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겨울잠 – 강화 전등사에서

분명 가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가보니 처음인 곳이 있습니다.
3월 12일, 바로 어제 갔었던 강화의 전등사가 그랬습니다.
차를 주차장에 세워두고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잠시 올라갔던 기억이 분명히 있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생전 처음보는 낯선 곳이었습니다.
기억이 어떻게 뒤섞여
전등사란 이름의 절이 가본 곳으로
머리 속에 남게 되었는지는 알듯말듯 합니다.
아마도 전등사에 대한 그 한번의 기억은
밤에 그곳에 도착하여 잠깐 길을 따라 올라가다
울창한 숲의 어둠 때문에 곧바로 내려오면서 얻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거나 전등사에 대한 기억은 이번에 처음으로 쌓게 되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전등사는 정족산성이라는 성안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동문으로 들어가 서문까지 걸어갔습니다.
성문 앞에 서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성문 앞에선 길이 열십자로 교차를 합니다.
하지만 하나의 길은 성안으로 흐르고,
그와 열십자로 교차하는 또 하나의 길은 성위로 흐르기 때문에
교차를 하면서도 서로 만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오래된 절의 특징이라면
크고 우람한 나무들이 아주 많다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키가 하도 커서 지붕 위로 넉넉하게 머리를 내밀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혹시 저 나무들이
키를 키우기 위해 발돋움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뒤로 돌아가 확인해 보고 싶기도 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이제 봄이 눈앞으로 다가와서 그런가요.
나무가 용트림을 하거나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것 같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숲에 나무들이 자욱합니다.
아직은 여전히 겨울잠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무들은 겨울잠을 자는 동안 코를 골지 않습니다.
그래서 겨울 숲길은 나무들이 잠을 자고 있어도 아주 조용하기만 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렇다고 아무 소리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겨울엔 숲이 몸을 뒤척이면
그때마다 바스락대는 소리가 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생강나무꽃

볕이 잘드는 곳에선
무슨 꽃인가가 눈을 비비며
겨울잠을 털어내려 하고 있더군요.

Photo by Kim Dong Won

서문에 도착했습니다.
해가 벌써 서문을 빠져나가
서해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문을 빠져나가지 않고
성곽 위로 올라가 산쪽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북문쪽으로 가는 성곽의 길을 따라 한참 올라갔더니
경관이 훤하게 트입니다.
높은 곳에 올라보면
산은 저 혼자 한자리에 우뚝 솟아있는게 아니라
저멀리 우리가 사는 낮은 곳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산에서 내려와 절을 돌아보았습니다.
이렇게 밑에서 올려다 보면
처마가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은 느낌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이 날은 하루 종일 풍경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종소리 나는 곳을 쳐다보니
물고기 한마리가 줄 하나를 등에 메고
바람을 따라 허공을 헤엄치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땡땡땡 소리가 납니다.
혹시 저 물고기가 바람을 들이마시곤
그 속에서 소리 알갱이만 골라서
그것으로 종을 울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Photo by Kim Dong Won

절의 뒤쪽으로 돌아가보니
덩쿨 하나가 온통 연기처럼 굴뚝을 감싸며 올라가고 있습니다.
덩쿨은 굴뚝의 연기가 되고 싶었던 걸까요.
만약 그랬다면 왜 덩쿨은 하필 연기가 되고 싶었던 걸까요.
연기가 피어오를 때마다 함께 풍겨오는 밥냄새가 좋아서
저도 밥냄새를 풍기는 덩쿨이 되고 싶었던 걸까요.
갑자기 어디선가 밥냄새가 고소하게 풍길 것 같았습니다.

7 thoughts on “나무와 겨울잠 – 강화 전등사에서

  1. 동원님 사진의 시선에는
    자연이 보이고 더해 여백에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요.
    그래서 늘 편히 보고 있답니다.
    물론 글도 참 친자연적이시고요.

    ps 하늘 닿는 정갈한 담장사진이랑 하늘 뻗은 나무사진이 특히 좋네요.

    1. 시골서 태어나 오래 그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럴 거예요.
      그래도 내 살던 곳이 좋다는 건 도시에 와서 오래 살아본 뒤에 깨달았어요.

  2. 전등사… 참 소박하고 예쁜 절이더라.
    오규원 시인이 한 그루의 나무로 남고 싶을만큼 소박한 건 맘에 들더라.
    절 내의 사람들도 친절하고.
    하지만 절 입구의 가게들로 봐서는 사람들이 무지 많이 오는 것 같기도 하고…

    1. 아무래도 산수유겠죠?
      생강나무도 비슷하다고 하니까 그것일 수도…
      남쪽에는 벌써 꽃들이 상당히 핀 것 같아요.
      동백찍으러 갈 수 있으면 좋을텐데…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