯 싶어요. 저도 힘들 때면 찾아가서 또 쉬었다 오려구요.
선생님을 이렇게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다행이고 행복합니다.
이스트맨님…
혹시, 오규원 시인님이 ‘한 잎의 여자’라는 시를 쓰지 않으셨나요?
졸업하기전에 독일에 먼저 와있던 여자친구에게 읽어주었던 적이 있는 시인데…
나무가 되셨군요.
강화도는 한번도 안 가보았는데, 후에 한번 가 봐야겠네요.
바로 그 시인이예요.
제가 무척 좋아했죠.
돌아가시고 나서 이번 달 시잡지들이 거의 모두 특집을 다루었더군요. 거기서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많은 일화들을 접하고 나니까 오규원 선생님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강화에는 오규원 선생님 제자도 한 사람 살고 있는데 이번에 얼굴좀 볼까하고 들여다 봤는데 갈 때마다 그랬듯이 이번에도 여전히 없어서 그냥 forest랑 놀다가 왔어요.
나무와 하나가 되셨군요.
시인님덕분에 특별한 나무가 되어서인지 주변나무보다 훨씬 멋지게보여요.
가을동화라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죽으면 나무가 되고싶다는 대사가 있었어요.
한번 뿌리내리면 떠나지않고 누구와도 헤어지지 않는 나무가 되고싶다던..
근데 나무에 못을 박고 명패를 단건 무지 거슬려요.
명패를 못으로 박아놓은 것은 저도 좀 그랬긴 했는데
일단 명패가 없으면 찾기가 힘들 것 같아요.
명패도 하도 작아서 멀리선 보이지도 않아요.
그리고 나무 껍질이 하도 두꺼워서
못은 나무에 전혀 영향이 없을 것 같더라구요.
그 왜 소나무 껍질 무지 두꺼운, 그런 걸 생각하시면 이해가 되실 듯.
작은 못으로 살짝 박아놓은 것 같았어요.
시인 오규원 나무… 제목 참 좋다.
수목장… 참 소박하고 깔끔하니 딱 오규원 선생님다우시더라.
우리도 나중에 수목장하면 좋겠더라.
너무 시인답다는 생각이 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